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상상을 제한시킨다.
얼핏 보면 나쁜 행동 같고 상대방의 무언가를 빼앗아 가는 것같이 보인다. 하지만 내가 주장하는 이 말, 줄여서 ‘상상 제한’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평소 사회생활을 하거나 누군가와 관계를 유지할 때 커뮤니케이션은 말 이외에 다양한 것들로 이뤄진다. 대표적으로는 텍스트가 있다. 텍스트로는 내가 의도한 바를 정확히 전달할 수 없다. 물론 가능은 하지만 내용이 복잡하거나 다양한 정보를 함축해야 할 경우 쉽지 않다. 특히 설명이 길어질수록 당연히 텍스트양도 늘어나면서 상대방에게 의견을 온전히 전달하기 어렵다.
또한 완벽히 정리했다손 치더라도 읽는 상대방의 읽는 상황과 상태 등을 모두 고려하면 온전히 내 의도를 이해시키기 어렵다. 읽다가 다른 방향으로 오해하거나 제멋대로 상상하기 일쑤다.
이때 나는 ‘상상 제한’ 방법을 사용한다. ‘상상 제한’이란 내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고자 상대방의 상상을 막아 버리는 일이다. 방대한 양의 텍스트를 정리했다면 상대방에게 그 텍스트를 넘긴 후 그 텍스트의 흐름을 말로 가볍게 설명하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 상대방이 내가 의도한 대로 텍스트를 읽을 수 있도록 손쓰는 방법이다. 보통의 실사례로 예를 들자면 다소 복잡한 내용을 텍스트로 정리한 뒤 회사 메신저 혹은 메일로 그 내용을 받을 상대방에게 직접 혹은 전화로 글의 흐름을 안내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대는 읽는 과정에서 내가 설명한 흐름에 사로잡혀 ‘상상 제한’을 스스로 해버리고 내가 원했던 방향대로 텍스트를 접한다.
특히 직장에서 잘 먹히는 데, 직장인들은 방대한 내용의 업무들을 이해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리하고 하는 일을 밥 먹듯이 한다. 그러나 갑자기 무언가 정보가 들어온다면 다시금 이해하고 정리해야 해서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이 타이밍에 내가 그 사람에게 정보 가득 담은 메일을 보냈다면 그는 이해하고 정리해야 하는 일을 또 시작해야 한다. 여기를 파고드는 것이다.
메일로 정보 가득 보낸 후 상대방에게 찾아가거나 전화를 걸어 정보를 가볍게 흐름 리뷰를 해주는 것이다. “제가 보낸 정보는 이러한 의도이며, 이러한 방향으로 가고자 정리했다”라고 가볍게만 말해주자. 그렇게 하면 성공이다.
이때 상대방은 이해와 정리를 해야 한다는 번거로움, 이미 나에게 들어버린 간단한 흐름과 방향성으로 스스로 해석하지 않고 자연스레 내 말대로 해당 정보를 이해하는 ‘상상 제한’에 걸려버린다. 나쁜 행동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대방을 유도하고 원활히 서로의 싱크를 맞춰 일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일 뿐이다.
물론 텍스트 등으로 의견을 전한 뒤 흐름을 말로 전달하여 소통의 주도권을 나에게로 가져오는 이 ‘상상 제한’이 먹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상대는 굉장히 꼼꼼하고 의견이 강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오히려 좋다. 오히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더 이해하는 상황이 된 것으로 스스로 판단 내려 빠르게 플랜B를 생각하면 될 일이다.
이런 방법으로 나는 생각보다 여럿을 손쉽게 설득하곤 한다. 또는 여럿을 상대하며 오퍼레이션 해야 하는 경우에는 모두의 싱크를 하나로 맞춘 상태로 일할 수 있어 상당히 도움이 되는 기술이다.
그렇다면 이게 왜 먹힐까?
이해하기 쉽게 느낌으로 전달을 하자면 이렇다. 한 어린아이가 ‘해리포터’를 소설로만 접해봤다고 치자. 아이 머릿속에 상상으로 만들어진 판타지 마법 세상은 얼마나 흥미롭고 재미있겠는가? 그 아이는 영화가 실사화로 제작됐다는 말을 듣고 즐거운 마음에 영화를 시청했다. 분명 영화 볼 때는 내가 꿈꿔오던 세상이 실사화로 구현돼 모든 것들이 재밌었을 것이다.
그러나 집에 가면 ‘상상 제한’이 시작된다. 영화는 고작 1편이 개봉했을 뿐이다. 하지만 소설 완결까지는 한참이 남았다. 아이는 영화를 본 순간부터 이후 상상하는 모든 내용을 영화 속 장면으로 치환해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무리 다른 상상을 하려고 해도 눈으로 이미 보았기에 다른 것을 떠올리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사탕이라는 것을 떠올려보자. 그러면 지금부터 사탕을 아무리 잊으려 해도 사탕은 잊혀지지 않는다. 이 글을 보는 당신도 이제 사탕이 계속 떠오를 것이다. 이때 잊는 방법은 단순하다. 완전히 다른 것을 떠올리면 된다. 지금부터 돈가스를 떠올려보라. 그런 돈가스만 생각날 것이다.
그러나 각인된 무언가를 다른 것으로 바꿔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해리포터’ 배우는 영화 시리즈가 마무리될 때까지 혹은 주인공 배우가 바뀔 때까지 같은 사람일 테니까 말이다. 솔직한 이야기로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역을 맡은 배우 엠마 왓슨을 봤다면 그다음부터 다른 얼굴의 헤르미온느를 떠올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설명이 길었지만 ‘상상 제한’의 요지는 방대한 정보는 텍스트로, 흐름과 뉘앙스는 말로 전해 교묘하게 상대를 내 페이스로 가져오는 것이다. 좋은 커뮤니케이션이란 서로의 ‘이해도의 수준’을 하나로 만드는 데에 있다. 이해도의 간극이 줄어들면 서로 의견이 맞는지 아닌지부터 확인할 수 있고, 이어서 다음의 해결 혹은 논의할 수 있는 단계가 된다. 더불어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유도해 상대방이 내 흐름대로 따라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에도 있다.
아무튼 마무리를 해보자면 이렇다. 누군가와 같은 목표를 두고 완성도 높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다면 상대방의 ‘상상을 제한’시켜 보자. 본인이 성공한다면 원하는 방향성으로 진행될 것이며 아니더라도 오히려 서로의 간극을 줄이는 계기가 되어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