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프로젝트 #9
당연히 오해*는 쌍방이다. 초장부터 제목과 다른 소리를 하니 김이 빠지는가? 그러나 사실 어쩔 수 없게도 모든 상황을 공식처럼 대입해 해석할 수 없으니 오해는 쌍방이 맞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에서는 오해하게 만든 사람이 잘못된 것이라는 궤변 아닌 경험을 말하고자 한다.
*오해(誤解) : 뜻을 잘못 해석한 것
우리는 사람인지라 사람과 관계를 필연적으로 맺어야 한다. 당신이 인간관계에 이골이 나서 거부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사실 이미 하고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사람은 이유불문하고 내 말을 전달해야 하고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 한다. 쌍방으로 이뤄지는 소통은 삶에서 필수다. 보통 이 소통은 우린 말과 표정 몸짓으로 한 다곤 하지만, 말 혹은 글 때문에 오해하게 된다고 90%라고 자부한다. 당연하게도 인간은 동물보다 더 고차원 적인 소통이 필요해서 그렇다. 하다못해 치킨을 시킨다고 해도 메뉴판에 반반메뉴가 없다면, 혹시 "후라이드랑 양념이랑 반반도 되나요"라고 내 의사를 명확히 전해야 한다.(요즘엔 메뉴 자체에 반반이 있어 당당하게 반반이요라고 할 수 있는 세상이다만)
수도 없는 수많은 소통이 당장 내 주변에서 벌어진다. 때문에 결국 살아가려면 상대에게 의미 전달을 해야 하고 오해하지 않도록 하는 게 인생의 핵심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정해**하게 의견을 전달하려면 무슨 방법이 좋을까? 첫 번째로 명확하게 구체적인 의도를 전달하는 방법, 두 번째로는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해 풀이하는 방법, 마지막으로는 첫 번째와 두 번째를 합하는 방법이다. 오늘 다뤄보면 좋을 이야기는 두 번째 방법이다.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전달하라'라는 흔한 이야기보다는 덜 흔하니 재밌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의 오해는 대화 간 생기는 오해들로만 한정해 말하겠다. 모든 상황을 가정하면 나는 스스로 내 의견을 반박하다가 글을 포기할 것 같다.
**정해(正解) : 정확한 풀이나 해석
같은 말이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듣는다. 흔히 말해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던가? 이 말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상대의 아는 만큼을 고려해 말해야 한다. 오늘 글에서 아는 만큼이란 총명한 눈 혹은 안목 등을 뜻하는 혜안을 말하는 게 아니다. 단순히 서로가 갖고 있는 정보를 말한다. 본인 입장에서만 말한다는 말이다. 오해는 이때 발생한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은 내 상황을 모른다.
내가 배우기로 '오해하게 만든 사람 잘못이다'. 나는 한 때 게임 기자일을 하며 글로 벌어먹었다. 당시 편집장님은 말했다.
"글은 중학생이 읽어도 이해되게끔 써야 한다"
많은 의미가 함축된 말이다. 정보를 전달하는 기사를 쓰는 만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글이어야 하며 그것은 너무나도 명확해서 아무나 배경지식 없이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글을 쓰지 않는다만 위와 같은 진리는 나에게 '오해하게 만든 사람 잘못이다'로 변형됐다. 어찌 보면 편파적인 말로 보이지만 나에게는 옳은 말이다.
나는 꽤나 성찰 혹은 복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한 가지 거슬리는 사건이 생기면 반나절 정도는 상상 타임머신을 가동한다. 계속 그때를 곱씹으며 해석하고 이렇게 '했더라면'이라 상상을 펼쳐낸다. 그런 때마다 드는 생각은 이렇게 명확하게 말했다면 달라졌을 텐데, 그 사람은 당시 이러해 보이는데 그때 조금 더 배려를 해서 말했다면 달라졌을 텐데 등의 상상이 주를 이룬다. 심한 경우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에서 그때를 상상하며 입으로 쉐도우 복싱 상황극을 할 정도니 말이다. 그만큼 성찰을 많이 한다. 이 성찰은 여기서 끝나면 재미가 없어서 다음 소통이 이뤄질 때 최대한 써먹어보려고 노력하곤 한다.
그렇기에 나는 오해하게 만든 사람'이' 잘못이라고 스스로 매듭짓고 더 노력하려는 편이다. 사실 이게 정말 답답하겠지만 효율적인 방법이다. 아무리 말로 흔들고 난리 부르스를 춰도 이해 못 할 사람, 오해할 사람은 오해한다. 때문에 최대한 그 상황을 배제시키려면 자발적으로 '오해는 내가 실수이니 배려해서 다시 말한다'로 전개하는 편이 속 편하다.
물론 궤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모든 오해를 기준으로 하면 궤변이다. 당연히 계약이나 돈이 오가는 문제라면 잘잘못은 명확히 따져 오해가 아니었고 누군가의 실수였음을 정하면 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일상에서 오해란 작은 형태로 필연적으로 수도 없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잘잘못을 따지기 애매한 그 상황이 말이다. 그때는 내가 주장한 '오해하게 만든 사람이 잘못'이라는 말은 진리다.
결국 미리 배려해 두면 내 속이 편하다. 어찌 보면 배려를 해야 한다고 했기에 멋진 선민의식 같지만 사실은 나를 위해 남을 배려할 뿐이다. 위선도 선인 것처럼 나를 위한 행동일지라도 상대에 대한 배려가 포함돼 있다면 그냥 배려일 뿐이다.
내용이 돌고 돌았다. 다시금 핵심만 말하자면 굳이 배려해서 상대가 오해하지 않게 하자. 사람과의 대화에서 핵심은 상대와 내 정보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오해는 동등하지 않은 정보 상황에서 발생한다. 모두의 입장을 통일시키는 방법은 결국 배려다. 상대가 나와 정보가 당연히 동등하지 않을 것이며, 입장이다를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대화할 때 상대 입장이나 정보 수준을 배려하지 않았다면 오해를 만든 당사자는 나다. 잘못 이해하게끔 만든 내 잘못이라는 말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자. 그럼 편하다.
'오해는 하게 만든 내 탓이고, 배려는 생대가 아닌 나를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