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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시민이 될 뻔한 이야기

by 단단지


요즘 나는 ai 관련 영상들을 즐겨본다. ai 때문에 바뀔 세상의 이야기를 전문가들을 통해 듣다보면 그간의 상식이 흔들리곤 한다. 그간의 상식이 흔들리는 내용들이 많아, 상상의 N인 나에게는 즐거운 가십거리다. 기술봉건주의니, 민주주의 개념 근간의 변화니, 블루칼라가 다시 떠오른다느니.. 그렇게 요 몇 주간 외국 인터뷰까지 찾아볼 정도로 ai 관련 콘텐츠를 즐겼다. 끝장나게 즐기다보니 뭔가 내 스스로 벌써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 같다고 느꼈다. 이게 시작이었다.


미래와 ai에 대한 주제로 영상들을 여럿 보다보니 깨시민이 된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ai 시대를 준비하지 않고 최소 ai 서비스를 활용해 삶에 적용해 보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어쩌려고 ai를 사용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상대를 우매하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우매한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나 조차도 그저 시시콜콜한 것들을 ai에 물어보거나 업무의 효율화해 주는 정도로 ai를 사용하면서 말이다. 특히나 그깟 영상 몇 개 본 것이 다인데, 찰나에 그런 생각 자체가 들었다는 게 한심했다.


웃긴건 회사 본부장님이 ai시대는 따라가야한다며 몇개월 동안 강제로 ai를 사용하게끔 시켜서 지금 ai를 좀 다룰 줄 아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를 소위 더닝크루거, 우매함의 봉우리라고 부르는데 내가 딱 그꼴이었다. 아무튼 다행히도 스스로의 이런 창피함을 알아차리는 데 며칠 걸리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얼굴 붉어지는 소소한 나만의 사건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깨시민이 된 것 같은 느낌은 과거부터 있었지만 지금 이 시대에 아주 무섭게 생겨나고 있다. ai부터 유튜브 등 양질의 정보가 세상에 쏟아져 나온다. 그렇기에 이 대홍수 속에서 분야를 막론하고 깨시민들이 한 가득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깨시민, 깨어있는 시민의 준말이다.


뜻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스스로 깨어있다며 자화자찬하는 사람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뉘앙스의 단어이기도 하다. 다른말로는 선민의식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깨어있다는 상태는 정치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왔지만, 이 의미는 이제 전방위로 확장됐다. 요즘은 학벌, 재력, 외모, 인품, 어떤 특정 분야의 지식 등 그냥 뭘 좀 더 갖고 있거나, 안다 싶으면 바로 깨시민의 상태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 유튜브의 세계가 열리고 고도화 되면서 세상의 오만 전문가들이 등장했다. 이 방구석 전문가들의 대결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볼 수 있다. 단순히 정보를 공유하며 서로의 도움이 되면 참 좋겠으나, 이 전문가들은 본인들이 무언가를 더 잘 안다는 점에서 우월함이라는 옷을 입기 시작했다. 사실은 우매함인것을 모른 채 사람들은 결국 잘못된 방향으로 깨시민이 되었다.


정치 뉴스 댓글에서나 볼 수 있었던 깨시민들은 이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인터넷방송 업계에서 일하는 나는 매일매일 접한다. 네이트, 더쿠, 에프엠코리아, 루리웹, 디시인사이드, 나무위키 등의 커뮤니티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인기글이 올라온다. 인기있는 게시글일수록 댓글창은 깨시민들의 집합소가 된다. 게시글 자체로 자신의 우월함(사실은 우매함)을 드러내는 사람, 그 게시글에 다시금 댓글로 본인이 얼마나 더 우월한지 깨시민인지 자랑하는 사람, 그리고 그 대댓글에 또다시 깨시민을 자처하며 등장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단 하나의 게시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런 글이 하루에도 수십건 올라오니 깨시민 천국이라 할 수 있겠다.


깨시민은 스스로 우월함에 취하는 모든 상태라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가끔 편협해질 때가 있는 우리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선망하는 어느 경지'가 아닌가 싶다. 스스로 깨시민이라 생각하고 티를 절대 안 낼 자신이 있다면 우월함에 취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그게 가능할 리가. 그렇다면 점점 더 이런 깨시민의 세상이 될 텐데, 스스로 깨시민이 되지 않으려면 대체 어찌해야 할까? 나 조차도 이 글을 통해 '난 깨시민척 한 사람 아닌데?'라고 핑계를 대고 있는데 그 방법이 뭘까.


나는 내 ai 에피소드에서 해답을 찾았다. 그저 상식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한다. 여기서 상식적이라 함은 매 상황마다 그 상황의 상식을 따르라는 말이다. 누군가를 내 오만함으로 한심하게 봤다면, 다시금 스스로의 한심함을 돌아봐야 할 테며, 행동으로 깨시민인 척을 해버렸다면 상대에게 사과해야하는 것이 인지상정일테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과하면 상대가 나에게 깨시민인척 하기도한다. 그때는 내 실수에서 비롯되었으니 무조건 참기로 하자. 또한 어떤게 상식이냐고 묻는다면 답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보편의 상식이라고 정의하겠다.


솔직히 위 방법을 내가 뱉어놨지만 당장 내일부터 못 지키는 일이 부지기수일 게 뻔하다. 허나 어쩌겠는가 깨시민은 될 수 없으니 항상 생각하는 수밖에. 이 글을 보는 누군가도 언제든지 상황에 지배되어 깨시민이 될 수 있다. 그때마다 주문을 외워 보자. '너(자신) 뭐 되냐고'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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