작년 퇴사 직후 끄적여둔 메모를 들여다보며
어차피 어디에서든 같은 결말을 맞이할 거라면,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였다. 회사를 인생에서 영영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는 어딘가에 소속되는 데 연연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적어도 ‘생존’ 외에 회사에 다녀야 하는 다른 구체적인 이유를 손에 쥐기 전까지는. ‘생존’만이라면 당장 회사 밖에서도 할 수 있다. 지금 상태에서 미련스럽게 다음 회사를 찾아봤자 끝은 똑같을 것이다. 불나방 같은 어리석은 짓은 그만두어야 했다.
퇴사한 사실은 주위에 알리지 않았다. 왜 또 회사를 나왔는지, 이제부터 뭘 할 계획인지 이런저런 설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런 질문이 자연스럽다는 걸 알지만, 내겐 매끄러운 답변을 내놓을 재주가 없었다. 실제로 그런 걸 뾰족하게 정하고 회사를 나온 게 아니었으니까. 곤란한 대화를 피하기 위해 지인들과 가급적 만나지 않았고, 혹여 만나더라도 계속 회사에 다니는 척했다. 가끔 SNS에 뭘 올리더라도 직장인 퇴근 시간 이후나 공휴일에만 올렸다. 회사에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머리를 식히고 싶어서 본가가 있는 부산으로 갔다. 매일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혼자 앉아 원 없이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가 지치면 해변가를 산책했다. 쓰고 싶은 글도 쓰기로 했다. 회사에서 힘들 때마다 간절히 하고 싶던 일들이었다. 이제 바라던 대로 한적하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 내가 있다. 아득하게 막막하고 자유로웠다.
여유 시간은 넘쳐났지만 글은 써지지 않았다. 물론 글쓰기가 쉬웠던 적은 없다. 그래도 예전에는 용 쓰면 오래 걸리더라도 어떻게든 일관된 흐름을 갖춘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었는데, 그게 몹시 어려워졌다. 드물게 영감 비슷한 것이 떠올라 메모를 해둬도, 본격적으로 글을 전개하려고 시도하면 곧 벽에 부딪혔다. 메모장에는 옹알이 같은 글 파편들만 어지럽게 소용돌이쳤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여유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해가 밝아오는 아침마다 끙끙 앓았다.
'어디로 노를 저어야 할지 모르는 뱃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될 수 없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가 한 말이다. 글이 써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문장이었다. 나는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할 줄 아는 게 글쓰기뿐이니, 이걸로 뭔가 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세 번째 회사를 다니던 내 모습도 비슷했던 것 같다. 감사한 인연과 기회를 만나 다니게 된 회사이니, 여기에서 어떻게든 자리 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며 성장하고 싶은지는 전혀 그려내지 못했다.
회사에서 일하는 내 모습은 좀처럼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하고 싶은 다른 구체적인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기 싫은 일은 많으면서,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다니. 철없는 20대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 주어진 일을 어렵더라도 묵묵히 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도 더 빨리 발견하게 될 거라고 자신을 구슬렀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런 태도를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내게 싫은 일이란, 가고 싶은 방향에 놓여 있다고 설득돼야 겨우 감내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고자 하는 방향이 어디인지도 모른다. 마음에 중심이 잡혀 있지 않으니 상황에 따라 일의 리듬이 널을 뛸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별다른 대안도 없으면서 회사에서 나와 어쩔 셈이냐는 반문은 무척 강력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나는 그 질문에 굴복해 있었다. 하지만 '대안이 없으니 하기 싫은 일이라도 참고 해야 한다'는 상황은 굴욕적이었다. 나는 그런 굴욕을 오래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세상을 견디는 맷집은 약한 주제에 고집만은 더럽게 셌다. 어렵고 오래 걸리더라도 나의 답을 준비하고 싶었다. 답을 찾으려면 우선, 안개로 가득한 내 안을 살펴보고 갈피를 잡을 공백을 확보해야 했다.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만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었다.
배우 손석구가 매체에 소개될 정도의 영화에 처음 출연했던 나이는 서른 다섯이었다. ‘윤석열 나이’를 적용하지 않는다면 지금 내 나이다. 데뷔가 빠른 편은 아니었고, 곧바로 큰 인기를 얻었던 것도 아니다. 조급해질 법도 하지만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몇 년이 걸리든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다른 것들도 따라온다는 강한 직감이 들었다고. 그래서 끊임없이 바쁘게 일을 벌이며 불안을 잠재우는 대신, 철학책을 뒤지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탐구했다. 반짝 떠올라서 짧은 인기를 누리고 잊히기보다, 늦더라도 오래가는 길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지금 손석구는 그런 선택을 한 과거의 자신이 기특하다고 한다.
간절히 원했던 대로, 지금 나는 당장의 효율적인 성취와 무관한, 자유롭고 막막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언제까지 이런 삶의 방식을 고수할 수 있을지 가끔 불안하다. 하지만 나는 급하게 적당한 걸 줍거나, 누군가 쥐여준 걸 받아든 채 살고 싶지 않다. 나에게 어울리는 '사는 이유'를 손에 넣고 싶다. 그걸 알게 됐을 때 비로소 소속 없이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과연 미래의 나는 손석구처럼 자신을 기특하게 여길 수 있을까.
* 2023년 초 퇴사 후 썼던 <30대 중반, 매주 새로운 사람이 되기로 했다>에서 일부 문단을 가져오고, 다른 내용을 덧붙여 리라이팅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