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by Glory

삶의 고통이 비단 실패나 아픔의 현장에서만 찾아오지는 않았다. 아니. 차라리 그렇게만 찾아왔다면 더 괜찮았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고통은 예상과는 다른 측면에서도 삶에 침투해 왔고, 파고들었으며 우리를 당혹하게 했다. 가령 성공의 자리나,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자리에서 조차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고통은 단순히 그럴만한 이유를 통해서만 오지는 않았다. 다만 이유를 거슬러 우리에게 찾아오기도 하기에 대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어느 부분 우리는 고통에 관하여는 무방비인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올 때면 저항 없이 맞이해야만 했고, 되려 이유가 없었기에 더욱 무섭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우리는 나와 타인의 고통에 관하여 그 이유를 묻곤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을 듣고 싶어 한다. 왜 그런 것인지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는 말로 다 설명해 낼 수 없는 심연 깊은 곳의 이야기들로 더 많이 채워져 있는 듯 보인다. 여전히 그 해답을 들을 수 없었고, 여전히 다 알아낼 수 없었다. 다만, 고통이 그냥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을 뿐이다.


적어도, 거기에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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