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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Oct 09. 2015

3분, 7분, 20분

내가 지나온 간이역을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엄마, 나 늦었어. 밥 줘."

  "여보, 나 안 먹고 그냥 간다."

  "수민아, 엄마 늦었어. 서둘러."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여섯 살의 아침을 챙겨 먹이고 등원시키는 건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도 힘들다. 내가 사는 집에서 아이의 유치원까지는 나의 걸음으로 3분,  나의 손을 잡고 걸으면 7분 정도 걸린다. 손 놓고 같이 걷는다면 그때마다 다르다. 20분 정도 될까?


  "빨리 먹어. 이러면 뛰어가야 된다!"


  아이는 입에 밥을 넣고 씹을 생각은 안 하고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흥얼거렸다. 난 아이가 지각할까 봐 덕분에 나까지 덩달아 늦을까 봐 재촉을 했다. 그런데 아이는 뛰어가는 건 자기 때문이 아니고 아빠가 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뛰는 거라고 투덜거렸다. 아무리 밥을 늦게 먹는 네 탓이라고 설명을 해줘도 그냥 걸어가면 되는 걸 아빠가 뛰어 간다고 말했다. 그냥 포기했다. 고작 그걸로 아이를 이길 필요는 없었다. 결국 아이의 손을 잡고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해서 유치원 도착 8시 30분. 덕분에 오늘도 교장선생님과 억지 웃음으로 인사를 나눠야 했다.


 '아이 때문이랍니다. 저도 학부모라서...' 속으로 텔레파시를 보냈지만 받으셨는지 모르겠다.


  아이들과 보내는 하루는 역시나 빠르게 지나간다. 즐거워서라기보단 정신이 없어서가 맞다. 하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가니 날  만나자마자 가방부터 열어보였다. 가방 속에서 작은 돋보기 하나를 꺼내서 자랑하고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주변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쪼그리고 앉아 <악마의 거울>을 발견했다고 날 불렀다.

  "그게 왜 악마의 거울이야?"

  "아빠, <눈의 여왕> 거기 나오잖아."

  아이의 기억력에 칭찬을 하면서 난 손을 잡았다.  더 지체하면 7분이면 갈 집을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아이는 손을 뿌리치고 뛰어가서는 기둥에 숨었다. 항상 숨는 기둥, 그곳에서 난 너무나도 잘 보이는 아이를 한참을 헤매며 찾아야 했다. '이제 정말 가자.'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다른 길로 가고 싶어 했다. 가기 싫어도 아빠니깐 따라갔다.

  그리고 아이는 열매를 따고 돌멩이를 줍고 하늘의 비행기를 발견하고 나무에서 거미와 풀숲의 개미, 메뚜기 그리고 보도블록 사이의 공벌레도 찾았다. 집 앞을 코 앞에 두고 바로 뛰어가기만 기다렸는데 갑자기 멈춰 섰다.


여러분 인절미가 시집간대요.

콩고물과 팥고물로 화장을 하고

동그란 쟁반 위에 올라앉아서 시집을 간대요

입속으로 쏘옥

여러분, 총각김치가 장가 간대요

빨간 고추물에 목욕을 하고

기다란 나뭇가지에 올라 장가를 간대요

입속으로 쏘옥


  아침엔 너무 바빠 아이의 노래를 제대로 듣지 못했는데 듣고 보니 너무 재미있는 노래였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도대체 뭐가 그리 바쁘다고 저렇게 재미있는 노래를 이제야 듣다니' 내가 한심했다. 흔히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를 한다. 인생의 마라톤에는 수많은 간이역이 존재한다. 그 간이역에서 쉬어갈 건지 아님 지나쳐갈 건지는 마라토너 선택인데 난 하루 종일 수 많은 간이역을 지나쳐버렸다. 고작 13분 단축하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내가 지나온 간이역을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퇴근할 때는 아이처럼 즐겁게 간이역에서 쉬어야겠다. 그닥 잘 나가는 마라토너도 아니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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