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프로젝트 #13
식사 준비를 할 때마다 가장 하기 싫은 것이 있다. 바로 와이프 먹을 김장 김치 꺼내기다. 와이프가 식사를 준비하기에 얻어먹는 자로써 김치 정도 잘라오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냐만은. 꺼낼 때마다 익은 김치 향을 마주하면 드는 생각이 있다. 난 정말 꽤나 김치를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엔 수많은 김치가 있다. 오죽하면 김치게임이라 하여 구글에 '땡땡' 김치라고 검색해서 없으면 벌칙을 받는 게임이 있겠는가. 김치가 그렇게 많다는 건 김치맛 음식도 철철 넘쳐흐른다는 증거다. 난 이 김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인 중에서도 김치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지어다. 김치만 있어도 밥을 먹는다는 소리는 솔직히 내 기준에서는 옛말이다. 나에게 김치는 아주 완성도 높은 피클이나 치킨무 같은 것이라서. 물론 내가 명확히 싫어하는 김치는 정해져 있다. 바로 지극히 한국적인 익은 김치다. 그 한국의 피클 역할을 하고 있는 익은 사이다맛이 난다는 그 익은 김치가 난 싫다. 그렇다는 말은 그에 파생된 익은 김치류의 다양한 야채 김치들도 역시나 그냥 그렇다.
왜 싫을까 생각해 보면 두 가지가 넘는다. 첫 번째는 그 소금에 절여진 그 딱딱 물렁한 그 식감이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다. 물컹한 것도 아니고 생 배추처럼 아삭한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그 식감이 참 싫다. 특히나 무가 그 식감을 그대화 시켜주는 데 참 별로다. 지금이야 보쌈 먹을 때는 좀 먹지만 정말 과거에는 그 아삭도 아니고 물컹도 아니고 툭 끊기는 것도 아닌 그 모호함 어딘가의 식감이 참 거시기하다.
채소들은 소금에 절여지기 시작하면 그 싱싱하고 탱글한 몸을 포기해 버린다. 툭하면 부러진다는 표현이 알맞을 정도로 싱싱한 채소들을 어찌 그 소금에 절여 미스터 애매모호 식감씨를 만들어 버린다는 말인가. 힘을 잃은 겉면은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끈기만 남아 아삭과 뚝 어딘가에 서지도 못한 채 다시금 다시금 아삭과 뚝 바짓가랑이를 잡고 버티다 끊겨버리는 느낌이다. 솔직한 이야기로 이러한 식감이 싫은 이유는 나는 평소 할배 취향도 한 몫한다. 나는 밥 중에서도 질거나 퍼진 밥, 면중에서는 국수, 라면은 분 라면 등 소위 문드러지는 식감을 좋아한다.
두 번째로는 단맛이 일절 없는 그 김치맛과 향이 싫다. 살다 보니 난 단맛을 아주 좋아하는 것을 깨달은 지 오래다. 그래서 뭔가 단맛이 빠져있으면 뒷 끝맛에서 오는 공허함이 싫었다. 지금은 콜라보다는 탄산수를 좋아하지만 콜라를 끊기 위해 탄사수를 접했던 당시, 탄산의 청량함 후에는 단맛이 와야 하는 데 오지 않아 어색했던 경험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아무튼 보쌈김치나 겉절이 등은 목적에 맞게 은은한 단맛이 있다. 그러나 평소 꺼내먹는 김장김치는 단 맛이 전혀 없다. 애매모호한 식감에 단맛까지 없다 보니 내가 김치를 좋아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나 결국 나도 한국인인 것을.
김치가 모두 싫은 것은 아니다. 내가 전에 글로도 쓴 적 있는 "아 순댓국밥이 거기서 거기지"에 등장했던 순대국밥집의 김치는 일품 그 자체다. 달달한 것이 겉절이라서 아삭하기까지 하다. 이 김치는 집에 있다면 매일 먹고 싶다. 이 외에도 어쩔 수 없이 정말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짜파게티를 먹을 때 파김치는 있어야 한다.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파김치와 짜파게티는 한 몸이다. 이어서 보쌈을 먹을 때도 그토록 싫다고 나열한 애매모호한 식감 최고봉인 보쌈 무김치는 없어서는 안 될 친구다.
그렇다면 왜 그 대한민국 모든 집 냉장고에 있는 그 김장김치향을 지닌 그 김치만 싫은 걸까? 그 이유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내가 김치를 그닥 별로 선호하지 않게 된 (싫다고 했지만 특정 김치만 싫은 게 맞다) 이유는 유치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사건은 내가 유치원 최고 선배였던 바이야흐로 1996년 꿈나무 유치원 예롱반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 나이 만 6세 시절 김치를 처음 맛봤다.(그랬던 것 같다) 아무래도 초등학교 급식으로 넘어가기 전 응당 유치원 최고 선배는 김치를 배워 초등학교로 가야 하는 시절이었다. 그렇게 꿈나무 유치원 꼭대기 4층 예롱반에서는 유치원 선생님 지휘 하에 음식들을 배식받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앉아 급식 같은 밥을 먹었다.
당시 어린 내 친구들은 평소라면 잘 먹지 않을 음식들을 뒤적이며 본인들은 김치나 혹은 야채 무침 따위를 잘 먹는다며 앞다투어 자랑하며 반찬만 연거푸 먹어댔다. 그렇게 음식을 모두 먹고 나면 다시금 자랑하듯 선생님께 가져가 검사를 받고 식사를 종료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샛빨갛지만 매운맛은 없던 달달한 무말랭이를 먼저 해치우며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얼마나 김치가 먹기 싫었으면 그날의 그 기억이 난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이었다. 김치가 너무 먹기 싫었다. 당시 어린 마음에 그 김치는 정말 맛이 없었고 냄새도 싫었다. 문제는 선생님 이었다. 다 먹지 않으면 통과를 시켜주지 않았다. 강제로 먹인 것은 아니지만 어린 나이에 그 선생님이라는 관문은 정말 어마어마한 압박 그 자체였다. 그렇게 난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덩그러니 남겨진 잘게 썰려있는 김치를 바라만 봤다. 그러곤 결심하듯 한가득 입에 넣고 씹지도 않고 그냥 삼켰다. 아무리 어린이들을 위해 잘게 썰었다 하더라도 그냥 삼키는 건은 참으로 곤혹이었다. 그렇게 몇 날을 매일매일 강제로 삼켜댔다. 고통스러웠고 맛도 없었고, 김치 향과 신물이 올라오면서 힘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연유로 나에게는 김치, 그 익은 김치 향에 대한 반감이 성장기 내 DNA에 각인되어 버린 듯하다.
거창하게는 트라우마성으로 싫은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살다 보니 취향차이로 싫어진 것 같기도 하다만, 여전히 김치는 썩 선호하진 않는다. 완벽히 절대 김치를 안 먹는다고 하기엔 한국엔 김치가 너무 많아 조건부지만 확실한 건 김장 김치 중 익은 김치는 싫은 게 분명하긴 하다. 한 때는 노력해서 먹어보려 했으나 나이 들수록 음식 취향은 확고해지니 손이 더 안 가는 상황이랄까. 호불호가 갈리기로 유명한 고수나 기타 동남아, 아시아권 향식료, 대부분 여행을 가도 현지 음식은 잘 먹는 것들을 떠올려보면 취향에 더불어 트라우마 성으로 김치가 싫어진 것은 확실하다.
정말 내가 창피하게 김치를 싫어한다는 글을 이렇게나 구구절절 쓸 수 있을지는 몰랐지만,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유치원 점심시간 아무도 나에게 김치를 억지로 먹인 적이 없었는 데 왜 억지로 김치를 삼켜 댔을까. 만약 그때 김치가 안 나왔다면 과연 나는 자연스레 초, 중, 고 급식에서 김치를 먹게 됐을까? 하고 말이다. 익은 김치만 싫은 것을 보면 확실히 그때가 문제였던 것 같긴 한 데 아이러니하다. 자식을 낳게 된다면 우리 와이프가 엄청난 김치 광이기에 문제없이 아이도 김치를 좋아하게 될 것 같지만, 만약 둘 다 싫어하는 음식이나 싫어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대로 아이에게 영향이 가서 아이도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오늘 글을 쓰며 오랜만에 김치에 대해 생각했다. 잠깐 김치를 먹어볼 까 떠올려봤다. 하지만 아니다. 아직도 그 향을 생각하면 별로인 걸 보면, 난 여전히 김치가 싫다. 그냥 그 30년 전 유치원 선생님을 원망하며 살련다. 그렇다. 나는 명백히 익은 김치가 싫다. 그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