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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효율적인 효율

게임(POE2)에서 찾은 '비효율의 묘미'

by 단단지

사람들은 비효율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물론 나도 싫어한다.

그 때문에 다수는 효율적인 것이야말로 이 세상을 멋지게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이 효율이란 것은 게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게임에서 효율은 곧 재미로 여겨지는 상황이 많다. 캐릭터 성장에 재미가 있는 게임에서는 빠르고 쉽고 강력하게 성장하는 것이 재미 요소다. 때문에 효율적인 성장 방법에 모두가 열광한다. 특히 누군가와 직접 맞붙어 경쟁하는 게임에서는 상대방을 효율적으로 제압하는 것 자체가 재미로 이어진다. 그래서 효율적인 게임 플레이가 재미로 이어진다.


여기서 효율이 재미로 이어지는 이유는 결과물 지향적인 경우다. 캐릭터를 효율적인 방법으로 성장시켜 좋은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결과물, 대전 및 경쟁 게임에서 효율적인 플레이로 승리 혹은 신기록을 달성했다는 성취 등이 재미를 만들어 사람들을 즐겁게 만든다.


때문에 이러한 결과 지향적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게임을 즐기면 재미가 없다. 물론 취향의 영역이니 잘못된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이 속에서 찬찬히 살펴보면 비효율 자체가 재미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최근 '페스 오브 엑자일2'라는 게임을 시작했다. POE2로 불리는 이 게임은 캐릭터를 선택해 몬스터를 무찌르고, 아이템을 수집해 성장시켜 나가는 RPG 장르다. 특히 이 게임 시리즈는 상당히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사용 가능 포인트는 100이지만 사용처는 1,500개가 넘는 능력치 상승 노드, 100여 개가 넘는 캐릭터 스킬, 각 스킬에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보조 아이템, 앞서 말한 것들을 극대화시켜 주는 캐릭터가 착용하는 장비 등 POE2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셀 수 없다. 이 게임에서는 위 나열한 것들의 조합이 하나만 틀어져도 캐릭터의 강함이 완전히 달라진다. 때문에 끊임없이 캐릭터가 강력해질 수 있는 어떠한 조합을 찾고 이 조합에 내 캐릭터를 한땀 한땀 맞춰가며 키워나가는 것이 핵심인 게임이다.


노드.png POE2에는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데 사용되는 1,500개가 넘는 노드가 있다. 단, 포인트는 100여 개로 한정돼 있다.


하지만 무수한 조합 속에서 진정한 효율은 아무나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전작 POE에서는 소수의 인원이 어마어마한 시간을 들여 효율적인 무언가를 찾아두면, 많은 이들이 이것을 답습한다. 대다수는 이 과정에서 내 캐릭터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즐긴다.


이 시리즈의 후속작 2편 POE2는 최근 12월 7일 사전 서비스가 시작됐다. 그래서 누군가 선봉에 서서 최적화시켜 둔 캐릭터 성장 빌드 자체가 없다.


나는 직장인이기도 하고 유부남이다. 게임을 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효율적인 성장 방법을 직접 찾아낼 수가 없다. 그래서 보통은 누군가 만들어둔 성장시키는 순서를 따라간다. 하지만 이번엔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이유로 해줄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내 마음대로 즐겨보고 있다. 여기서 '비효율의 묘미'를 찾았다.


내가 하나하나 공부해 가며 나만의 캐릭터 성장법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정말 비효율적이다. 내 방법은 캐릭터가 강해진다는 보장이 없고, 그렇다고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도 아니다.


하지만 재밌다.


무슨 말인지 이해도 잘 안되는 아이템과 스킬, 무언가의 설명 등을 읽으며 나만의 분석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석궁을 사용하는 머서너리라는 캐릭터를 선택했다. 지금 40레벨까지 성장시키며 무수한 헛갈림에 봉착했다. 성장 과정에서 '투사체 공격력 ?% 증가'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화살에만 적용이 되는지, 유탄을 발사하는 유탄 스킬에도 적용이 되는지, 마법 화살 공격에서 파생된 전기 줄기까지도 투사체로 인정이 되는지 머리가 아프다.


이 외에도 운 좋게 상급 아이템을 얻으면 고민이 많아진다. 예를 들어 이 아이템에 전기 공격 ??% 증가가 옵션으로 붙어있는데, 보아하니 퍼센트 수치가 인터넷에서 찾아보아도 높은 편이라고 가정해 보자. 옵션 수치가 좋으니, 이것을 믿고 지금 캐릭터 방향성을 완전히 전기 공격으로 가야 할지, 아니면 좀 더 레벨을 높여보고 나중에 생각할지 복잡해진다.


원래의 나라면 이 상황을 겪은 다수 유저들의 사례를 찾아보고 효율적인 방법을 택했을 테지만, ‘내 마음대로 비효율적으로 한다’라는 룰을 지키며 게임을 하니 느끼는 바가 다르다. 공략 없이 스스로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니 평소에는 별것 아닌 상황이 모두 고민의 연속이 되고 나름 비효율적이지만 효율적인 선택으로 게임을 풍성하게 해준다. 더불어 은연중에 ‘혹시 내가 찾은 이 방법은 엄청나게 효율적인 방법이 아닐까?’라는 착각은 덤이다.


사실 누군가 만들어둔 빌드를 따라 만가면 금방 성장할 테고 고민도 필요가 없다. 생각 없이 따라만 가면 되는 너무 쉽고 좋은 결과물로 인증된 캐릭터도 남으니 그렇게 재밌을 수 없다.


하지만 게임이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반강제로 이렇게 게임을 즐겨보니 느껴지는 게 많았다. 먼저 하나하나 공부해 성장시킨 캐릭터에 애정이 생겼다. 또, 나만의 방법으로 게임을 즐겼다는 점에서 다른 이와는 다른 신선한 경험으로 게임을 마주했다는 점에서 '남들과는 달라'라는 어이없는 우월감도 느껴지기도 한다. 이 귀여운 우울감은 생각보다 낯간지럽지만 재미지다.


아마 누군가는 이 귀여운 우울감을 보고 이렇게 평가할 테다. '와 님 캐릭터 똥 캐릭터네요. 정말 약해요'라고 말이다. 그러한들 어떠한가 내가 재밌었으면 그만이다. 남들과 다르게 즐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성공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게임에서 이러한 '비효율의 묘미'를 오랜만에 찾았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줄어들어 게임을 할 시간도 없어지고 체력적으로도 부족해진다. 때문에 짧은 시간이 어떤 방법으로든, 효율적으로 재미를 뽑아내고자 고민한다. 그 방법이 단순히 누군가 만들어둔 효율적인 방법을 답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이렇게 혼자 하나하나 이해하고 찾아가며 게임을 즐기니 묘미가 좋았다. 새삼 시간 많던 학창 시절 시간만 많아서 게임 하나를 끝장낼 때까지 우려먹던 그때가 떠올랐다. 이 글을 보는 당신도 효율적인 것에 한눈팔지 말고, 비효율적인 것들에 고민을 던지면서 무언가를 즐겨보길 바란다. 당신의 비효율에서 묘미라는 효율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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