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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Oct 07. 2015

외할머니의 초콜릿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 아이 생각이 났다.

  같이 근무하는 선배 중에서 네이버 블로그쟁이들이 만든 가짜 맛집이 아닌 진짜 맛집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한번은 성당동에 위치한 허름한 곳으로 우리를 데려간 적이 있다. 입구부터 찢어진 붉은 천막과 부서진 벽면만으로도 세월의 흔적을 알 수 있었다. 가는 도중에 걱정이 되었다. 더럽진 않을까 맛이 없진 않을까 했었다. 도착한 식장은 간판도 달려있고 문도 그럭저럭 잘 열리는 동네 수육집이었다. 우리는 퇴근후 허기진 배를 기름진 고기와 알싸한 술로 채웠다. 취기가 오르자 선배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성남 초등학교 18회 졸업생인데..."

  "저희 어머니가 거기 1회 졸업생입니다."

  "그래? 어머니께서도 무지 못 사셨구나."


  선배의 말처럼 어머니는 찢어지게 가난하게 사셨다. 그 당시엔 대부분이 못 살았겠지만 나의 어머니 집도 그 시절을 대표하는 가난한 집이었다. 4남매를 키우기 위해 외할아버지는 방방곡곡을 다니며 장사를 하셨고 외할머니는 교대 앞의 영선시장에서 외할아버지의 물건을 받아 난전에서 물건을 팔거나 가끔은 외할아머지를 따라 보따리 장사를 가시기도 했었다. 가난한 집의 장녀로 태어난 어머니는 집을 비우는 외조부모님을 대신해서 어릴 적부터 가장의 역할을 했었다.

  한 번은 억수로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한옥 문짝의 신문지가 다 뜯어져 비가 방으로 들어왔었다. 해가 어두워지면서 시작한 비는 밤새 그칠 줄 몰랐고 잠자는 동생들을 위해 자신의 책가방을 문짝에 덧대어 놓았었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를 가려고 가방을 들었는데 물이 줄줄 흘렀고 어차피 학비도 못 내는 학굔데라면서 그날로 다신 책가방을 들지 않았다.

  가난해서 너무 일찍 놓은 책가방을 결혼 후에 다시 들어야 했지만 어머니에겐 어릴 적 행복한 추억이 많았다. 당시 동네에 어머니 사촌들이 많이 사셨는데 다들 못 살아서 그런지 서로 알뜰살뜰 챙겨주었고 아직까지 계모임을 통해서 만나신다.

  "아들, 오늘 계추 가는데 지아 데리고 갈 거다. 니가 좀 태워도."

  "당연하죠. 어서 갑시다!"

  어머니의 계모임 덕분에 나에겐 3시간이라는 여유가 생겼고 그 시간에 영화를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계모임 안 가고 극장에 따라오려는 아이를 잘 달래서 차를 태우고 약속 장소로 출발했다. 아이는 five little monkey 오디오 cd를 정신없이 따라 불렀고 난 영화를 본다는 기대감에 들떠있었다. 차가 영선시장을 지날 때쯤 어머니께서 "저기 영선시장 보이제? 저기서 외할머니가 보따리 장사를 하셨다."라고 말씀을 시작하셨다.

  영선 시장 뒤로 가면 미군부대가 있는데 50년 전에 외할머니가 그 근방에서 장사를 하셨다. 미군부대에 가깝다 보니 미군들이 가끔 물건을 사면서 초콜릿을 아이들 주라고 줬었단다. 외할머니는 그 초콜릿을 모아서 한 봉지쯤 되면 4남매에게 선물 주곤 했었다. 4남매는 나의 외할머니가 집에 오실 때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 엄마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고 그 품에 안기고 싶었고 그리고 손에 든 초콜릿 한 봉지를 기다렸었다.

  아이와 어머니를 식당에 내려주고 극장에서 입장을 기다리며 책을 읽었다. 스마트 폰에서 입장을 알리는 알람을 울렸다. 난 책장을 덮었고 사람들 사이에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렸다. 내가 입장할 차례가 되었을 때, 난 뒤돌아 나왔다. 그리곤 식료품을 파는 지하 1층으로 서둘러갔다.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 아이가 생각났다. "아빠, 꼭 데리러 와.", "올때 맛있는 거 사서 와, 사랑해."라고 차에 내리며 했던 말이 귓가에 생생하게 들렸다. 늦은 밤에는 몸에 좋지 않다고 간식을 준 적이 없고 초콜릿을 좋아하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치아가 상할까 자주 주지 않았다.

  그런데 외할머니의 초콜릿를 기다리던 나의 어릴적 어머니와 나를 기다릴 아이의 모습이 머리 속에서 겹쳐졌다. 그래서 조그만 초콜릿를 하나 샀다. 영화 마치고 아이를 데리러 가서 손에 쥐어 주어야겠다. 그리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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