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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백 Jul 29. 2019

직장인 윤백 -회의편 1부 (단편소설)

1. 회의 (1부)


1. 회의 (1부)     


처음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길게 늘어선 컨테이너 박스 같은 회의실이었다. 건물의 한 층을 통째로 회의실로 만들어서 똑같은 사이즈, 똑같은 문, 좌우 대칭마저 똑같아, 대부분 사람들은 회의실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는데 이를 바라보는 회의실은 그저 재미있어할 뿐이다. 무한이라는 개념을 배울 때 이 회의실을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둠에 가려 양쪽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공간에 시작은 존재하는 걸까? 처음부터 끝만 존재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문득 독립운동가를 가뒀던 서대문형무소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무한의 반복이 주는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의 자유라는 단어에서 묻어나는 이미지 때문인지.     




드디어 나의 문을 찾았다.   

쇠창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물쇠로 문이 잠겨져 있지도 않다. 오히려 문은 고래 입처럼 활짝 열려 있었다. 물리적인 구속은 전혀 없는 공간, 그래서 나는 자유롭다고 생각을 한다. 너도 자유롭다고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다고 생각을 한다. 열려 있는 문으로 조심스레 한 발을 내디뎌 본다. 역시 내가 아는 것처럼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 맞다. 내민 발을 다시 뒤로 돌려보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안심이 되니 자신감이 생긴다. 이번에는 두 발을 동시에 문 안으로 넣어 본다. 문 밖에서 봤던 세상 그대로이다. 그리고 문 안에서의 첫 번째 호흡을 시도해 본다. ‘헉, 헉’ 숨이 막힌다. 혹시 여기가 화성인가? 엄청난 진공청소기로 이 세상의 산소를 모두 빨아 버린 것 같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쉬기가 힘들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본능적으로 심호흡을 하게 된다. 천천히 그리고 깊게, 그렇게 몇 번의 심호흡을 여러 차례 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 새로운 행성에 적응이 된다. 내가 왔던 문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지만 문은 열린 채 처음 내가 본모습 그대로이다.


 '단지 문만 넘어왔을 뿐인데.'

나는 내가 앉을만한 자리를 찾아서 자리를 잡는다. 내가 자리를 잡은 후 많은 사람들이 문을 건너 이 행성으로 이주를 한다. 그들도 모두 나처럼 문을 넘어서자 나름의 고통을 표현한다. 하지만 이런 고통이 익숙한지 짧게 얼굴을 찌푸리더니 금세 안정을 찾는다. 무표정의 모습들.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재미있는 것은 이 행성으로 오면 아인슈타인의 빛과 시간에 대한 관계가 조금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시간이 흐르고, 어느 순간은 시간이 굉장히 느리게 흘러간다. 시간이 늦다는 것은 이 행성이 빛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주민들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기를 원하지만 이 행성은 대부분 그렇지가 않다. 이 행성은 시간만 틀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혀 운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땀에 흠뻑 젖는다. 그것도 단 1분 만에. 쉴 새 없이 흐르는 땀 때문에 손수건으로 열심히 땀을 닦지만 역부족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말더듬이가 된다. 문 밖에서는 유창한 언어 표현에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사람이 이 행성 안으로만 들어오면 언어능력을 상실한다. 나는 성대를 잃는다. 나의 성대는 사막처럼 급속하게 물기가 마르면서 성대가 갈라진다. 가뭄에 논, 밭이 갈라지듯이 나의 성대가 갈라진다. 갈라진 성대에서는 쇠가 갈리는 듯한 소리가 뿜어져 나온다. 나도 고통스럽다. 마른 성대로 말을 한다는 것은 상처 난 다리에 알코올을 붓는 듯한 느낌이다. 이 행성을 떠날 때까지 물 한 통을 다 비우지만 나의 성대 마름은 좀처럼 해소가 되지 않는다.      





이곳에는 창문이 없다. 내가 들어온 문을 제외하면 밖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이 문마저 닫히면 우리는 잠수함의 한 공간처럼 세상과 완벽한 단절을 이룰 수가 있다. 탈출구도 없다. 잠수함이 물 밖으로 올라와야 드디어 따뜻한 햇빛을 볼 수 있듯이, 이 공간도 문을 닫는 순간, 항해가 모두 끝이 나야 드디어 이 공간에서 탈출을 할 수 있게 된다. 산소가 부족해도, 자율신경이 망가져도, 수분 부족으로 성대가 망가져도 그저 항해가 끝날 때까지 참고 견뎌내야 한다. 갑자기 소설 ‘천사의 그림자’의 한 부분이 떠오른다. 고아원에서의 밤, 혼자서 외로움을 견뎌내는 그 아이가 바로 내가 된 듯한 느낌이다. 잠이 오지 않지만 눈을 뜰 수 없는 상황, 그래서 그 아이는 자신만의 상상 속 세계에 빠져 그 외로움 밤을 견뎌낸다. 이 공간에 갇힌 사람들도 아마 그 아이처럼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에 빠져 있을 것이다. 이 항해가 얼른 끝나기를 기도하면서.     




생각보다 시간이 길어진다. 보스가 다른 일정으로 원래 계획된 시간보다 10분쯤 늦는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더 늦는다. 시계에 자꾸 눈이 간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사람들의 침묵 시간은 늘어나고, 괜한 긴장감은 높아지기만 한다. 다이빙 선수가 다이빙 보드 앞에서 자신의 연기를 하기 직전에 겪는 긴장감처럼 보스가 오기를 대기하는 모든 사람들은 같은 종류의 긴장감에 휩싸인다.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누가 무서운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모두 최고의 긴장감에 스마트폰만 열심히 쳐다본다. 나도 열심히 스마트폰을 통해서 봤던 뉴스 기사를 보고 또 본다. 머릿속에 기억의 지우개가 있는 것처럼 방금 봤는데, 또 잊어버려서 또 보게 된다. 사실 잊어버린 것이 아니고 입력 자체가 안 된 것이다. 사람이 긴장을 하게 되면 봐도 보는 것이 아니고 들어도 듣는 것이 아니다. 반복적으로 같은 뉴스를 봤지만 나의 뇌에 저장은 되지 않았다. 그냥 긴장되고 무료한 이 시간을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했을 뿐이다. 조용한 이 공간에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쿵! 쿵!’ 침묵은 깨지고 차가운 냉기가 돌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냉기에 ‘에어컨이 고장이 났나?’ 나는 천장에 붙은 에어컨을 쳐다봤지만, 이것들의 공통점은 변함이 없이 항상 똑같다는 것이다. 나는 갑작스러운 찬기에 추워 죽겠는데, 이것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똑같은 냉기를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이 언제쯤 내 마음, 아니 우리의 마음을 알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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