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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지 않고 진중했으면 좋겠어

에세이 프로젝트#10

by 단단지

내가 다니는 회사는 꽤나 합리적이라 말할 수 있겠다. 회사라는 시스템 내에서는 당연히 못하는 것들이 한 트럭이다. 그럼에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할 수 있는 그런 회사다. 더불어 할 수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고, 할 수 있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어렸을 적 늘 상상한 '회사란 아무 이유 없이 멋진 곳일 거야'를 그래도 조금 실현시켜 주는 곳이라 자부한다. 물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회사는 없고, 우매함의 봉우리에 머물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한 없이 답도 없는 회사겠다만, 그 기준이라면 어딜 가나 같기에 생각 안 하련다. 그래서일까 내가 좋아하는 동료들은 오히려 인과관계가 무너진 상황을 마주해도 납득만 되면 다 큰 어른들처럼 수용한다.

아무튼 벌써 3년 가까이 다녔고, 여차저차 2번의 평가를 받았다. 두 평가 모두 다른 사람에게 받았으나 성과와 별개로 그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조언을 했다. "이제 업계 경력자로서 가볍지 않고 진중했으면 좋겠어" 이 말에는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까? 아마도 이제는 말을 아끼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자제하고 조금은 어른스러워지라는 말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첫 평가 당시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창피함이 몰려왔다. 회사가 젊다 보니 90년생인 나도 부서에서는 나이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나도 아직은 열정과 패기가 가득한 때라 자부해 부서를 들쑤시고 다니며 일을 했다. 어떤 때에는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씩씩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스스로도 설득 못할 논리를 남에게 펼쳐내기도 한다. 알면서도 말이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모습은 누군가에게 '저 사람은 스스로 컨트롤이 잘 안 되는 사람이구나' 혹은 '그렇기에 진중하지 않구나'라는 인식을 만들기 충분하다.


평가 이후 한동안은 평가대로 움직여보려고 노력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에 대한 고민을 첫 번째로 했다. 여러 방법 중 메모장 켜기가 깨나 유효했다. 우리 인플루언서업 쪽에서는 일기장에나 쓰라는 말이 있다. 감정이 올라오면 악플로 발산시켜 누군가에게 피해 주지 말고, 혼자 메모장 같은데 쓰라는 말이다. 생각보다 이 방법은 들어맞는다. 내가 상기된 이유들을 글로 차분하게 설명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글에는 담을 수 없는 톤과 손짓, 만능열쇠인 '무슨 말인지 알지?'를 할 수 없는 상황 등 그래서 쓰다 보면 지쳐 감정이 가라앉는 일이 흔하다. 내가 기자 이후 작년부터 인터넷에 글을 다시 쓰게 된 계기도 비슷한 이유였으니 이는 효과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억제기는 나의 장점을 빼앗아 갔다. 나는 생각보다 이 감정의 드러냄 혹은 올라온 감정 등을 연료 삼아 추동력으로 만들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진행함에 있어 차분해진 나는 열정도 함께 차분해졌다. 우스갯소리로 화나야 능률이 올라가는 타입이란 말이다. 단순하게 감정만 드러내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다. 허나 감정을 드러낸 만큼 무언가 해내는 사람은 그럼에도 납득가능한 사람일 테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사람이다. 나를 증기 기관차로 비유하자면 강력한 엔진을 두고 석탄을 넣지 말라고 하는 꼴이랄까.


물론 그럼에도 추동력을 얻든 능률이 올라가든 감정을 발산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혹은 어린 직원들이 배워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지 못하는 계기로도 충분하다. 이는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생기지 않고서야 자력으로 원래의 성격 혹은 성향을 바꿔내는 것은 힘들었다. 그리하여 내 결론은 나를 더 가볍게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더 겨볍게라니, 무슨 말일까? 추동력을 받을 나의 잠재력은 바꾸지 않고 유지한 채, 타인에게 납득가능한 가벼운 사람이라는 것을 주입하기로 말이다. 내 목적은 단순했다. 다소 가볍고 진중하진 않지만, 일을 다 벌려놓곤 하지만, 성과가 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의지할만한 사람, 그럼에도 어렵지 않고 배울 게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 방법은 단순했다. 좀 더 힘들여 사람들과 대화하면 됐다. 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즐기고 일이라고 느끼면서도 느끼지 않는 활동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고교시절에도 한 반 40명 모든 친구들과 작은 에피소드를 만들어보려고 오지랖을 부려오던 것을 떠올려보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 부서 인원이 약 40명이니 그때를 떠올리며 지난해는 01년생부터 78년생까지 모두와 소통하고 유대를 쌓으려고 많은 커피를 마셔댔다. 내 성격을 피할 수 없다면 더 판을 벌려 즐겨보자는 마음에서였다. 소위말해 일을 또 벌린 거다. 누군가 보면 스스로 바뀔 생각은 안 하고 세상을 납득시키려는 무식한 방법으로 보일 수 있겠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이 방법은 또 들어맞았다. 역시나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은 즐거웠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덕분에 협업 중심의 업무에서 능률은 높아졌고, 동료들과의 대화는 내 자양분이 됐다. 운이 좋게도 지난해 유의미한 성과까지 만들어 일석사조였다.


그렇게 어김없이 24년이 지나갔고 다시금 평가 시즌을 보냈다. 이번에도 역시나 "가볍지 않고 진중했으면 좋겠어"라는 조언을 받았다. 이번 그 의미는 지난해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추측건대 단순히 어른스러워지라는 말보다는 이전에 해오던 고민이나 비전을 한 단계 높게 가져가라는 말로 느껴졌다. 같은 조언임에도 다르게 들은 이유는 고군분투를 해봐서 일테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내 가벼움은 의도된 것이며 이를 기반해 내 장점을 최대치로 더 끌어올리겠다"라고 말이다. 이어 "그 별개로 말투나, 행동거지 등에서는 나이 든 만큼 혹은 경력이 쌓인 만큼 자중하겠다"라고 마무리를 지었다. 마침 좋은 평가를 받고 난 뒤 한 이야기라 내 말에는 지난 1년이 뒷받침 되어있었다. 그날 상사는 나에게 무언가 납득시키려 하지 않았다. 내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사람인만큼 무엇인지 알았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대다수는 남의 진실된 내면을 잘 모른다. 가족도 말 안 하면 모른다는데, 오죽하겠는가. 그렇기에 그냥 보이는 대로 상대방을 파악하는 게 전부다. 살다 보면 남에게 별별 소릴 참으로 다 듣는데, 보통은 칭찬보다는 칭찬을 묵음으로 한 조언이 많다.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를 곁들인. 이런 일들은 평생 잔잔한 자연재해처럼 들이닥친다. 핀잔, 잔소리, 훈수, 평가 등 다양한 형태로 말이다. 물론 오늘의 내 예시는 건설적인 평가, 비평이라 할 수 있겠다만, 비슷한 일이 있다면 오늘의 나처럼 해보길 권한다.


내가 행동한 요약하 보자면 첫 번째로는 인정하기다. 반복적인 훈수 따위의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서 마주하면 사실 그 말은 객관적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그런 이야기들은 고통스러워도 꼭 곱씹어보도록 하자. 내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남들이 그래 보인 다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인정은 하되 방법은 스스로 찾자. 남들의 눈이 객관적으로 날 보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말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내가 평소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른다. 이에 따라 꼭 자기 성찰을 기반한 스스로의 방법을 고민해 보자. 그러면 남들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다른 해답이 나온다. 그대로 행동해 보자. 그마저 틀린다면, 나중에 남들이 말한 방법으로 움직여보아도 충분하다. 또한 스스로의 방법이 틀리다면 오히려 다시금 첫 번째 방법처럼 인정하고 다시금 사람들의 조언대로 가보면 된다. 개인적으로 사람은 스스로 깨달아야 본질이 보인다. 스스로 깨닫기 위해 문제와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할 뿐.


아무튼 오늘의 에피소드를 통해 난 나 스스로의 문제는 나 자신이 더 잘 안다는 당연한 결론에 다다랐다. 내 글을 읽는 이들 중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면, 떠올려보자 '내가 너보다 날 더 잘 알아'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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