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에서 가장 처음으로 잊혀진 사람
오빠 안녕,
하하, 진짜 오랜만이라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네.
어느 순간부터 내 기억 속에서 잊혀진 사람 중에
오빠가 가장 처음일 거야.
우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미안해.
나도 오빠로 인해 상처까진 아니더라도
희미한 생채기 정도는 남았었거든.
근데 이제 나이 먹고 생각해 보니까 어느 정도 오빠가 이해되기도 해.
아마 내게 처음으로
정신적 의지가 되어준 '남자 어른'이었을 텐데,
나는 차마 당신을 사랑까진 할 수 없었어.
그땐 내가 너무 어렸다.
비겁한 거 아는데 나도 그 이유를 정확히 정의할 수가 없어서
미안. 미안해.
대학 입시가 끝나고, 아직 열아홉이었던 나는 곧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었다.
집 근처에 있는 편의점 사장님과 평소에 친분이 있기도 했고, 곧 성인이 될 시기였기에 나는 그 편의점에서 야간 근무를 하며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스무 살의 1월, 나는 편의점에서 '진'(가명)을 처음 만났다.
첫인상은 둥글고 순하게 생긴 인상이었는데, 특히 기억에 남았던 건 사소한 그의 친절이었다.
야간 근무 시간에는 아무래도 이런저런 사람들이 많다 보니 사실 스트레스받을 일이 꽤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물건을 계산할 때 항상 물건의 바코드가 나를 향하도록 돌려놨고, 대부분의 손님들과는 달리 언제든 내게 인사를 건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진이라는 사람을 기억하게 됐다.
그가 편의점에 두세 번 정도 찾아왔을 땐 내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이후엔 그가 편의점을 오고 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서로 주고받는 문장들이 늘어났다. 알고 보니 진은 나와 8살 차이가 나는 남자였다. 나는 외관적인 그의 모습을 봤을 때 훨씬 어리게 봤었고, 그 또한 내가 아무리 어리다 해도 갓 스무 살이 된 어린 여자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나는 친언니와 16살의 나이차이가 나서 그런지, 나보다 그 정도 나이가 많은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고, 오히려 내 나이를 알고 난 순간부터 나를 더 조심스럽게 대하는 진이 고맙고도 좋았다.
한창 추웠던 1월, 편의점의 난방 시스템이 잘 작동되지 않아서 추위에 떨고 있을 때였다. 진은 평소와 같이 내게 인사를 건네고, 물건의 바코드가 나를 향하게 돌려놓고, 계산이 끝나면 내게 말을 걸었다. 그는 추워하는 나를 보고선 조금 우물쭈물하더니 내게 손을 건넸다. "나는 항상 따뜻해."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그가 했던 말이었다. 스무 살이 되고서 처음으로, 나는 그렇게 남성의 손을 잡아보았다. 그때 아마 그에겐 내가 안절부절못하며 눈알을 굴리는 소리, 요란히 뛰던 심장 소리까지 다 들렸을지도 모른다.
하루는 친구와 단 둘이 술을 마셨던 날이었다. 스무 살의 1월 중순, 나는 술을 마셔본 일이 한 손에 꼽을 정도인 데다, 아직 나의 주량에 대해선 전혀 모를 때였다. 친구와 삼겹살을 먹으면서 패기 있게 소주 한 병을 비운 나는 친구와 함께 거하게 취해버렸다. 술김인지, 진심인지, 유독 진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응?"
"보고 싶어요."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유리문 너머로 택시에서 급하게 내리는 남자 한 명이 보였다. 진이었다. 그는 내게 많이 취했냐며 날씨가 춥다고 목도리를 둘러주었고, 내가 술이 깰 수 있도록 근처 카페에서 유자차를 사 왔다. 그 겨울밤, 내가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왔을 때, 우리는 함께 손을 잡고 공원을 걸었다. 술김 때문인지, 그 순간의 설레는 감정 때문인지, 가로등이 유독 예뻐 보였다. 내 생각을 읽은 건지, 진도 내게 가로등이 정말 예쁘지 않냐며 순진하게 웃었다. 그러곤 한참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내게 입을 맞췄다.
진과의 처음, 그리고 스무 살이었던 나의 첫 키스였다.
"아, 너무 행복하다." 그는 나를 꽉 안으며 말했다.
"뭐가요?"
"좋아하는 사람이랑 입 맞추고 이렇게 꼭 안고 있는 게 너무 좋아서. 행복해."
나는 그렇게 진과 내 스무 살의 첫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