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마지막 십삼일
어머니의 마지막 십삼일
사람은 모두 떠난다.
그러나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그 시간을 어떻게 건너왔는지가 오래 남는다.
이 글은 어머니가 떠나시기 전
마지막 십삼일 동안
곁에서 지켜본 기록이다.
설명하지 않고,
겪은 만큼만 적었다.
어머니가 병원에 오신 지 일주일째 되던 날,
조교수가 병실로 와 검사 결과를 설명했다.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말이었다.
가족들과 상의하라는 말만 남기고
그는 병실을 나갔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는 분명 일어나실 분이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말하며
현실을 밀어냈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숨 쉬고 계신 어머니 앞에서
나는 아무 결정도 할 수 없었다.
그날 병실에는 울음이 끊이지 않았다.
밤이 되자 사람들은 하나둘 돌아갔고
누님과 나만 남았다.
젊은 의사들이 교대로
손으로 산소를 주입했다.
그들은 말이 없었고
나는 그 침묵 속에서
그들 또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느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병원을 나섰다.
어머니가 쉬실 자리를 보기 위해
명륜역에서 첫차를 타고
영천 만불산으로 향했다.
전망이 트인 곳을 골랐다.
어머니가 좋아하실 것 같았다.
부도탑 번호를 계약하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입에는 여전히 호스가 물려 있었고
누님은 말없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
중환자실로 옮겨 달라는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제는 준비해야 할 단계라는 말이 돌아왔다.
월요일,
담당 교수가 모든 자료를 다시 살펴본 뒤
집으로 모시거나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라는
최종 판단을 전했다.
결정은 내 몫이었다.
나는 어머니 곁에
조금 더 남기로 했다.
어머니의 손을 잡아
내 발등 위에 올려 두었다.
아직 체온이 느껴졌다.
그 온기가
내게는 충분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숨은 얕아졌고
몸은 빠르게 식어 갔다.
숫자들은 의미를 잃었다.
임종 이틀 전,
병실에는 기계음만 남았다.
나는 어머니의 귀에 대고
이름을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임종 하루 전,
가족들이 모여
각자의 방식으로 작별을 나눴다.
나는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낮게 전했다.
새벽녘,
어머니의 숨이
한 번 크게 들린 뒤
멈췄다.
의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떠나셨다.
나는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통이 사라진 표정이었다.
“어머니, 고생 많으셨어요.”
그 말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끝문장
곁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누군가의 마지막은
조금 덜 외로웠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