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와 나는 종종 퇴근 시간이 맞으면 부평역 지하에 있는 푸드코트를 즐겨 간다. 지독하게도 두 사람의 다른 음식 취향을 쉽게 맞출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고기면 고기, 분식이면 분식, 한식, 중식, 동남아 음식, 회전초밥, 카페, 빵집 등이 한가득 모여있다. 이곳은 붐비지 않은 적이 없다. 심지어 코로나 때도 주변 일하는 직장인들을 흡수해 나름 북적이는 모습을 보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푸드코트에 도착하면 온갖 음식 냄새가 섞여 코를 자극한다. 사실 배고플 땐 그보다 더 좋은 향기가 없지만, 밥을 먹고 지나가면 참으로 곤혹인 공간이다.
부평역 지하 푸드코트는 그런 점에서 와이프와 종종 즐겨 간다. 어마어마한 맛은 아니지만, 이곳만큼 내가 상상하는 그 음식의 맛을 구현해 내는 곳도 없다. 비교적 음식들도 저렴해서 그 맛들이 더욱 와닿는다.
최근에는 양이 많아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유명한 레드철판이라는 곳이 있다기에 그곳을 찾았다. 매번 가는 곳임에도 가던 곳만 가서 그런지 처음 방문했다. 사장님이 호기롭게 마지막 볶음밥 2개 남았다고 하시기에 홀리듯 ‘매콤불백 철판볶음밥’과 ‘돈가스 철판볶음밥’을 주문했다. 각각 1만 원. 요즘 물가 생각하면 무난한 가격이다.
그런데 웬걸. 어마어마한 산더미 볶음밥이 등장했다. 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한 제육과 돈가스. 산더미라고 불러도 무방한 볶음밥. 당당하게 숨겨두신 계란후라이까지. 양이 흡사 3인분 같았다. 음식을 남겨본 일이 거의 없는 우리 부부는 다소 당황했지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말로 ‘개 같이’ 패배했다.
정말 맛있는데 너무 많아 못 먹겠더라. 그러던 중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 정도 퀄리티는 되어야 이 부평역 푸드코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인가? 생각해 보면 부평역 푸드코트는 정말 강력했다. 코로나로 많은 식당들이 문을 닫고, 왜인지 모르겠으나 과거와 달리 힘을 잃어가는 대형 마트 푸드코트, 영화관 아래층에 딸려있어 영화 관람 전후로 즐기던 푸드코트들도 거의 폐업 수준이다.
그러나 이곳은 아직도 문전성시다. 이곳은 내 기억상 시간대나 요일 상관없이 사람은 항상 많고 특히 재료가 모두 소진돼 빠른 퇴근을 하는 사장님들도 종종 볼 수 있다. 더불어 최근 인스타나 유튜브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어떻게든 맛집을 소개하려고 혈안이 된 요즘, 소개도 된 적 없는 곳들도 식사 시간에 가면 줄까지 서진 않지만 북적인다.
배부른 배를 부여잡고 집으로 걸어가면서 곱씹어보니 정말 이곳이야말로 현실 약육강식의 끝판왕 현장이라고 생각이 든다.
나는 크리에이터들과 일하며 유튜브 조회수나 라이브 방송 시청자 수 등으로 매일매일 시청자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인터넷 방송씬이야 말로 약육강식이라 생각했다. 재미없으면 조회수와 라이브 시청자 수는 바로 바닥 친다. 그것만큼 현실적인 고통이 어딨느냐고 생각했다. 콘텐츠 세상이 가장 무섭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도 만만치 않았다. 푸드코트에 도착하면 물씬 풍겨 나오는 이 온갖 나라의 음식 냄새는 어찌 보면 마치 어떻게든 그 섞인 냄새 속에서 자기들을 드러내 손님들을 유혹해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식사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지만 이곳이 사실은 이렇게 치열한 곳이라고 생각하니 소리 없이 망하는 콘텐츠 세상이랑 다르게 눈으로 보여지는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사무치다라는 표현에 꽂혔다. 그러나 이 표현은 인터넷방송 씬에서 사용하기에는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든다. 영상의 조회수가 떨어졌다, 재미가 없어졌다, 콘텐츠 고민을 치열하게 한다 등과 같은 상황에 개인적으로 ‘속 깊이 통한다’라는 뜻을 가진 사무친다는 표현은 어색해 보인다.
어쩌면 회사에서 한겨울에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빨며 월급을 받는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일 수 있겠다. 요즘 내 최대 관심사는 내 사업인데, 사람마다 그리는 나의 사업 모습은 다르겠지만, 그것이 형상화된 것이 이 부평 지하 푸드코트라면 단순히 ‘돈 벌려면 사업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접근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솟는다.
아무튼 그리하여 지금 보다 더 고민 중인 것들을 치열하게 생각하고, 귀찮다는 혹은 쉬어야 한다는 혹은 게임이 하고 싶어서 등의 하찮은 이유로 하루를 흘려보내지 말아야겠다.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다 든 영감 치곤 과격한 감이 있지만 이래저래 생각이 많은 요즘 이렇게나 사무치게 그 현장에 감정이입이 됐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도 시선을 달리 어느 공간을 한번 바라보아 보자. 그러면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서 나의 자아 성찰이 가능하다. 나는 그 성찰이 ‘돈가스 철판 볶음밥’을 먹다 나온 게 코미디지만, 아무튼 그렇다. 내일을 위해 또 고민하고 이러한 감정을 길게 늘어뜨려 무뎌지는 감을 살려 두어야겠다.
내일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