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프로젝트#6
최근 고약한 쪼가 생겼다. 작은 커피 기프티콘이 없으면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못 하겠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카카오톡에 뜬 생일을 보고 가볍게 생일축하한다고 톡하나 못 보내겠다는 말이다.
카카오톡에는 거진 매일 수많은 지인들의 생일이 뜬다. 당일 생일자부터 지난 생일, 다가올 생일 등 심한 날에는 목록이 좌르륵 생길 정도다. 카카오의 엄청난 배려랄까? 어떻게든 '카카오 선물하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그렇게 4,500원짜리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대체 몇 개나 샀을까?
결혼하고 나서는 어느 정도 용돈 내에서 이것을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결혼은 핑계일 뿐 그전부터 언제나 용돈은 부족했다.
아무튼 내 기준에서 생일이야말로 아무런 주제 없이 누군가에게 연락하기 딱 좋은 날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적절히 내가 좋아하는 업계 지인들에게나 인사를 드려야 하는 사람에게는 꼭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한잔 혹은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작은 컵 하나를 보내곤 했다. 신경 써서 보내는 경우는 지인이 일하는 곳 주변 프랜차이즈 카페의 커피 기프티콘을 찾아 선물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벌써 10년을 일하며 다양한 업계 지인을 쌓았다. 그래서 과거보다 더욱 많은 이들의 생일이 카카오톡에 뜬다. 당장 글을 쓰는 오늘도 당일 생일이 5명이나 있다. 특히나 자세히 보기를 누르면 지난 혹은 다가올 생일 포함 총 40명의 목록이 좌르륵 떠있다.
물론 이 45명을 모두 챙길 생각은 없다. 내 용돈 사정을 생각해 보면 가볍게 선물 보낼 지인은 5명 정도. 그 외 30명 정도는 연락하지 않아도 된다. 굳이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기에.
나머지 10명 정도가 문제다. 생일 축하는 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런 날에 오랜만에 연락해서 담소 카톡 나누고 싶다. 한 둘이면 모르겠는데 열명 다 연락하자니 용돈이 참 제한적이다.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창피한 이유겠지만, 모두 다 보내기엔 조금 아깝다. 아직 용돈으로 사고 싶은 게 많은 35세다. 그 외에도 한 달 내내 이런 식으로 다 보내다 보니 정말 거덜 나긴 하더라.
그렇게 지난해부터 카톡 때문에 타의로 당연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몇몇의 생일을 넘겼다. 사람이 재산이고 사람과 소통하는 것을 즐기는 나에게 여간 찝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왠지 모르게 기프티콘이 없으면 상대가 나를 '쪼잔하게 작은 기프티콘도 안 주냐?'라고 생각할 것 같은 기분이 맴돌았다.
솔직한 이야기로 어떤 누가 본인 생일을 축하해 준 사람에게 선물이 없다는 이유로 쪼잔하게 보겠는가? 물론 선물을 내가 먼저 받은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아니라면 그럴 리 없다.
심지어 꾸준히 선물을 주고받는 친한 지인들 중에서는 '이제 서로 부담스러우니 축하 연락 정도로만 하자'라고 말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내 동네 친구들끼리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서 하고 싶은 사람만 하는 생일계를 만들기도 했다. 그냥 계 형식으로 돈을 줄 테니 갖고 싶은 거 사라고말이다.
곱씹어보면 아마도 '쪼잔'이란 이유가 나온 결정적 단서는 내 안에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용돈 부족, 형식적이라 아까운 돈 등 내 심리가 반영된 게 분명하다. 무의식 속에서도 스스로 용돈 핑계를 대 버린 것이 창피했겠지. 그래서 올해부터는 방법을 바꿨다. 내면에 물음을 던지고 스스로 대답했다.
'생일축하하려면 돈(기프티콘)을 내야 하나요?'
'아니요'
이제 그래서 그냥 연락한다. 역시나 사람들은 고마워했고 기프트카트 없이도 흔쾌히 기뻐했다. 나의 쓸데없는 기우였을 뿐 어떤 방식이던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일은 참으로 재미지다.
20대 초반쯤 나는 친구들 생일이면 꼭 전화를 하곤 했다. 통화 말미에는 밥은 못 샀지만 그래도 오늘 맛있는 저녁 먹으라며 마무리해 왔었다. 당시 나는 가벼운 전화 한 통이 사람을 기분 좋고 특별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쩌다 지금은 왜 돈을 내야 축하할 수 있는 사람이 됐을까? 나잇값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냥 돈 아깝다고 생각한 나 스스로가 창피해서 인지 말이다.
당시 내 축하 전화를 받은 친구들은 머쓱해하곤 했는데 난 그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전화 한 통으로 기분 좋아지잖아, 이런 전화가 너의 생일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면 나도 즐겁지"라고.
저렇게 허세 가득한 소릴 어릴 적 해놓고 참 지금의 한심한 고민을 오래 했다.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의 생일을 축하해야겠다.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혹은 내 생일에도 축하를 받기 위해 등 무슨 이유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