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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Mar 19. 2016

설국(雪国)

설국은 제대로 읽어냈는지 모를 만큼 미묘한 감정들로 덮여있다.


  일본 서정문학의 정수라고 알려진 설국을 읽으면서 작가의 주관성이 너무나도 뚜렷한 나머지 그의 감정과 정서를 읽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읽으며 머릿속에 일본 특유의 색체가 그려지는 건 일본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기 때문만은 절대 아니다. 감각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쓰인 글을 천천히 읽다 보면 자연스레 이럴 거라고 장면을 그릴 수 있다.


  잠깐 작가에 대해 알아보면,

그는 인도의 타고르 다음 동양에서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유년시절,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로 잃고 조부모 슬하에서 살았지만, 그 또한 길지 않았다. 7세에 조모, 15세엔 조부의 사망으로 외가 친척 아래에서 성장한다. 대학시절에는 여자의 일방적인 파혼으로 실연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사랑의 결핍이라는 성장 배경은 고스란히 그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진다

그는 노벨상을 받은 4년 후, 자택에서 가스사고로 사망하였는데 사망원인으로 제자 유키오의 할복자살에 대한 죄책감에 의한 자살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시마무라, 게이샤(일본 기생)인 고마코 그리고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기차에서 처음 봤던 유코, 이 세람의 미묘한 삼각관계를 그리고 있다. 그 미묘한 관계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P. 7


  소설은 주인공 시마무라가 지난 초여름에 만났던 고마코를 만나기 위해 국경-군마 현과 니가타 현의 접경-의 터널을 통과하며 시작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긴 터널, 덜컹덜컹 거리는 기차에서 마주하는 설국의 밤은 어떨까? 소설의 첫 문장은 마치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환상을 가지게 한다.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아 무위도식하는, 시마무라는 초여름에 찾은 설국(雪国)에서 등산을 하게 된다. 자연과 자신에 대한 진지함 마저도 잃기 일쑤여서 등산을 해야 한다는 시마무라는 허무주의에 빠져있는 작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등산을 마치고 여관으로 돌아온 그는 게이샤를 부른다. 바로 그때 그는 처음으로 고마코를 만나게 된다.


  여자의 인상은 믿기 어려울 만큼 깨끗했다. 발가락 뒤 오목한 곳까지 깨끗할 거라고 생각했다. P.18


  고마코가 마음에 든 그는, 두 번째 만남에서 고마코에게 다른 게이샤를 소개해달라고 한다. 이유은 즉슨 산행 직후의 욕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작가의 표현이 남다르다. 그는 산행의 감상이 여자에게까지 꼬리를 늘어뜨렸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하튼 시마무라의 행동으로 보아 그에게 그녀는 욕정의 대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우정 비슷한 감정을 느꼈고, 그래서 고마코와 관계를 지속적으로 가져가기 위해 다른 게이샤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다. 보통 남자의 시선으로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는 허무주의자다. 작가가 만든 주인공, 그런 그에게 욕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그다음이 더 가관이다.


  더욱이 그는 여름 피서지를 어디로 할까 망설이고 있던 터라, 이 온천 마을로 가족을 데리고 올까도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여자는 다행히 초보라, 아내에게도 좋은 말동무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심심풀이로 춤도 배울 수 있으리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여자에게 우정 같은 것을 느꼈다고 해도 그는 이미 이 정도의 여울을 건너고 있었다.

  물론 여기엔 시마무라가 본 저녁 풍경 거울이 작용했을 것이다. 방금 들은 대로 신상이 애매한 여자의 뒤탈을 꺼려서가 아니라, 해거름의 기차 유리창에 비친 여자의 얼굴처럼 비현실적인 눈으로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P. 24


  그는 아내와 아이가 있는 남자였고, 그런 남자가 코마코와의 오랜 관계를 위해 다른 게이샤를 요청한 것이다. 그럼에도 코마코는 시마무라에 사랑이 섞인 화 아닌 화를 낸다. 자신을 탐하지 않는 남자에 대한 감정을 분노가 아닌 아쉬움으로 삭히며 그녀는 그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바로 여자의 벌거벗은 마음이 자신의 남자를 부르는 소리임에 틀림이 없다. P.32


  고마코는 시마무라가 머무르는 여관에 틈만 나면 그를 보기 위해 들린다. 잠시라도 그를 보고 싶어 하는 고마코와는 달리 시마무라는 그녀에게 매력은 느끼지만 그녀를 가지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가 도덕적으로 정조관념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그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허무"였다.  


  고마코가 아들의 약혼녀, 요코가 아들의 새 애인, 그러나 아들이 얼마 못가 죽는다면, 시마무라의 머리에는 또다시 헛수고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고마코가 약혼자로서의 약속을 끝까지 지킨 것도, 몸을 팔아서까지 요양시킨 것도 모두 헛수고가 아니고 무엇이랴. P.55


  그러나 요코가 이 집에 있다고 생각하니 시마무라는 고마코를 부르기가 왠지 꺼려졌다. 고마코의 애정은 그를 향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름다운 헛수고인 양 생각하는 그 자신이 지닌 허무가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고마코의 살아가려는 생명력이 벌거벗은 맨살로 직접 와 닿았다. 그는 고마코가 가여웠고 동시에 자신도 애처로워졌다. 이러한 모습을 무심히 꿰뚫어 보는, 빛을 닮은 눈이 요코에게 있을 것 같아, 시마무라는 이 여자에게도 마음이 끌렸다. P.110


  허무주의로 가득 찬 시마무라에게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생긴다. 허무주의로 가득했던 그는 부지불식간에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놀란 나머지 그는 이별을 결심하게 된다.


  시마무라의 손도 따뜻했으나 고마코의 손은 더 뜨거웠다. 왠지 시마무라는 이별할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P. 149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雪国)은 그다지 내용이 많은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작가의 감정과 정서를 느끼며 줄거리마저 따라가야 하기에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왜냐면 설국은 제대로 읽어냈는지 모를 만큼 미묘한 감정들로 덮여있기 때문이다. 물론 문장이야 아름답지만 그 또한 막 읽어내기엔 표현이 쉽진 않았다.

  그럼에도 끝까지 집중해서 읽은 것은 무엇보다 국경의 터널을 지나 설국으로 들어간다는 첫 소절 때문이었다. 또한 소설을 마지막 문장마저 작가의 주관적인 감정과 정서가 듬뿍 들어가 그 서정성을 더해주어 책장을 덮고도 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발에 힘을 주며 올려다 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했다. P.152


  인파 속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세상을 더 이상 무의미하게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시마무라에게 설국의 밤하늘은 그 무엇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으리라 생각된다.



참고: 네이버 캐스터(가와바타 야스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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