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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Mar 17. 2016

1984

그런 의미에서 1984는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테러방지법, 국정교과서 그리고 이퀄리브리엄, 터미네이터, 알파고가 연상되었다. 너무 멀리 갔나?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는 전체주의 국가 아래에서 체재 유지를 위해 각각 개인의 삶이 어떻게 유린당하는지를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의 파멸을 통해서 충격적으로 그리고 있다. 주인공 윈스턴은 진리부에서 신문 또는 역사 등을 수정 발간하는 임무를 뛰고 있는 외부 당원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P. 53

  그때그때의 필요에 맞지 않는 기사나 의견은 기록에서 영구히 삭제되었다. 말하자면 모든 역사는 필요에 따라 깨끗이 지우고 다시 고쳐 쓰는 양피지 위의 글씨와도 같은 것이었다. P.59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진리부라는 건물에서 역사를 조작하는 기록국에서 일한다. 그런 그가 자신이 역사를 조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매일 조작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의식하지 못한듯하다. 아마 세뇌쯤을 당해서 그런 건데, 자신의 기억을 말살시키는 현실 제어, 바로 "이중사고"때문이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 진실을 훤히 알면서도 교묘하게 꾸민 거짓말을 하는 것, 철회된 두 가지 견해를 동시에 지지하고 서로 모순되는 줄 알면서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믿는 것, 논리를 사용하여 논리에 맞서는 것, 도덕을 주장하면서 도덕을 거부하는 것, 민주주의가 아닌 줄 뻔히 알면서 당이 민주주의 수호자라고 믿는 것, 잊어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든 잊어버리고 필요한 순간에만 기억에 떠올렸다가 다시 곧바로 잊어버리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 자체에다 똑같은 과정을 적용하는 것  ……. 이런 것들은 지극히 미묘하다. 의식적으로 무의식 상태에 빠지고, 자신이 방금 행단 최면 행위에 대해서까지 의식하지 못하는 격이다. 그래서 '이중사고'라는 말을 이해하는 데조차 이중사고를 사용해야만 한다. P.53-54

  

  자신일 한 일을 잊어버리고, 잊어버렸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이중사고"를 하던 윈스턴은 조금씩 진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거대한 체재의 붕괴를 위해 사랑하는 여인 줄리아와 함께 어려운 한 발짝을 내딛게 된다.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사람의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 없는 없지. 만약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비록 대단한 성과는 얻지 못하더라도 그들을 패배시키는 셈은 되는 거야." P. 236


  그들의 위대한 한걸음은 땅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상경찰에 발각되고 그들은 고문을 받게 된다. 사람의 속마음까지는 지배할 수 없다고 확신하던 주인공은 사랑하는 여인을 배신하고, 오히려 자신의 온 마음을 바쳐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된다.

  이 디스토피아 소설은 조지 오웰이 아내를 잃고 난 다음 쓰여져서 더욱더 암울함을 드러낸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충격적인 결말은 책을 덮고도 쉽게 가시지 않는다. 영화도 해피엔딩이 아니면 찝찝하지 않은가! 이렇게 암울하게 그린 것은 아무리 인간의 숭고한 의지와 고결한 이상이 있더라도 전체주의에서는 인간의 이상과 의지 따위는 한낱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였기 때문일 테다.

  그는 이 소설을 1946년에 쓰기 시작하여 1948년에 완성하였다. 소설이 쓰인 시점에서 1984년은 미래이지만 이 소설을 읽는 우리에게는 과거에 지나지 않는다. 조지 오웰은 앨빈 토플러의 "제 3의 물결"처럼 미래를 예견한 것이 아니라 당시 미래(1984)를 향해 경종을 울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그의 경종은 유효함을 넘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1984는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

  소설에서 주야장천 나오는 말이다. 실존하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빅 브라더는 항상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텔레스크린,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사상경찰, 자녀들의 감시와 고발로 숨을 곳은 없다. 어디에서도 안전한 곳은 없으며,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빅 브라더는 보고 있다.

  그런데 이런 모습들이 낯설지가 않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곳곳에 설치되어있는 cctv는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언제든지 확인할 수가 있다. 어디를 가든지 우리의 모습은 관찰이 아닌 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하지만 언제든지 목적은 달라질 수 있다. 얼마 전 국회에서 테러방지법을 저지하기 위해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실시되기도 했었다. 바로 민간인 사찰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의 편향된 시각을 걱정하여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기도 했었다. 1984의 텔레스크린과 진리부의 기록부가 연상되지 않는가?

  작은 것을 탐하여 큰 것을 잃는다는 소탐대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는 1984의 암울한 디스토피아가 되어선 안 된다. 체재의 유지와 효율적인 관리가 각 개인의 자유, 인권 그리고 존엄성 보다 우선시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가 아니라 "우리가 빅 브라더를 주시하고 있다."라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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