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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Oct 01. 2015

초코크림 롤케이크

롤케이크를 먹지 않은 점장 입가에서 왜 초콜릿향이 날까?

<일기와 수필사이> 


"아빠, 나 초코 케이크 먹고 싶은데 사주세요."

  아이는 상황에 맞게 존댓말을 적절하게 잘 사용하였다.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았다. 동물로 치자면 생존 본능이고 우리한테 빗대어 표현하면 눈치가 아닌가 싶다. 얄밉지 않을 만큼 우둔하지 않을 만큼 딱 그만큼 눈치가 있었다.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눈치가 너무 빠르면 우리의 슬픈 가정사 때문인가 걱정이 되었을 테고, 우둔하게 행동을 하면 내가 많이 힘들었을 테다.

 그런데 그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와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주자장에 내려서 짐을 챙기는데 그제야 생각이 났다.

  "지아야, 케이크 잊어버리고 그냥 왔네. 어떡하지?"

  "지금 다시 사러 가요!"

  아이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가느다란 음성과 달리 녀석의 얼굴에서는 양보 내지 타협의 기미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 또한 추석 연휴 동안 아이와 알차게 시간을 보내서 무척 피곤했었다. 더군다나 서울의 교통체증과는 비교되진 않겠지만 나름의 숨막히는 퇴근길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지아야, 정말 미안한데 내일 유치원 마치고 먹으면 안될까?"

  "안돼!"

  "지난번에 립밤도 아빠가 지아랑 양보해서 같이 가서 샀잖아. 내일 같이 가서 고르면 어떨까?"

  아이는 잠시지만 고민을 했다. 어차피 지금 사서 와도 저녁이라 먹지 못하고 내일 아침은 바빠서 먹지 못한다는 걸 어린 나이지만 아는 것 같았다.

  "좋아. 대신에 내일 내가 고를래요. 초코맛으로! 딸기맛으로는 절대 절대로 안 살 거예요!"

  다행히도 아이와의 약속 기한을 하루 더 연장할 수 있었다.


  퇴근하자마자 유치원으로 향했다. 하원 하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걸으며 말했다.

  "아빠랑 했던 약속 기억나?"

  "케이크 사러 가는 거?"

  "응"

  "좋아, 정말 좋아. 빨리 가요!"

  그렇게 우린 유치원 뒤에 위치한 커피숍에 갔다. 아이에게 4가지의 케이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아이는 무슨 맛인지만 설명해 달라고 했다. 더 정확하게 초코맛은 무엇인지 물어봤다. 그래서 우린 초코크림 롤케이크를 주문했다.

  "포장해 드릴까요?"

  "아빠 먹고 가요. 나 지금 먹고 싶어요."

  나도 어릴 적 케이크를 무지 좋아했다. 내 기억으론 생크림 케이크가 아니라 당시엔 버터 케이크였다. 버터 케이크는 생크림과 달리 식감이 부드럽지가 않고 많이 먹으면 속이 니글니글했었다. 하지만 그런 버터케이크도 흔한 게 아니라서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다. 외할아버지 생신에 이모가 사온 케이크를 온가족이 나눠먹을 때면 항상 가슴이 두근거렸다. 남는 케이크는 집에 가져가야 하는데 어른들이 다 드실까 봐 마음을 졸였었다. 다행히 케이크가 남게 되면 은박지에 싸서 가져가 냉장고에 얼마나 귀하게 보관을 했었는지 그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당시 케이크, 파인애플, 바나나가 모두 귀했지만 케이크는 귀하기 뿐만 아니라 맛도 단연 으뜸이었다. 

 케이크에 대한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이 세상  어린아이 중에서 달콤한 케이크를 싫어하는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걸 아이보다 잘 알기에 저녁 식사 전 간식 금지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었다. 마시멜로 이야기 따위를 적용시키며 고작 케이크 하나로 아이를 시험에 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우리 먹고 가자!

  초코크림 롤케이크는 정말 맛있었다. 초콜릿의 그 달콤함과 쫀득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아이의 선택은 탁월했다. 냉장실에서 갓 꺼낸 초콜릿은 아이스크림처럼 시원했고 입에 넣었을 때는 입 안 구석구석에 초콜릿이 덕지덕지 붙었다. 그래서 씹으면  씹을수록 그 풍미를 더 했다. 하지만 나와 똑같은 표정으로 먹고 있는 아이를 위해서 포크를 내려 놓았다. 

  '초콜릿 케이크가 너무 맛있어서 그랬을까?'

  '아이의 얼굴에서 행복을 발견해서 그랬을까?'

  순간 동네 근처인걸 까마득히 잊었다. 동네에서만큼은 아이와 단둘이 다니는 것을 조심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밝은 시간에 아이와의 출입은 자제하고 동네 근처에는 놀러 가지 않았다. 물론 아이 엄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분명 뒤에서 수근수근하고 의심했을 테지만 그럼에도 난 007의 제임스 본드처럼 늘 조심조심했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동네 근처에서 아이랑 케이크를 먹었다. 아이는 마지막 한입을 입가에 묻히면서까지 케이크를 먹었다.  포크 놓기를 아쉬어 하는 아이를 달래고 접시를 되돌려 주려는데 점장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는 대신 치워주었다. '참 친절한 곳이구나'하고 아이와 손을 잡고 나가려는데 점장이 웃으며 다가왔다.

  점장은 우리 앞에 서서 아이에게 과자 2개를 주었다. 우리는 잘 먹겠다고 가볍게 인사하며 점장의 얼굴을 보았다. 점장은 초콜릿을 먹은 듯한 행복한 얼굴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비가 살짝 내렸다. 과자를 한 입 물고 가는 아이에게 우산을 씌워 주었다. 그리곤 어김없이 난 생각을 했다.

  '우리 둘의 모습이 꽤 다정했나 보다. 그나저나 케이크를 먹은 건 우린데 왜 점장 입가에서 초콜릿향이 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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