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질문 일기 14화

이것도 사랑이야?

지금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보고 싶어 하는 거야?

by 이린
66. 예전과 성격이 많이 바뀐 편인가요?


성격이 바뀐 건지, 아님 나이를 먹을수록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 낯선 사람에게 말도 못 붙이는 건 당연하고, 소심함 때문에 목소리도 기어들어가서 남들과 대화할 때면 "응? 뭐라고?"라는 반문을 제일 많이 받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색한 분위기를 깨버리는 것을 즐기고, 사람들을 사귀는 것이 내겐 제일 쉽다. 특히 상대를 파악하고 그의 니즈를 찾는 것. 어떤 유형의 인간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리고 본인은 어떤 사람인지를 관철(觀徹)하는 것이 나름의 재미다. '나랑 가장 잘 맞을', 또는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람을 기가 막히게 알아보는 것은 남들이 모르는 나의 가장 큰 재능이다.


예전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막 사람 사귀는 데 흥미를 느꼈던 어린 시절의 나는 그저 '사람'을 좋아했다. 쉽게 믿음과 마음을 주고, 포커페이스는 할 줄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필요에 따라 겉과 속이 다를 때도 허다하고, 사람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그와 유대감을 형성하는 과정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만큼 믿음과 마음을 쉽게 줄 일도 없어서 인간관계에서의 실망이란 언제 마지막으로 느껴봤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67.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딱 한 가지를 꼽을 수도 없고 무조건 정답이란 것도 없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수많은 방해요소들에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와 힘을 기르는 과정이다. 빠르게 일어서는 법보단 조금 덜 아프게 넘어지는 법을 배우는. 스스로의 감정을 잘 조절하되 마냥 억누르지 않고 본인만의 해소법을 터득하는 것. 질투와 동경의 차이를 이해하고 타인의 행복에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것. 과거에 나를 아프게 했던 모든 것들을 용서하고 현재와 미래를 위한 삶을 사는 것. 무엇이든 책임과 의무를 다 하되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어른은 너무 어려운 것 같다. 되기로 마음먹는 것도, 되는 과정도, 결과적으로 이루기도 힘든 것 같다. 나도 조금만 천천히 어른이 되어갔다면 좋았을 텐데.



68. '일시정지', '뒤로 가기' 중 당신에게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일시정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를 굳이 다시 헤집고 싶진 않다. 과거는 과거인 이유가 있고, 현재는 현재인 것도, 미래가 미래인 것도 모두 이유가 있다. 그래서 나는 과거를 후회하고,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을 두려워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으려 매 순간을 노력으로 산다. 나는 지극히 현재주의자라서, 지금을 살아야 하고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좀 쉬고 싶다.



69. 제일 싫었던 년도는 언제인가요?


이건 매년 갱신하는 것 같다. 나는 지금 2025년 4월이 제일 끔찍하게 싫은데, 아마 내년엔 더 한 것들로 이를 묻어가겠지.



70. 털어놓고 싶은 게 있나요?


당신이 죽은 날, 나는 아직도 내가 왜 그렇게 울었는지 모르겠다. 이번 달은 울고 싶지 않은 일에 울고, 웃고 싶지 않은 일에 웃었던 날들이 많았다. 그날, 당신이 숨을 거두기 몇 시간 전, 나는 엄마를 대신해 당신을 보러 갔다. 원래 가던 병실의 그 자리에 당신이 없어서 간호사분께 여쭤봤더니, 전 날부터 상태가 악화되어 병실을 옮겼다고 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의식이 없는 당신을 보았다. 눈을 감은 채로 꿈을 꾸듯 괴로워하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그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여자도 보았다. 2명의 여자가 당신을 보러 왔고, 한 번도 보지 않았음에도 단숨에 알 수 있었다. 둘 중 누가 당신의 여자였는지. 아 이 여자구나, 싶었다.


여자분들이 가고 나서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옆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나의 부름에 대답은 못 해도 내 손만은 붙잡는 당신을 보고서 수많은 감정에 휩싸였다. 참 더럽고 찝찝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렇게 옆에서 소리 없이 한참을 울었다.


그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끝까지 미안하단 말을 못 들었구나, 였다. 그다음은, 그래도 의식이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와볼 걸,이었다. 당신에 대한 나의 마음은 뭘까.


그날 엄마와 장을 보고서 집에 돌아가자마자 병원에서 연락을 받았다.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듯 빨리 가자면서 나갈 채비를 하다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차갑게 굳어버린 당신을 계속해서 흔들고, 부르면서 당신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음에 엄마는 자책과 자기혐오를 쏟아냈다. 나는 그런 엄마가 탈수가 오지 않도록 옆에서 챙길 수밖에 없었고, 사망진단서를 떼오느라 정작 당신을 제대로 마주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당신을 안치실로 옮기고, 간호사분께서 마지막으로 당신이 남긴 물건들을 주셨다. 나는 그때 무너졌다. 아직도 이유 모를 눈물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그렇게 소리 내서 울어본 건 살아생전 처음이었다. 요양원에 2주도 못 머물렀던 당신의 물건들이 너무 근소해서? 항상 당신의 다리를 받치고 있었던 베개가 피로 빨갛게 물 들어서?


당신이 나와 엄마에게 남긴 건 우리 몰래 빌린 사채 빚과 카드 빚뿐이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나는 분명히 당신이 죽도록 미운데.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사람인데. 당신의 죽음 앞에서 왜 나는 눈물이 나는지 아직도 알 수 없다. 이것도 사랑이야? 당신은 그렇게 생각해? 지금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보고 싶어 하는 거야? 아빠가 아무리 내게 그렇게 했도 그게 투른 사랑의 한 형태였나, 내가 아무리 아빠를 미치도록 혐오도 결국엔 이 또한 증오가 포함된 사랑이었나. 제발 하루빨리 내게 답을 알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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