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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Sep 28. 2015

네. 어떻게 줘요? 못주겠네.

너 장모님 장인어른도 그랬을거다. 잘 해드려라.

<일기와 수필사이>

  최근에 아이가 살이 좀 쪘었다. 움직이기 싫어했고 결국엔 아프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니 감기라고 해서 감기약을 먹였는데 아이는 약을 좋아했다. 병원에서 약을 먹지 않는 아이를 보고 귓속말로 할머니께 "할머니, 감기약 진짜 맛있는데 왜 안 먹는다고 울까?"라고 했었단다. 그래서 난 약을 며칠 먹으면 낫겠지 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며칠 전 잠을 자는데 아이의 구역질 소리에 잠을 깼다. 아이는 내 옆에서 침대에 토를 하고 말았다. 애써 놀라지 않은 척하고 아이가 다 토할 때까지 기다렸다. 다 토한 아이를 데리고 세면대에 가서 입을 헹구게 하고 다시 재웠다.

  다음날 아침 아이는 유치원도 가지 못하고 할머니 손을 잡고 병원에 갔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니 아이가 나에게 토를 3번이나 했다고 자랑 아닌 자랑질을 했다. 병원에서는 별거 아니라고 했지만 마음이 쓰여 다시 대학병원을 가보기로 했다.

  그 다음날 대학병원 소아과 의사 말로는 전반적으로 소화기능이 떨어져서 그러니 약 먹을 필요가 없다고 했단다. 그런데 집에 와서 먹은 죽을 자다가 고스란히 이불에 다 토하고 말았다. 아이는 토하고는 입만 헹구도 다시 잠이 들었다. 울거나 떼를 쓰지 않았다. 피곤해서 아파서가 아니라 아이는 원래 그랬다. 가끔은 그런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너무 일찍 성숙해지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도 되었다.

  어쩔 수 없이 그 다음엔  대학병원 소화기내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다. 의사도 비슷한 말을 하였다. 전반적인 기능이 쇠약해져서 그렇다고 말이다.

  왜 기능이 떨어졌을까?

  과자와 음식을 많이 먹어서 소화 기능이 떨어졌을까? 아님 소화기능이 떨어져서 살이 쪘을까? 딱히 더 많이 먹은 것도 없는데, 뭔가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많았을까? 별의별 생각을 많이 했다.

  4일 정도를 고생하던 아이는 어제부터 녀석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말이 많아 지고 움직임도 커졌다. 앉아있지 않고 계속 돌아다니고  이곳저곳에서 나를 불러댔다. 심지어 오늘은 녀석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추석이라고 할머니랑 저녁에 목욕을 다녀와선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백옥 같은 얼굴에 며칠 굶겨서 늘씬해진 몸 그리고 입술엔 분홍빛이 났다. 예쁘고 사랑스웠다. 마치 입술엔 무언가를 발랐다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아이가 또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예쁘제? 남 주기 싫제?"

  "네. 어떻게 줘요? 못주겠네."

  "너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그랬을 거다. 잘 해드려라."

  비록 아내는 저 멀리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먼저 갔지만 나에게 아내를 주실 때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을까 이젠 그 아내가 나에게도 없으니 그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을 거다. 맛있는 거봉 한 상자를 들고 지아 한복을 입혀서 찾아뵈어야겠다. 한 손엔 거봉 그리고 지아 손을 잡고 가겠지만 사실 내 양손엔 보이지 않는 죄송함이 가득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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