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차 천천히
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스마트 폰 안에 저장되어 있던 대부분의 연락처들을 지워 나갔다. 여기에는 카카오톡 프로필 포함이다. 현재는 아주 말끔해진 상태이다.
예전에 일하던 직장의 오래된 창고를 정리해야 했던 적이 있다. 당시 담당자로써 전달했던 말이 생각난다.
"기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거 아직 쓸만한 것 같은데?
예. 과감히 버리세요.
적어도 이 정도 기준은 돼야 합격입니다.
와 이게 여기 있었어?!
그렇다면 남기시고요.
그 외에는 미련 없이 전부 다 버리세요.
어차피 안쓸 것들입니다."
이 기준을 가지고 시작.
켜켜이 쌓여있던 물건의 약 80% 이상이 정리되었다. 캐캐묵은 오래된 것들이 사라지니 그제야 사람이 다닐만한 창고로 탈바꿈되었던 것이다.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린 것도 아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고는 꼭 필요한 물건들로 점점 채워져 갔다.
카카오톡 포함 연락처를 지우는데만 며칠은 족히 걸린 것 같다. 하루에 몰아서 했다기보다 편의점 일 중간중간, 배달 중 콜이 없을 때면 되는대로 하나씩 하나씩 지워 나갔다. 물론 망설였다. 더 나아가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중에 아쉬우면 어쩌지 싶었던 것이다.
문득 과거 창고 정리 방법이 스쳐 지나갔다.
아. 괜찮네.
과감했고, 애매하다 싶으면 미련 없이 지워 나갔다. 그로부터 현재까지 약 2년여의 시간 동안 삭제한 연락처에서 받은 연락은 거의 없다. 몇 번 전화벨이 울리기는 했으나 대부분 시시콜콜했고, 결국 본인 아쉬운 이야기들 뿐이었다.
옷장에 있던 아내와 나의 옷들도 대부분 처분했다.
기준은 과거 창고 정리 방법과 동일했다. 우리 부부는 옷이 많은 편은 아니었기에 수거비로 약 2만 5천 원 정도의 용돈을 벌 수 있었다. 그 돈으로 맛있는 떡볶이 세트를 거하게 주문했다.
가깝게 지내던 형님과 동생과의 관계도 조용히 정리했다. 잦은 만남과 연락은 인생의 중반기로 접어들어 가는 이 시점에서 더 이상 불필요 하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다만 삶에 더 집중하고 싶었다.
덤으로 카카오톡 생일 설정도 해제했다. 했니 마니 서로 간 구차해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당장 다음 주가 생일이지만 여전히 잘한 선택인 것 같다.
이제 남은 건 신발장이다. 현재 거주 중인 임대 아파트는 필요 이상으로 신발 수납장이 크다. 여기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무질서하게 쌓여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벼르고 있는 장소이다. 머지않아 모조리 정리할 생각이다.
되돌아볼 때.
무언가 많은 것을
더 했던 시간은 아니었다.
다만,
충분히 덜어냈다.
이제 조금 정리가 되는 듯한 느낌이다.
공간이 생기니 여유가 생긴다.
계속 비워 놓을 수만은 없으니,
시간을 두고 조금씩 채워 나가야겠다.
차차.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