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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사실을 종종 까먹는다.

에세이 프로젝트 #15

by 단단지

책을 읽는 시간은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이다. 말이 많은 나로부터 타인들을 쉬게 하는 시간이고, 나라는 사람도 집중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동시에 책 문장 하나하나를 보다 문득 어느 때가 떠올라 깊은 사색에 빠져드는 한 때이기도 하다. 이 시간만은 온갖 혼자만의 상상을 펼쳐낸다.


글과 함께 사색을 즐기다 보면 글에 잠기기도 하고 글과 연관된 나의 일상이 연결돼 회상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은근 사람은 모든 상황들을 나에게 맞춰 듣거나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실연을 당한 직후라면 세상 모든 슬픈 노래의 가사가 내 이야기 같을 것이다. 또, 마음이 부쳐 찾아간 부평 지하상가 2만 원짜리 타로점의 구리고 구린 그 해석이 세상 모두 내 이야기라고 느껴질 테다. 난 평소 독서를 하며 떠오르는 생각들이 그 즉시 내 평범한 현실과 오버랩되곤 한다. 대다수는 '~할걸'하며 후회 같은 성찰, 성찰 같은 후회를 하곤 한다.


그러곤 나는 그 사실을 종종 까먹는다.


최근 일간 이슬아를 구독해 읽다가 이연실 편집자님의 책 '에세이 만드는 법'을 알게 됐다. 그중 5 챕터 '사람들의 오만가지 디자인 수정 요청 앞에서 주저앉고 싶을 때 우리의 자세'에서 여러모로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 내 상황에 맞춰들은 경향이 있는 듯하지만 정말 그랬다. 해당 챕터의 내용은 요약하자면 이렇다. 책을 출간함에 있어 작가와 출판사 상부를 조율하는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이야기다. 중간에 있는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열 열하게 책의 좋은 방향성과 사업성을 위해 노력하지만 사실은 그 과정이 쉽지는 않다. 서로 방향은 같지만 수정에 수정에 수정을 거쳐야 하고 검수에 검수와 마지막 수정을 거쳐야 하다 보니 사람들의 마음은 얄팍해지고 섭섭해질 수 박에 없다. 이 상황에서 이연실 편집자님은 그럼에도 힘을 내서 한 번만 더라고 외치며 모두를 이끌어보겠다고 다짐하며 챕터는 마무리된다.


책 편집자만큼이나 긴 시간을 들여 실물의 무언가를 내놓는 일을 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얼추 알 수 있다. 광고주와 크리에이터 사이에서 중간자를 자처하며 모두가 원하는 방향을 찾고 있는 나에게는 모두가 힘들어할 때 한 번 더라고 외쳐야 하는 그 마음이 너무나도 와닿았다. 내 업무도 단순 광고주와 크리에이터 사이에서의 조율이라고 보기엔 중간에 있는 사람이 아주 많다.


중간에서 조율하는 업무를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사이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다. 단순 광고주와 크리에이터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크리에이터 매니저와 썸네일러와 편집자와 혹은 또 껴있는 중간 누군가를 조율해야 한다. 특히 창작자인 크리에이터와 사업가인 광고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행선지를 하나로 모아 한 차례의 전투를 더 치러야 한다는 소식을 모두에게 전달해야 한다. 정말 그 한 마디 꺼내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지만 끝까지 결과물을 쟁취해야 한다. 그게 내 일이니까.


그래서 소위 말해 말이라도 이쁘게 해야 한다. 하지만 10년 간의 여정을 통해 분명히 알고 있는 나도 종종 이 사실을 까맣게 잊는다. 분명 멋들어지게 성찰을 했지만 다음날 같을 일을 마주해도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처럼 한다. 세상 보살된 것처럼 득도한 듯 성찰에 취해있을 땐 언제고 다음날의 그냥 평소의 내가 된다. 근 1년간 글을 쓰며 다양한 생각들이 겹겹이 층을 이뤘지만 나는 성장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지금이다. 이연실 편집자님도 책을 쓰는 과정에서 본인의 과거를 회고하며 성찰했겠지. 나보다도 훨씬 경력이 긴 편집자님도 매번 성찰하며 회고하고 후회하겠지라는 생각이 남는다.


나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지 않나라고 생각하기엔 실제로 사무실에서 어떤 자존감과 자존심, 의도는 그렇지 않지만 직무상 내뱉어버린 상처 많은 소통들은 분명히 있을 테다. 충분히 사려 깊었다고 생각하면서 모른 척 넘어간 나의 행동들이 사실 떠오르기도 한다. 안 그래도 됐었는데 과하게 호들갑 치며 한 행동들.


아마 이 글 이후에도 회사 가면 분명 까먹는다. 분명 책을 읽는 순간,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명확히 사색하고 성찰하고 후회한다. 하지만 회사에 간다면 그 사실은 이 글의 제목처럼 종종이 아니라 역시 까먹는다. 지금 생각으론 과거 고3시절 공부하기 싫을 때 맞는 말만 하던 수학 선생님 잔소리를 녹음해 들으며 각성해보려 했던 한심한 내가 되고 싶을 정도다. 무슨 말이냐 하면 지금의 이 각성한 내가 내일 출근길에 나에게 훈수를 해줬으면 할 정도라는 말이다.


물론 안 하는 것보다 성찰하는 게 낫다. 다음에 안 틀리려면 오답노트를 꾸준히 해야지 않겠는가? 고3 시절 더럽게도 수능 공부는 어렵던 나에게 오답노트가 웬 말이겠냐만 그럼에도 성찰하는 게 낫지 않겠나 싶긴 하다. 그렇다고 내가 그리 모진사람까진 아니다. 일을 10년 하면서 마냥 말랑한 사람이 아니게 되었을 뿐이다. 인간관계가 어쩔 수 없이 재산이 된 입장에서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꽤 많기에 정말 모진사람은 아니라 생각한다.


까먹어버린 나를 경계할 뿐이긴 하다. 어찌해야 종종 까먹는 것을 어쩌다 잊어버리는 수준으로 만들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일할 때 절대 잊으면 안 되는 것들은 거의 암구호 외우듯 중얼거린다. 그러다 못 버티는 수준의 양이되면 여기저기 포스트잇에 작성해두곤 한다. 근데 사실은 오늘의 내용들은 작성해 여기저기 둔다고 해도 까먹지만 않을 뿐일 것 같아 다른 부분에서 걱정이다. 마음의 상태가 부친다면 분명 어쩔 수 없다는 합리화를 할 텐데, 방법이 없으려나 싶다. 갈피는 못 집았지만 글로 남겨뒀으니 꺼내보고 꺼내봐야 하는 것 유일해 보인다.


내일은 평온한 나일 테지만, 바빠진 어느 날 사무실에서 나는 이 사실들을 종종 까먹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모두에게 약아빠진 마음이 부친 내가 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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