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공감하는(확인받는) 즐거움

에세이 프로젝트#7

by 단단지

"저거 진짜 맛있었는데 그치?"


무언가 함께 경험한 것을 다시금 공유하고 공감하는 재미는 강력하다. 고리타분한 말이지만, 사람은 추억을 먹고살기에.


추억의 맛은 내가 말하는 것을 상대가 온전히 기억해 공감하고 본인의 의견까지 더해주는 것이다. 동네친구 무리를 만나 몇십 년째 같은 과거를 반복해도 짜릿하고 새로운 이유도 그와 같다. 어쩜 그 뻔한 무용담은 만날 때마다 새롭고 제일 맛있는 안주가 될까? 이유를 가늠해 보자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과의 유대는 끈끈해지고 두터워진 사이만큼 추억의 재미가 다시금 새로워져서 일 수 있다. 사실 새로운 추억도 좋지만 새로운 추억을 만들려면 귀찮음이 생긴다. 또, 누군가는 귀찮음이라는 총대를 메고 생겨날 추억을 위해 노력해줘야 한다.


그렇기에 우린 술잔을 기울인다. 결국 매우 익숙하고 실패하지 않는 아는 그 맛, 그 추억을 꺼내먹는 술자리가 가장 효율적이다. 나이 듦이라는 이유로 자주 만나기 어려운 친구들과 당장 재밌으려면 추억을 꺼내먹는 방법 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친구 외에도 와이프와의 결혼 생활에서도 이 점은 유효하다. 나는 와이프와 8년을 연애하고 벌써 2년이나 우당탕탕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오랜 연애만큼이나 서로 공감하고 추억할 거리들이 산더미 같다. 연애를 오래 하다 보니 갔던 곳을 또 가고, 먹었던 것을 또 먹고, 경험했던 것을 또다시 하는 일이 많다. 새로운 경험도 늘 하고 있지만 그간 쌓아온 추억이 훨씬 더 많다 보니 과거의 일을 서로 떠들며 노는 것은 확실히 재밌긴 하다. 앞서 구구절절 효율적인 재미니 뭐니 했지만 그냥 익숙한 게 최고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계속 음식에 비유하고 있는 데, 이 말을 들으면 공감할 것이다. 다이어트 명언 중 정확히 상충하는 2가지가 있지 않나. 옥주현의 '먹어 봐야 어차피 내가 아는 맛'과 유민상의 '아는 맛은 알아서 더 위험하다'. 공감에 기반한 추억도 똑같다. 그 기억이 생글생글하니 함께했던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고 상대도 그 추억에 공감한다면 그야말로 재미없을 수가 없다.


다만,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를 해보련다. 함께한 추억은 모두의 동의하에만 공감이 생기고 재밌어진다. 동시에 했던 경험을 동시에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낀 추억을 확인받기 위해 상대를 찾으면 안 된다. 이유는 지난 주말 처부모님을 모시고 간 대만 여행에서 찾을 수 있었다.


오래전 난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와이프와 2박 3일 대만을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가난한 사회 초년생 둘이 떠난 대만은 싱그러웠다. 물가도 저렴했고, 음식도 잘 맞았고, 언어도 생각보다 편한데, 사람까지 친절했던 대만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주기적으로 꼭 꺼내먹는 추억이다. 오죽하면 스마트폰 속 앨범과 추억이 동기화되면서 대만하면 떠오르는 와이프 원피스 무늬까지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이번 여행에서 다시금 대만을 선택한 것은 이러한 익숙함과 추억덕에 물리적, 심리적 허들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가이드를 자칭하며 3박 4일 여행을 떠났다.


여행은 예상한 대로 순탄했고 즐거웠다. 또한 일정 내내 7년 전 장소나 음식, 무언가를 발견하면 다시금 꺼내먹는 추억의 맛은 최고로 맛있었다. 그러나 여행 중후반으로 갈수록 전보다 몇 배는 늘어난 관광객, 둘이 아닌 넷이 여행 중이라는 책임감으로 생각보다 우린 지쳐갔다. 그러면서 점점 난 내 재미를 위해 와이프에게 추억을 일방적으로 공유하고 확인받고 있었다.


7년 전 대만 그 장소를 발견하면 와이프에게 조잘거렸다. 연신 "저거 진짜 맛있었는데 그치?"를 외쳤다. 와이프는 당연히 즐겁게 대답해 주었지만, 가장 강렬한 추억이 남은 야시장에서도 그랬을까? 난 스린 야시장에서 1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그녀를 몇십 번을 찾아댔다. 물론 3박 4일 여행 내내 와이프만 보면 "저거 기억나?"만 연거푸 뿜어낸 것은 덤이다.


나는 그녀가 "어 맞아 진짜 맛있었는데"라고 하길 바란 걸까? 아니면 단순히 그것을 찾아낸 내 스스로의 재미를 확인받고 싶었던 걸까. 사실 와이프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때문에 이 일로 나에게 불편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러한 생각은 문득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떠오른 망상에서 시작됐다. '공감하면 재밌지만 강요해서 확인만 받는 추억이라면 그것도 참 이기적일 수 있겠구나'라고


와이프는 별생각 없었을 수 있다. 정신없어서 내가 추억을 강요하고 있던 것조차 몰랐을 수도 있고. 그러나 이것이 일상에서도 흔히 생길 수 있기에 조금은 추억을 함께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확인받는 행위는 누군가에게 강요가 되기도 하니까. 추억은 확인받을 때가 아니라 공감할 때 맛집이 된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내 추억의 맛은 배려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그렇고말고


사실 지금도 우연히 서랍에서 발견한 스티커 사진을 당장 와이프에게 들고 가고 싶다. 그때 대학로에서 우연히 찾은 김치찜집에서 먹었던 그 파전이 기억나느냐고, 한심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실수 많던 그 연극이 기억나느냐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다짜고짜 말하지 않으리. 조금은 와이프가 공유받을 상태인지 보고 내 추억을 확인받고 함께 공유해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생일축하하려면 돈을 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