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프로젝트#8
우리 엄마는 항상 특정 단어를 떠올리지 못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러하다
옷을 사러 가자는 대화에서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그 얼굴 그거 있잖아, 얼굴 그거"
"얼굴 그게 뭐야, 다시 설명해 봐"
"아 그 고등학생 때 네가 사달라 했던 그 옷브랜드"
"그게 뭐지.."
"아 그 블랙야크같은 브랜드 있잖아"
"블랙야크? 얼굴? 아.. 노스페이스..."
약간 과장했지만, 다소 이런 식이다. 사실 표현이야 다른 표현으로 에둘러 말하면 이해 가능하지만, 대명사는 그 대명사 자체를 설명하느라 대화 맥락이 끊어지곤 한다. 물론 표현도 똑 들어맞는 표현을 사용해야 말의 맛이 사는 데, 다른 표현을 떠오르다가 의미전달이 틀려지기에 비슷하긴 하지만.
난 그런 점에서 엄마보다는 아니 그냥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말이 유창하다는 소리도 여럿 들어왔고, 스스로도 자부하고 있는 점도 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결국 나 또한 엄마와 다를 게 없다는 계기가 있었다. 최근 내 업에 대한 인사이트를 기반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 보고자 고군분투 중이다. 팟캐스트처럼 한 주제를 두고 사람들이 나와 떠들어대는 토크형 콘텐츠다. 혼자 하면 지속력이 떨어질듯해 회사 동료분과 같이 기획하고 있다. 둘 다 말 잘한다는 자뻑이 있어서, 주제만 정해놓고 무식하게 시작했다.
첫 촬영은 아침 일찍 회사 빈 회의실에서 시작했다.(우리 회사는 직원들의 유튜브 채널 운영을 장려한다) 이른 아침부터 출근하려니 지하철 풍경부터 다르더라. 1호선이 이렇게 일찍부터 붐빌 줄이야. 힘겹게 도착한 회의실에서 만난 우리 둘은 생기 가득하면서도 피곤에 절어있는 어김없는 직장인이었다. 그렇게 주섬주섬 가져온 삼각대, 카메라, 마이크, 커피를 세팅을 하고 토크판을 벌렸다.
초심자의 행운은 온다 했던가 '일찍 일어남, 당근에서 산 1만 원짜리 마이크, 아이스 아메리카노, 첫 촬영의 설렘, 말이 많은 두 인간, 대본은 없음'이라는 보잘것없는 재료로도 꽤나 엿듣고 싶어 지는 썰들이 오갔다. 둘은 킥킥거리며 카메라를 볼까? 상대방을 볼까? 존댓말을 할까? 가벼운 비속어도 섞어볼까? 고민하며 그렇게 40분을 떠들었다. 토론 아닌 토론을 하는 내내 우리 둘은 서로의 말에 어떻게든 끼어들려고 매처럼 타이밍을 기다렸다. '내가 더 잘 알아'와 '나도 더 잘 알아'라는 무기를 들고 쉴세 없는 티키타카를 했다. 아마 그는 어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비슷한 수준의 인사이트가 만들어내는 그 핑퐁은 자체 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렇게 첫 촬영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고 우린 뜨거워진 몸을 이끌고 출근했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벌써 10만 구독자는 자축파티'를 상상하며 말이다.
자칭 실패할 수 없는 이 40분짜리 영상의 첫 편집은 내가 맡았다. 모든 게 잘될 것 같은 싱그러운 일요일 아침 영상을 꺼내어 편집을 시작했다. 편집이랄 건 없고 ai의 힘을 빌려 자막을 붙이고 검수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영상 속 내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 엄마였다. 혼자 특정 단어, 특정 표현, 대명사 등이 떠오르지 않아 '아.. 음.. 어.. 그..'를 연발하고 있네? 무언가 계속 설명하려 하지만 딱 단어 하나로 정의 되는 것을 생각 못해서 돌아 돌아 장황한 소릴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약방의 감초라는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 어딜 가나 꼭 있는, 거기 가면 꼭 있어야 하는 그 느낌 같은 느낌이에요”라고 하거나 인스타그램 숏폼 영상의 명칭인 릴스가 생각 안 나서 “그 왜 있잖아, 인스타그램에서 틱톡 같은 거”라는 등 한 단어면 끝날 이야기를 생각 못해서 빙빙 둘러대고 있었다. 편집하면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내 모습이 딱했다. 영상 속 나는 무언가를 카메라 너머에 있는 시청자에게 설명하고 싶은 데 깨나 잘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 옆에 친한 동료도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설명을 못하고 있는 나를 보다 못해 멘트를 가져가 정리해주기도 했다. 어찌나 고맙던지.
왜 뻔히 아는 표현이나 단어를 설명 못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니 완벽하게 입에 생각을 따라가고 있지 못해 보였다. 당연할 것이 나는 직관의 N과 감정의 F의 대표 주자로서 순간적으로 많은 상상을 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그것을 단숨에 함축해 말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특히 말하고 싶은 게 많을수록 말을 더 빨리하다 보니 정리가 안될 수밖에. 그렇게 그 영상은 버려졌고 우린 다시금 촬영을 할 예정이다. 이 자리를 빌려 나와 함께 3시간 동안 고군분투했던 동료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다음엔 더 잘할게) 그때는 좀 더 천천히 말해야겠다. 어차피 말이 느리면 시청자들은 배속으로 영상을 보면 그만이니까 굳이 내가 빨리 말할 필요는 없겠다.
생각해 보면 일반적으로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어떤 이야기를 빨리하고 반응을 보고 싶어서 전전긍긍하며 와다다 말하는 경우가 있다. 말하다 망치면 결국 재미도 없고, 바보취급이나 당하는 데도 뭐가 그리 급했는지
아니면 반대로 쇼호스트 학원 다니던 시절 선생님들에게 배웠던 방법을 병행해 볼 생각이다. 일종의 트레이닝. 생각의 속도를 말로 따라가기 위해 모든 것을 쉬지 않고 중계하는 것이다. 설거지를 하면서, 출근을 하면서, 게임을 하면서 내 모습을 끊임없이 중계하는 거다. 그렇게 되면 말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상황이 오지 않고 반사적으로 스무스하게 입에 달린 뇌가 알아서 해결해 준다. 아나운서 할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지만, 앞서 말하지 않았는가? 난 말 잘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굳게 믿고 있다. 그 자뻑을 유지하려면 해야겠다. 해서 나쁠게 없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다음 촬영 때는 후천적인 노력이 필수인 뇌가 달림 입과 천천히 말하는 나를 통해 전현무의 새끼손톱정도 되는 능력은 갖추리라. 그게 아니더라도 평소 대화할 때 보다 더 유창하고, 엄마가 단어를 기억 못 해도 나도 똑같지 하며 답답해하지 않는 내가 되리라.
그리고 사실은 부전자전이라 했다. 아니 엄마와 더 친했으니 모전자전으로 하자. 우리 엄마도 사실은 말하고 싶은 게 산더미 같은 데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아 버벅거렸던 게 아닐까? 혹은 요즘으로 바라보자면 30년 넘게 같이 산 아들이 독립을 해버려서 오랜만에 아들과 대화하는 상황에서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걸까? 라며 급하게 감성진 마무리를 해본다.
이제는 내 생각에게 입이 따라올 시간을, 엄마에게는 천천히 말할 여유를 충분히 만들어 줘 보리다. 생각은 말보다 빠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