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꿈 지역 아동센터 설립기..
20년 전 서울역 쪽방촌에는 아이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그 아이들은 방치되고 학대받으며, 입을 옷도 먹을 음식도 제대로 없었습니다.
알코올중독인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해도 속수무책이었고, 경찰에 신고를 해도 당시엔 아동학대 관련 법이 미비해 뾰족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쌀과 분유, 생필품 등을 지원했지만 그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눈물로 기도할 수밖에 없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역아동센터가 법제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야학’이나 ‘공부방’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던 민간 공부방이 이제는 아동을 위한 정식 기관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005년, 기도의 응답처럼 ‘소망을찾는이 지역아동센터’ 가 쪽방촌 한가운데서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 상황은 너무도 열악했습니다. 일반적인 지역아동센터의 역할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옷과 이불, 쌀, 생필품을 지원하고, 보증금을 마련해 쪽방보다 나은 집으로 이사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지금은 쪽방촌에 아이들이 살지 않습니다. 참 감사한 변화입니다.)
초창기에는 유치부 아이들이 많아 어린이집 역할도 함께했습니다.
졸업 시즌이면 학사모를 빌려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지요. 그때 공부방은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오아시스였습니다. 교회는 아이들에게 제주도 여행을 선물해주었고, 대학 진학 초기에는 입학금 전액을 지원했습니다. 지금은 국가장학금 덕분에 생활비 장학금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매년 4~5명의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 아이들이 하나둘씩 꿈을 이뤄가고 있습니다. 그때는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이, 지금은 눈앞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어제는 지역아동센터 법제화 20주년을 맞아, 서울 지역의 센터들이 서울시청에 모여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단꿈아동사역’ 처럼 모든 아이들의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서울시청 강당은 헌신과 눈물, 그리고 꿈으로 가득 찬 공간이 되었습니다. 함께 눈물 흘릴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날, 제 아내가 서울시의회 의장상을 받았습니다.
2005년부터 시설장으로, 쪽방촌 아이들의 엄마 역할을 해온 긴 시간의 열매였습니다.
쉽지 않은 아이들도 많았지만, 아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함께한 복지사 선생님들의 땀과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후원과 기도로 동역해 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 사랑을 먹고 자란 아이들은, 힘겨운 환경 속에서도 대부분 곧게 성장했습니다.
얼마 전엔 고3 아이가 여자친구와 함께 시설을 불쑥 찾아왔습니다. 수시 원서를 넣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하더군요. 아이들에게 이곳은 여전히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고향집입니다.
그리고 어제, 또 한 아이가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원하던 대학의 아동 관련 학과에 수시 합격을 했다고요.
쪽방촌의 아이들이, 이제는 자신의 길을 찾아 당당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20년 전의 기도와 눈물이, 이렇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 길에 함께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마음 깊이 감사한 날입니다.
빌립보서 1장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