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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Oct 05. 2015

시간이 걸리더라

담배꽁초 버리듯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일기와 수필사이>


  2년 전 여름이다. 그 해 여름은 아주 더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너무 더워 에어컨을 틀고 싶었지만 혹여나 아내의 건강에 해가 될까 선풍기조차 벽면을 향해서 틀어야 했다. 하지만 그게 잘한 건지는 확신이 없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어쩌다 걸어가는 부부의 뒷모습이라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심장이 뜨겁게 죄어왔다. 그 대상이 신혼부부이면 부러움으로, 노부부이면 아쉬움으로 한결같이 나를 아프게 했다. 그리고 아이를 안고 웃고 있는 엄마들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세상에서 내가 가장 쓸모없는 남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그런 현실이 너무 싫어 행복했던 과거를 아무리 떠올려 보아도 그건 기억 속의 표상일 뿐 구체화되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아내는 요단강을 건너올 수 없었다. 저 멀리에서 나를 그리고 아이를 보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난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에겐 도망칠 곳이 필요했다. 행복한 사람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 나를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나 스스로를 비교하지 않을 곳으로 가야만 했다. 가능했다면 아주 멀리 갔을 것이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출발하기 전부터 난 돌아올 것을 생각해야 했다. 나에겐 내가 보살펴야 할 남은 가족 그리고 못다 피어본 나의 남은 인생이 있었다.

  '그래 돌아오는 대신에, 갈 때는 모두 들고 가서 그 곳에 버려두고 가볍게 돌아오자!'

  그렇게 인생의 아픔을 버리러 떠나는 여행이었다.

  즐기려고 가는 여행은 아니었지만 설레었다. 서점에 들러서 여행 관련 책을 읽어보고 아이를 재워놓고 노트북에서 정보를 모아 모아서 메모를 했다. 여행 가방에 아이가 입을 예쁜 원피스와 내가 아끼는 피켓티와 여행노트 그리고 우리 둘만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아올 카메라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설렘으로 가득한 그 순간에도 눈물은 폭풍같이 찾아왔고 그때마다 난 울어야만 했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다시 짐을 챙겼다.

 '여보, 미안하지만 난 좀 더 살아야겠다. 이왕이면 더 행복하게 말야.'


  그렇게 아이와 함께 도착한 이국의 땅은 새로웠다. 매력적인 타국의 음식과 낯선 언어와 색다른 건축물 그리고 여행이 주는 흥분감으로 잠시나마 한국에서의 내 상황을 잊기에는 충분했다. 지나가는 외국 사람에게 아이와의 추억을 남기고 싶어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멋진 풍경이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아이와 함께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의 만찬을 즐겼다. 거기다가 아내가 금기시 여겼던 맥주까지 거품이 넘치지 않게 따르고는 시원하게 목에 넘겼다. 목으로 넘어가는 맥주는 인생의 또 다른 즐거움을 새롭게  각인시켜주었다.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해줄 호텔의 침구는 아주 쾌적했다. 샤워실의 호텔 어매니티 또한 마음에 들었다. 아이는 피곤했는지 머리를 감길 때부터 눈을 비볐다. 침대에 눕고는 이내 깊이 잠들었다.

  '이제 뭐하지?'

  다시 혼자가 되었다. 적막한 호텔 방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장소만 바뀌었지 내 상황이 바뀐 건 아니었다. 아이는 한번 자면 아침까지 깨는 법이 없었다. 너무 답답한 나머지 잠시 밖을 나와 맥주 한 캔과 담배 한 갑 그리고 라이터를 샀다. 바다를 보며 담배에 불이 붙였다. 담배 연기를 깊이 한 모금 마시고 맥주 캔을 힘껏 땄다. 맥주를 목구멍 깊숙이 단번에 넘겼다. 맥주는 쉬지 않고 흘러들어갔고 다 마신 빈 캔을 옆 난간에 올려놓고 다시 담배를 태웠다. 밤바다에서 보는 마천루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눈물이 흘렀고 아름다웠다. 아름다워서 눈물이 흐르는 건지 슬퍼서 아름다운 건지 헷갈렸다. 담배를 한 모금 더 깊이 마시고는 담배꽁초를 바다를 향해 던저버렸다. 그리고 담뱃갑과 라이터 그리고 빈 캔은 휴지통에 버렸다. 그렇게 다 버리고 난 내가 있어야 할 아이 곁으로 돌아갔다.

  한국에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잠든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그 밤바다에 담배꽁초를 버리면서 내 상처 그리고 아픔을 같이 버렸는가?'


  아내를 보내고 세 번의 추석을 지내는 동안 아내의 묘를 찾지 않았다. 슬픈 일이 아닌 즐거운 일로 가겠다며 아내의 생일에 맞춰서 꽃을 들고 갔었다. 그런데 이번엔 비록 추석은 지났지만 한번 가보아야겠다. 아내에게 즐겨 주던 꽃을 한 아름 사서 안겨주고  싶어졌다. 비록 잘 지냈냐고 아직도 학교에서 구시렁거리고 다니냐고 아프지마라고 나에게 한마디 건네주진 않겠지만 나라도 그 앞에 서서 잘 지냈다고 아직도 난 구시렁거린다고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마디 건네주어야겠다. 그리고 그동안 잘 살아보겠다고 참았던 눈물을 한번 실컷 흘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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