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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 맞추기 대작전

에세이 프로젝트 #14

by 단단지

누군가를 대변하고 사이에서 중재하는 일은 참으로 고난의 연속이다.


내가 생각하는 중재의 정의는 이러하다. 누구의 편도 아니지만 누구의 편이기도 한 상태로 모두가 원하는 방향을 이루도록 끌고 나아가는 것이다. 항상 사람들은 원하는 바가 다르고, 각자의 사정이 명확하다. 심지어 수 천 가지의 사정을 들어본 나로서는 그 각자의 사정들은 정말로 야속할 정도로 일리 있는 말들이다. 각자 내 사정에서는 다 맞는 말일 수 있겠다. 그렇고말고. 중재라는 일을 하는 데에 있어, 답답하거나 억지스러워도 그 입장들을 무시할 순 없다. 그렇기에 나는 최선을 다한다. 모두의 사정을 이해하고 서로가 소위 '기분 상하지 않는 선'에서 최고의 만족감을 가져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게 내 일이다.


단순하게는 에이전시업처럼 광고주가 원하는 사람들을 섭외하고 운용해 주는 것이 전부일 수 있겠다. 하지만 고이고 고여버린 게임 인플루언서판에서는 각각의 얽히고설킨 관계들까지 이해하고 파고들어야 그나마 내 자리 건사할 수 있다. 또, 사람마다 생각하는 정의가 달라서 호흡을 여러 번 맞춰보지 않은 사람들과 일하면 매번 생각을 일치시키는 것이 일이다. 그래서 나와 함께 일하는 우리 업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동료들은 항상 싱크 맞추기 대작전을 벌인다.


싱크 맞추기 대작전의 시작은 기본적인 정의부터 시작된다. 앞서 나열한 사정들과는 상관없이 애초부터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영역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하나만 소개하자면 단어 정의이다. 가장 반복적으로 싱크를 맞추는 단어 중 하나는 가편집이다. 가편집은 일반적으로 본격적인 편집에 앞서 기본적으로 뼈대나 흐름을 정해둔 편집이라고 불리운다. 그러나 개인 방송인과 일할 때 이 단어는 달라진다. 여기서의 뜻은 업로드 가능한 상태의 편집상태를 말한다. 그 이유는 단순한데, 첫 번째로 보통 개인 방송인들이 주는 완성본에는 광고주의 피드백이 전혀 들어가지 않다 보니, 편집의 여지가 남아 있다. 두 번째로는 서로 합의한 기획이 있음에도 상황에 따라 협의되지 않은 내용을 넣거나 협의된 내용을 빼먹는 경우가 다반사다. 마지막으로는 게임 방송씬에서는 게임을 즐겨보는 20대 초반, 심지어 고등학생이 일을 맡아서 편집을 하는 경우가 허다해,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오기도 해서 편집의 여지를 놔두기 위함이다.


가편집 외에도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들조차도 서로가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 중재자인 나는 단어에서 나오는 의미를 모두 정의해서 싱크를 맞추곤 한다. 여기서는 나름의 꿀팁 아닌 꿀팁이 있는 데, 항상 소통할 때 모호한 단어를 사용할 경우 주석을 달아 가볍게 설명해 둔다. 예를 들면 책을 읽다가 기호 '*'등을 붙여 하단에 설명하는 것처럼말이다. 이유는 아무리 말해도 우리는 사람이기에 원래 알던 단어로 다시금 돌아가기에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기본적인 단어에 대한 싱크를 맞추고 나면 본격적인 싱크 맞추기 대작전의 시작이다. 이때 나는 양쪽과 대화하며 그들이 원하는 바를 최대한 끌어낸다. 그래야 서로의 중간점을 찾을 수 있다. 모두가 100% 원하는 것을 가져갈 수 없기에 최대한 맞추려면 양쪽이 원하는 내용을 모두 알아야 한다. 특히 왜 원하는지 정확히 물어야 한다. 각자가 원하는 내용들 속에는 스토리가 있다. 예를 들어 신작 게임이 출시를 앞두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게임사는 원하는 바는 기본적으로 언제까지 영상이 올라갔으면 하고, 어떠한 포인트가 녹아들었으면 하며, 특정 캐치프라이즈를 유튜버가 많이 언급하길 바라며, 꼭 다운로드하라는 멘트를 하길 원한다. 가볍게 본다면 당연한 말들 같지만 그대로 유튜버에게 전달했다가는 너무 상식적인 수준의 지루한 요청들이라며 영상의 '재미'가 떨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 내용들을 조금만 파고들어 가 보면 이유가 보인다. '언제까지 올라갔으면'에서는 그들의 마케팅 플랜과 섭외된 다른 유튜버들과의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등장하고, '특정 캐치프라이즈 언급'에서는 게임사 실무자는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윗분들이 그 멘트에 꽂혀서인 특별한(?) 이유가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꼭 다운로드하라는 멘트'에서는 실제로 이 멘트를 유튜버가 할 때 사람들은 명확히 그 상품을 인지하고 다운로드라는 행동을 취하게 된다. 이처럼 들어보면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이런 상황설명을 하면 유튜버 입장에서도 반박할 수 없어 수긍하곤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돈을 지불하기에 다양한 요청을 한다. 하지만 유튜버 입장에서는 돈을 준다고 모두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게임사 입장은 사실 게임사라는 거대 집단의 입장이다. 이에 본인들이 원하는 바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다소 무리한 요청들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튜버는 자기 채널이 전 재산과도 같다. 온갖 무수한 요청을 다 들어주면 채널에 부담이 되기에 유튜버 입장에서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러한 상황에서는 게임사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도록, 채널에 왜 무리가 가는지 설명해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주말에 업로드를 하지 않는 채널이 있다면 본인 채널의 루틴을 지키고자 돈을 지불받았음에도 주말 업로드를 꺼려한다. 돈을 지불하는 입장에서는 '한 번 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생각보다 그러한 루틴은 유튜버에게는 중대한 사안이다. 특히 원래 영상이 올라가는 날이 아니기에, 뜬금없이 영상이 올라간다면 온전한 유튜버의 파워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사실 이러한 루틴은 유튜버마다 하나씩을 갖고 있어서 이러한 생태계를 광고주에게 명확히 인식시켜 우리가 원하는 바에 대한 싱크를 맞춰가는 게 참으로 어렵다.


이때 나는 항상 각자의 원하는 바를 들으면서 서로의 입장을 설명해주곤 한다. 각자가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는지 설명해 준 뒤 일을 시작하는 편이다. 물론 각자의 성질을 설명해도 위와 같은 문제는 숨 쉬듯 일어나긴 한다.

사실 가볍게 나열했지만 싱크 맞추기 대작전에서 위와 같은 서로의 사정을 이해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재자는 늘 죄인이다. 유튜버에게는 야속한 요청만 하는 짜증 나는 사람일 테고, 광고주에게는 유튜버 입장만 대변하는 이상한 사람일 테다. 그리고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양쪽 어딘가에서 교묘하게 내용이 바뀌어있기도 해서 정신줄 놓으면 모두 책임지기 딱 좋은 역할이다. 과거 침착맨님이 나영석 PD님과의 방송에서 한 말이 있다. "라이브 방송은 외줄 타기 하는 거예요~"라고 말이다. 우리는 라이브 방송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다른 의미의 외줄 타기를 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광고주와 유튜버의 입장에 반응해야 하고,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이슈에 민감해야 한다. 특히 유튜버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취약한 경우가 많은 데,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즉시 반응해 누구보다 그 사건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광고주에게는 그들에 맞춰 상황을 설명하고, 유튜버에게도 상황을 알려 문제를 타계해 나가야 하는 일도 왕왕 일어나곤 한다.


그래도 경력 10년 차의 나로서는 많이 쉬워졌다. 초반의 고군분투로 많은 업계인들의 싱크가 엇비슷하게 맞춰졌고 다른 카테고리들에 비해 그 나물의 그 밥인 게임 방송씬에서는 다양한 조력자들이 나와 함께 고민해 주기에 사건 사고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잊을만하면 대형 사고가 우리를 마주한다. 사실 요즘이야 별별일을 다 겪다 보니 침소봉대하진 않고 그러려니 하지만, 정말 심한 때는 진동 하나하나에 깜짝 놀라 반응하곤 했다. 복잡한 과업, 많은 유튜버를 한 번에 운용할 때에는 특히나 더. 온갖 사정들과 일들을 모아 싱크를 맞추다 보면 어쩔 때에는 약간의 성인 ADHD 있는 내가 감사하기도 하다. 집중할 수 없는 무수한 각자의 입장 폭격 속에서 원래 집중 못하는 내 ADHD가 마치 미사일 방어체계처럼 작용한 달까.


그럼에도 앞으로 내 싱크 맞추기 대작전의 뉴 페이지는 계속 열리겠지만 말이다. 지금 글을 돌아보니 싱크 맞추기의 정수는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다. 합리적이던 억지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재자의 역할은 그것을 끌고 모두가 하나의 목표로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니겠는 가. 결국 그러려면 상대에 빙의되어 입장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억지 속에서도 합리를 찾아내고, 합리라고 생각한 것들 속에서도 억지를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도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중재하는 일이 생길 테다. 피할 수 없는 중재를 맞닥뜨린다면 이것만은 떠올려줬으면 한다. 처음부터 당신이 판단하지 말자. 억지스럽더라도 서로의 입장에 빙의해 그들을 머릿속으로 대변해 보자. 그러면 그 가운데 무언가 꼭 있다. 정말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가운데 있긴 있다. 해결의 실마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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