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꿈으로 이룬 예배자
"아, 행복했다."
그날, 나는 마음속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이젠 사역을 내려놓아도 좋겠다.'
아이들 때문이었다.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러웠던 그 아이들이
이제는 단정히 예복을 차려입은 청년으로 예배실에 들어왔다.
한 명, 또 한 명.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복받쳐서
나는 아이들을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꽃다발을 건넸다.
꽃보다 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에게.
오전 예배와 동자동 공원 예배, 그리고 키르기스스탄 예배까지 마치고 오후 세 시,
청년예배가 처음으로 드려졌다. 그 자리에 11명의 청년이 있었다.
오랜 시간 함께 기도하며 눈물로 품었던 아이들.
함께하고 싶었지만 오지 못한 아이들도 마음으로는 있었다.
나는 준비한 설교를 내려놓았다. 그 자리는 설교보다 감사와 은혜를 나누는 자리였다.
주님의 이름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태어나면서부터 함께였던 아이,
국적을 만들어주었던 아이,
장학금을 도왔던 아이,
기숙사와 집을 마련해 주었던 아이들...
그 아이들이 이제는 예배자로 앉아 있었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아이들과 함께 새벽을 깨우던 순간이다.
매일 아침 7시 30분, 교회에 모여 말씀을 나누고 한 명씩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하며 기도했다.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교회에서 준비한 밥을 함께 먹고 학교로 보냈다.
그때 아이들은 고백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제 마음에 계세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청년이 된 지금도, 그들의 고백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쪽방촌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도 주님은 아이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셨다.
나는 그저 작은 통로였을 뿐이다. 모든 것은 주님이 하셨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그날, 준비된 설교는 필요 없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처음 예배를 드리는 청년들에게 꽃을 선물하고 싶었다.
양재 꽃시장에서 알게 된 사장님께 부탁했다.
꽃다발 15개를 주문했지만 그분은 20개를 만들어 보내주셨다.
“예배당 강대상에도 꽃을 두세요.”
하며 풍성한 샤방화까지 함께 보내주셨다.
사실, 이분은 봄에 쪽방촌에 꽃을 나눌 때 처음 만난 분이다.
신앙이 있지만 바쁜 일상에 교회를 못 나간다며 웃으셨다.
나는 그런 분들을 ‘가나못 성도’라 부른다. (가나안 성도가 아니라, ‘사정상 교회에 못 나가는 성도’들.)
그분을 위해 기도했고, 그 후로도 전화로 신앙을 나누며 지내왔다. 이번에도 그분은 기꺼이 꽃을 더해주셨다.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꽃을 배달하던 기사님이 빠뜨린 샤방화를 직접 다시 가져오셨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축복기도를 드렸다. 그분의 얼굴이 빛처럼 환해졌다.
예배가 끝나고 아이들과 함께 식당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새로 차를 뽑은 형아가 아이들을 태우고 뒤풀이에 나섰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벅차올랐다.
이제 나는 안심해도 되겠다. 주님께서, 그리고 이 아이들이 새로운 세대를 이어갈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 말씀이 오늘처럼 생생히 살아 있는 날이 또 있을까.
"아, 정말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