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소망 Oct 23. 2015

두 번의 금주와 세 번의 음주

이번엔 인생을 조금 즐겨보기 위해 맥주를 가끔 마신다.


<일기와 수필사이>


  믿는 집에서 태어났다. 제사를 지내지 않고 절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른들께서 간간이 포도주를 드셨다. 대학에 입학해서 고민 없이 자연스럽게 맥주를 마셨다. 무슨 맛인지 알리가 없었다. 그냥 두꺼운 유리잔에 채워진 시원한 맥주를 동기들과 경쟁하듯 마셨다. 많이 마신 날은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중간중간 물을 마셨고 맥주를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술 잘 마신다."

  친구들의 칭찬이 듣기 좋았다. 난 한 번도 내가 잘 마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 말을 듣게 되니 왠지 내가 잘 하는 게 생긴 듯 기뻤다. 그래서 더 열심히 마셨다. 그래도 집에는 잘 찾아갔고 딱 3번을 제외하곤 기억을 잃은 적이 없었다. 한 번은 내가 좋아하던 선배가 술 잘 마신다는 이유로 날 불렀다. 그때, 정확히는 아니지만 마치 임금의 교지를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날 단 둘이서 막걸리 한 짝에 맥주 한 짝-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내 기억 속에는 그 정도의 양-을 마신 것 같다. 물론 집에는 기어서 가야 했지만, 기억을 잃지는 않았다. 선배는 그 날 이후 날 볼 때마다 그날의 전투를 잊지 못하고 이야기했었다. 아마 내가 선봉장이나 대장군이었고 선배는 날 지휘하는 임금쯤 되었기 때문이었다.

  술이 맛있어서 목구멍에 부었을까? 대학시절 술은 나에게 동기, 선배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창구였고 특별한 재능이 없지만 남들보다 더 강하는 걸 보여줄 수 있는 무모한 도구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후배들을 조정하고 지휘할 수 있는 도구로 적절하게 사용하였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억지로 술을 강권하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직장에서 술을 강권하는 상사들이 있다. 어쩌면 그들 역시 술이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다른 이를 조정하거나 또는 심리적 우위를 점하려는 건 아닐까? 물론 단순한 친목 도모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2학년이 되어서는 고등학교 동문 후배가 우리 학과로 입학을 했다. 어찌나 반갑고 챙겨주고 싶었는지 소주를 부어라 마셔라 했다. 각 4병씩 마셨을 때, 후배가 사라졌다. 너무 빨리 마신 탓인지 후배는 기어서 집에 들어갔고 나 역시 기어서 친구의 자취집으로 향했다. 간밤에 목이 말라 친구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물은 없고 두유가 몇 봉지 있었다. 목이 말라서 두유 하나를 마셨다. 갈증이 간신히 해소되어 자려고 다시 누웠다. 하지만 이내 먹은 두유가 올라오려고 했다. 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토악질을 해 버렸다. 태어나서 내가 먹은 걸 다시 꺼내긴 그날이 두 번째-첫 번째는 아주 심하게 체했던 날인데 원래 난 아주 아프지 않고서는 먹은 걸 꺼내지 않는다. 그래서 그날은 충격적인 기억-이었다. 바보 같았던 난 술 때문에 토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다신 두유를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20대의 나는 주는 술을 마다 하지 않고 잘 마셨다. 그래서 많은 선배들이 나에게 "넌 교회를 다니지만 좋다. 술을 잘 마셔서 말야."라고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과연 마셔도 되나?', '맛도 없고 먹고 나면 머리도 아픈데 그만 마실까?', '교회 다니는데..." 등의 고민을 했었다. 그래도 술을 끊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난 3학년이 되어서도 술을 마셨다. 대신에 줄여서 마셨다. 복학생이 드문 교대에서 난 그게 가능한 학년이었다. 그러던 그해 가을, 낙양성에서 선배와 짬뽕에 소주를 곁들여 마시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수요예배를 마치고 집에 가는 여자친구였다.

  "너 술 끊었으면 좋겠다. 아니 마시지 마라!"

  어이가 없었다. 내가 내 돈 내고 마시는 술이고 난 요즘 들어 많이 마시지 않고 잘 조절하는데 무슨 소리냐고 짜증을 냈지만 여자친구는 완고했다. 무슨 생각에 그렇게 말했는지 몰라도 난 "알겠다! 이제부터 안 마신다. 걱정마라!"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렇게 십 년 전 3년간의 음주생활을 단 하루 만에 청산했었다.

  술을 끊는 순간 난 세상과 단절되기 시작했다. 선배는 전투에 날 부르지 않았고 후배들은 날 따르지 않았다. 그래도 난 그 전투에 끼고 싶었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한  것처럼 나도 역시 술자리가 있으면 맨 끝에 앉아 물을 홀짝홀짝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깐 백의종군도 불러주지 않더라. 그렇게 난 술을 끊었고 대신에 아내를 얻었다.


  그날로부터 십 년이 지나, 나 아내를 잃었고 다시 술을 마셨다.   

  한동안 자정이 되면 집을 나가 맥주  한두 캔을 샀다. 그리고 아파트 구석진 벤치에 앉아 마셨다. 그래야 잠을 잘 수가 있었다. 몇 달을 그렇게 매일 마셨다. 그때 술은 혼자 남겨진 침대에서 날 잠들게 해 주었고, 목 놓아 울지 못하는 나의 슬픔을 조용히 달래 주었다. 가끔 울고 싶어도 마음껏 울 수가 없었다. 비가 오는 날, 도로에 차를 세워 놓고 우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술을 마셨다. 잠을 자고 싶어서 편하게 슬퍼하고 싶어서 매일 마셨다.

  그러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마저 아파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석 달 간의 음주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고 두 번째 금주를 시작했다.


  금주 이후 난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 1년은 미친 듯이 달렸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비를 맞고 싶어서 뛰었고 더운 날에는 햇살을 피해서 산을 달렸다. 예전같이 달리지는 않지만 여전히 달리고 있다. 최근엔 거의 매일 4~5km를 달린다. 자주 뛰다 보면 시간에 따라서 느낌을 구별할 수 있다. 특히 새벽과 저녁의 조깅은 그 느낌이 다르다. 새벽은 날의 기분을 충만하게 만들어주고 저녁은 하루 동안의 무언가를 정리해 준다. 하지만 그 느낌의 차이는 있어도 달리는 것 자체는 날 굉장히 기분 좋게 한다. 마라톤 같은 장거리를 뛰는 사람들은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는 치명적인 환각을 느낀다고 한다. '내가?' 난 뛰어봐야 장거리는 아니니 환각을 느끼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비슷한 느낌이 있다. 힘들지만 더 달리고 싶은 욕망 따위 말이다. 그래서 달린다. 달리기를 끝내고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잠들기 전 책상에 잠시 앉으면 생각 나는 게 하나 있다.

  책상에 앉아 책장을 펴든, 영화를 보든, 음악을 듣든, 채팅을 하든, 앨범을 꺼내 든 한결 같이 생각 나는 게 하나 있다.

 

  "맥주!"


  그래서 최근에 난 다시 맥주를 마신다. 다른 건 마시지 않는다. 소주, 막걸리, 양주 다 맛이 없다. 그래서 오로지 맥주만 마신다. 달리기를 끝내고 맥주 딱 한 잔을 마신다. 자주 마시지는 않기에 한번 마실 때 음미를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맥주의 맛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맥주가 생겼다.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제 윗칸의 맥주병을 보게 된다. 맥주 병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효모-이게 맥주 효모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뿌연 게 움직이는데 효모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무언가-를 볼 때, 난 '뛰고 와서 빨리 마셔야지!'라고 생각을 한다. 

  길지 않은 내 인생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번엔 인생을 조금 즐겨보기 위해 맥주를 가끔 마신다. 세 번째 금주를 언제 할지는 모르지만 난 세 번째 음주를 시작하였다. 최근에는 새벽에 뛰는 바람에 맥주를 마시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냉장고 안의 맥주만 바라보았다. 이번 주말엔 저녁에 뛰고 맛있게 마셔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부인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