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후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소망 Apr 12. 2016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운명이 아무리 비극적이더라도 ...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인생은 수많은 선택들의 연속이자 그것들의 집합들이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뭘 먹을지, 뭘 입을지 그리고 현관을 나서며 무엇을 신을지와 같은 사소한 것들로 시작하여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떤 사람과 사랑을 나눌지, 어떤 차와 집을 살건지 등의 수많은 선택들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선택들은 개인의 기질에 따라서 또는 자신만의 고민과 사유 그리고 성찰을 통한 결정일 것이다.

  그런데 참 재미난 것은 사람마다 그 선택의 순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상이하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선택의 순간에 고민고민 끝에 어렵게 결정을 내리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고민없이 쉽게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깐 사람에 따라서 쉽게 결정하거나 어렵게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걸 다시 말하면 가볍거나 또는 무겁다는 것이다.

  조금 더 들어가보자.



인생의 무거움과 삶의 가벼움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p. 9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답했다.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그의 말이 맞을까? 이것이 문제다. 오직 한 가지 만은 분명하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p.13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한다. 영원회귀 사상은 우리 인생이 수없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의 실수는 또다시 그다음 생에서 반복되기 때문에 사람이 살아가는 그 순간순간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게 된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반복되지 않고 인생이 한 번만에 끝난다면 그것은 애당초 없는 것과 같기 때문에 아주 가벼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회귀에서는 인생이란 아주 무겁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밖에 살지 않는 우리의 삶은 애당초 없던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아주 가볍다. 그러니깐 밀란 쿤데라는 인생과 삶을 대하는 가벼움과 무거움의 모순이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니깐 살펴보자는 거다. 바로 영원한 회귀 사상에 묶여있는 무거운 인생에서 가벼울 수밖에 없는 네 남녀의 삶과 선택을 통해서.

  토마시,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


가벼우면서 무겁기도 한 네 남녀의 삶

  칠 년 전 테라자가 살던 도시의 병원에 우연히 치료하기 힘든 편도선 환자가 발생했고, 토마시가 일하던 병원의 과장이 급히 호출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과장은 좌골 신경통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 대신 토마시를 시골 마을에 보냈던 것이다. 그 마을에는 호텔이 다섯 개 있었는데, 토마시는 우연히 테레자가 일하던 호텔에 들었다. 우연히 열차가 떠나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 그는 술집에 들어가 앉았던 것이다. 테레자가 우연히 당번이었고 우연히 토마시의 테이블을 담당했다. 따라서 토마시를 테레자에게 데려가기 위해 여섯 우연이 연속적으로 존재해야만 했고, 그것이 없었더라면 그는 테레자에게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p. 64


  외과의사인 토마시는 테레자와의 만남을 우연의 연속이라고 본다. 반면에 테레자는 여섯번의 연속적 우연에서 운명을 발견하게 된다. 같은 상황이지만 토마시는 가볍고(쉽고), 테레자는 무겁다(어렵다). 토마시는 수많은 고민 끝에 테레자의 곁에 있기로 결심을 하였지만, 인생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는 테레자를 두고도 다른 여자를 끊임없이 정복하려고 한다. 그에게 여자라는 대상은 언제나 고민할 필요가 없는 가벼운 선택이었다. 물론 테레자의 경우는 달랐지만.

  한때 토마시의 연인이기도 했던 사비나 역시 토마시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비슷하다. 그녀는 배신을 사랑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배신의 반복적인 만남을 통해서 수많은 남자와 사랑을 나눴다. 그러던 그녀는 토마시와 결별 후 프란츠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가벼움에 매료된 프란츠는 사비나와 달랐다. 그녀는 흡사 테레자와 같았다. 비록 유부남이었던 프란츠는 사비나와의 만남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결국 아내를 떠나 사비나에게 오게 된다.

  이 소설은 체코의 민주자유화 운동을 막기 위해 소련이 불법 침범한 1968년, 흔히 프라하의 봄이라고 하는 부르는 체코 사태를 바탕으로 한다. 역사적으로 반복될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살아가는 네 남녀의 모습은 더 극명하게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답이 없는 우리 인생을 대하는 자세, 아모르 파티

  그리고 다시 한 번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생각이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 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결정을 비교할 수 있도록 두 번째,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인생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p. 357


  우리가 매일 살고 있는 삶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니체가 영원한 회귀에서 삶의 반복으로 인해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긴 했지만, 우린 한 번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애당초 없던 것과 같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아주 가볍다는 것이다.

  니체는 운명은 필연적인 것으로 인간에게 닥쳐온다고 말했다. 그 운명을 그대로 따르지 말고, 긍정적으로(가볍게)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삶의 태도를 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그것을 아모르 파티(amor fati:운명애)라고 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다양한 모습을 철학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정답은 있을 수 없다. 한 사건이 2회 이상 재현될 수 없으며, 그것이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확인할 수 없으니 말이다. 다만, 한 번밖에 살지 않는다고 해서 인생을 의미 없이 바라보는 허무주의적 삶을 살자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가볍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살자는 것이다.


  테레자와의 만남을 운명이 아닌 우연으로 받아들였던, 그러니깐 가볍게 받아들였던 토마시는 그녀와의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 자신의 바람기는 잠재우지 못했으나, 자신에게 오직 운명이라고 느꼈던 외과의사 직을 포기하고 유리창 청소부로 전락하고 종국에는 시골의 트런운전수가 되고 만다.


"토마시, 당신 인생에서 내가 모든 악의 원인이야, 당신이 여기까지 온 것은 나 때문이야.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을 정도로 밑바닥까지 당신을 끌어내린 것이 바로 나야."

<중략>

"테레자, 내가 이곳에서 얼마나 행복한지 당신은 모르겠어?"

"당신의 임무는 수술하는 거야!"

"임무라니, 테레자, 그건 다 헛소리야. 내게 임무란 없어. 누구에게도 임무란 없어. 임무도 없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데." p. 506


 그는 운명이라고 느꼈던, 무겁게 받아들였던 자신의 직업에 대한 포기를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가볍게 받아들였던 테레자와의 사랑을 더 중요하게 느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를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시골의 트럭 운전수가 되고 나서는 드디어 그 바람둥이 호색한 짓 또한 그만두고야 만다.


  무엇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나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가볍고 무겁고의 문제 또한 아니다. 니체가 말했다. 운명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렇다고 그것이 닥쳐온다고 모든 것을 그대로 수용해서도 안 된다고, 우연이 되었든 운명이 되었든 자신에게 주어진 그것을 수용하고 사랑하고 헤쳐나가라고 말이다. 인생은 그렇게 사는 거라고.


  밀란 쿤데라가 니체의 영향을 받은 니체주의자 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니체는 1900년에 사망을 했으며, 그는 죽기 전에 앞으로 만연할 허무주의를 예견했었다. 20세기에 문학을 읽으면 곳곳에서 허무주의를 만날 수 있다. 물론 허무주의는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에 의해 그 전에 등장을 하였다. 그러나 20세기 문학에서는 유독 그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니체는 다가올 허무주의를 아모르 파티(amor fati:운명애)로 이겨내자고 했었다. 내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작가의 정신과 니체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또는 주제 파악을 정확하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네 남녀의 운명이나 흔들리는 삶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들과 비슷하다는 거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운명이 아무리 비극적이더라도 그것을 뜨겁게 안을 수 있는 아모르 파티나 그 이상의 것이 요구된다고 보여진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말하자면,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토마시의 여성편력, 토마시의 바람에 힘들어하며 그를 운명으로 믿는 테레자, 사랑은 배신으로 시작된다던 사비나, 진실된 사랑을 원했던 프란츠, 그들을 통해서 인생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영혼과 육체의 자유로움 등을 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재미있는 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로 떠나는 영성순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