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삶이 마음먹은 대로 잘 작동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그에 대한 방법을 써보지 않아서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방법들은 넘쳐난다. 다만, 삶을 작동시킬 수 있을만한 어떤 부분들이 잘 만져지지 않았기에 그렇지 않나 싶다. 여기서 우리는 삶을 향한 질문들을 바꿔 볼 필요가 있다.
가령.
나는 왜 이렇게 행동하는가가 아닌,
나는 왜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가 이며,
나는 왜 이렇게 눈치를 많이 보는가가 아닌,
나는 왜 이렇게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것이고.
나는 왜 이 이렇게 무기력하고 의지가 없는가가 아닌,
내가 왜 이렇게 무기력하고 의지가 없을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열매가 잘 열리지 않거나, 과실이 튼튼하지 않은 나무에 약품을 뿌려대며 해충을 내쫓아보지만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고. 세면대가 막혀 눈에 보이는 이물질을 긁어내보지만 여전히 시원찮다. 다만 문제의 지점은 언제나 땅아래 밑부분에 있었고, 세면대 아래 저 깊은 곳에 존재했다. 뿌리는 썩어있었고, 머리카락 뭉치는 좀 더 깊은 곳 어딘가에 틀어 박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삶을 바꾸거나, 잘 살아낼 수 있는 수만 가지 방법들이 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그 방법들을 모르지 않는다. 우리가 좌절하는 이유는 되려 그러한 수많은 방법들 때문었는지 모르겠다. 수없이 많은 방법에도 불구하고 잘 되지 않는, 그래서 그렇게 잘 바뀌지 않는 답 없는 나와 마주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참 괴로운 일이 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삶은 단순히 방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다만 우리는 만져져야만 했고,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 삶이 작동되었어야만 했다. 필름을 돌려 삶을 한 번 되짚어 보자. 거기에는 현재 그럴 수밖에 없이 살아가고 있으며, 바꾸고 싶어 노력했지만 바뀌기 어렵게 했던 과거 당신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잘 담겨져 있을 것이다.
과거에 매몰되어 현재를 허비하며 살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과거에 진중히 머물러 본 적 없이, 방법만 적용시키며 살아가기에는 우리의 깊은 곳이 참 많이 아팠다. 우리는 어쩌면 무분별한 다그침 보다 충분한 헤아림이 더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때 그 아이에게 찾아가 단 한 번만이라도 등을 토닥여 주자.
그리고 우리 한번, 다시 일어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