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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Oct 25. 2015

취미생활

전문적이지 않지만 충분히 나를 나 답게 만들어주고 즐겁해 준다.

  <일기와 수필사이>


  나와 친한 사람이 진심을 담아 "요즘 뭐하며 지내?"라고 묻는다면, 난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요즘의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때로는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인생을 즐기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취미가 아닐까? 취미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초등학교 4학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꼬맹이라 취미가 뭔지 몰랐지만 처음으로 즐기는 게 생겼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 반에 남학생 한 명이 전학을 왔었다. 대구가 촌은 아니었지만 녀석은 대한민국 수도 출신, 서울 사람이었다. 하얀 피부에 동그란 안경 그리고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서울말을 구사하였다. 어려서 표준어가 서울말인지 몰랐다. 한글은 다 표준말인 줄 알았고 녀석은 표준어에 서울말을 덤으로 쓴다고 생각했었다. 서울말이 주는 그 아우라 때문이었을까? 우리 반 여학생들은 순식간에 서울말을 따라 했고 우리는 서울도 못 가본 것들이 서울말 쓴다고 욕을 해대었다.

  녀석과 난 하굣길이 같아 금세 친해졌다. 친구는 날 집으로 초대했고, 그곳에서 난  <꼬마 흡혈귀>란 책을 보게 되었다. 당시 난 책을 사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께서 동네 아줌마들과 함께 방문판매로 전집을 구매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서점에 갈 필요가 없었다. 그저 집으로 배달 온 박스에서 책을 꺼내기만 하면 되었으니깐.

  그런데 녀석의 책장에는 신기한 책이 있지 않는가! 그날 바로 그 책을 사기 위해 난 서점을 갔고 그날 이후 20년 넘게 책을 사기도 하고 읽기도 한다. 사실 독서보단 수집이 취미일지도 모른다. 읽지 않은 책이 차곡차곡, 구석구석 쌓여있으니깐.

  여담이지만 친구 덕분에 서점과 책을 알게 된 난, 녀석이 무지 좋아졌었다. 얼마나 녀석이 좋았냐면 녀석의 배변 습관마저 닮고  싶어 졌었다. 난 이틀에 한번, 녀석은 매일 한번. 난 녀석을 닮고 싶었는지 몰라도 한동안 매일 아침에 변기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2,3년 후 <슬램덩크>와 <마지막 승부>로 시작된 나의 농구 사랑은- AFKN에서 혓바닥을 내밀고 덩크 하는 흑인인- 마이클 조던으로 절정을 향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갖은 애교를 부려 나이키 농구화, 리복의 샤킬 오닐 가방 심지어 나이키 신발주머니까지 장만했었다. 나이키 농구화에 교복을 입고 리복 가방을 메고 농구 볼백을 어깨에 걸치고 등교했다. 그게 어떤 기분이었나면, 만약 내가 빨간 페라리를 타고 출근을 한다면 그때의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루키라는 농구 잡지까지 매달 사서 모았었다. 지금은 폐간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 영풍 문고에서 점프볼이란 잡지는 보았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농구가 인기가 있나 보다. 난 당시에 정규수업 후 학원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흙먼지 나는 운동장에서 실컷 농구를 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7회 이상 농구를 했었지만 축구는 절대 하지 않았다. 축구를 하는 녀석들 보고 '사내가 고작 그 정도 공을 가지고 운동을 하냐'라고 속으로 비웃었다. 비공식적이었지만 농구부에도 들었고 3:3 농구 대회에도 참가했었다.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농구에 미친 날 걱정하신 어머닌 루키를 가져가 버리셨고, 난 농구공이라도 지키려고 주 7회만 농구를 했었다. 한 10년간 엄청했었다. 하지만 이젠 다칠까 봐 농구를 하지 않는다. 내 주변에 농구를 하는 사람도 찾기 어렵다. 더군다나 내 나이에 농구화를 신는 사람은 데프콘 정도일 거다.


  임용에 합격을 하고 발령을 기다리며 적십자사 수상안전요원 자격증을 취득했다. 수영이야 자신 있었다. 60명 넘게 지원했는데 최종합격자가 31명이었다. 혹독한 훈련이었다. 9시부터 6시까지 수영과 체력훈련을 했었다. 지원한 사람들은 대부분 체대 출신의 근육질 남성이나 탄력이 넘치는 여성이었다. 그들과 비교하면 난 찰흙으로 동글동글하게 빚은 눈사람 같았다. 하지만 난 그들보다 수영을 잘했고 체력훈련을 잘 버텨 냈다. 5m 깊이의 다이빙장에서 50분 입영을  성공하였고, 10m 높이의 다이빙대에서 입수를 했다.

  생전 처음으로 다이빙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발이 닿지 않는 물 속, 난 그곳에서 노는 게 너무 즐거웠다. 특히 깊은 물 속은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연못에서의 유영은 불편하다. 물이 더럽게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렵다. 하지만 에메랄드빛 바다나 다이빙장에서 장비 없이 유영하는 것만큼 즐거운 걸 찾기 어렵다. 수영과는 다른 자유로움 때문에 적십자사 수상안전법 강사 자격증 취득하였고, 여름방학 시즌에 봉사활동으로 체대생을 가르쳤다. 동글동글한 몸을 전신슈트에 숨긴 채 삼각 수영복의 근육질 체대생을 가르칠 때는 부끄럽기 보단 꽤 짜릿함을 느낀다. 그게 비록 상대적 우월감일지 모를지라도 말이다. 당시 나의 취미는 수영은 아니었다. 깊은 물에서 놀고 덤으로 체대생을 가르치는 봉사활동 정도였다.


  다음으로는 음악 감상인데 웃긴 건 내가 박치에 음치다. 3학년 청음 시험에서 계명을 못써서 졸업을 못할뻔했었다. 그러나 능력과 무관하게 음악 듣는 건 무지 좋아했다. 클래식, 힙합, 뉴에이지, 포크 가리지 않고 내 특유의 감성에 맞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들었다. 그러다 아내를 보내고 음악을 더 가까이 하게 되었다. 전문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서 세상의 행복한 잡음과 날 강제로 단절시켰다. 이어폰을 꼽고 소리를 올리면 나 혼자 있을 수 있었다. 수 많은 인파 속에서 나 혼자 있는 거, 다이빙장 바닥에 혼자 가라 앉아 있는 것과 같았다. 남들은 싫을지 몰라도 난 그걸 무지 좋아한다. 그래서 출퇴근 시 항상 이어폰을 꼽고 있었다. 장소불문 이어폰 장착 완료! 이 정도면 취미가 아닐까?


  그리고 달리기가 있는데, 이건 <두 번의 금주, 세 번의 음주>에서 썼으니 넘어간다. 


  얼마 전 글 하나를 응모했다. "당선입니다."란 전화를 기다리지만, 나 같은 초짜가 이 세상에 한둘이 아닐 테니 기대는 -로또 사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아주 조금만 한다. 그러고 보면 요즘엔 글을 많이 쓴다. 책은 들고만 다니고, 달리기는 글을 쓰려고 대충 뛰고 들어오고, 음악은 글쓰기에 방해돼서 꺼버린다. 잘 쓰지는 못하는 글이지만 원래 글쓰기를 좋아했냐면, 그건 절대 아니다. 어릴 때 일기를 쓰지 않아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종아리를 맞기도 했었다. 내 생에 처음으로 글짓기 상을 받은 건 서른을 넘겨서였다. 학창시절, 글짓기는 무조건 운문으로 원고지 1장으로 끝냈을 정도로 싫었다.

  어릴 적부터 일기를 쓰지 않았고 글쓰기를 싫어했지만 난 연애편지를 많이 썼다. 아내가 편지 쓰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연애시절부터 편지 1장을 써서 보내면 그 봉투 안에 답장을 쓸 편지지와 봉투를 넣어서 보냈었다. 그렇게 아내랑 14년간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보니 아내의 유품으로 상자에 넣은 내용물의 반은 둘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니 그 양이 꽤 된다.

  편지 밖에 안 써봤으니 글이라고 해봐야 그럴듯하게 쓴 적이 없다. 그럼에도 엉성한 내 글이 나는 사랑스럽다. 내가 글을 다 쓰고 나면 마치 하루키나 김훈이 된듯하다. 물론 미친 소리 같지만 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거다. 그리고 절대 그들의 필력과 날 비교해본 적은 없다. 그리고 쳐다 본 적도 없다. 단지 그런 기분을 느낀다는 거다. 마이클 조던 농구화를 신고 농구를 한다고 조던이 되는 게 아니듯이 말이다.

  그런데 새로운 취미인 글쓰기, 이게 생각보다 재미있다. 저녁에 10시부터 앉아서 아무거나 긁적긁적하다보면 금세 1시를 넘긴다. 이러다 머리가 더 빠질까 걱정은 되지만 너무 즐거워 계속 자판을 두드리게 된다. 원래 처음엔 다 재미있지 않은가? 그래서 농구나 익스트림 봉사활동처럼 뜨거운 여름밤의 추억으로 끝날지 아님 나와 인연이 될지는 더 두고 봐야겠다.

  그런데 글쓰기는 다른 취미와 달리 활자로 나의 흔적을 남긴다. 이게 양날의 검이다. 글쓰기로 불멸의 존재로 거듭날 수도 있고 아님 평생의 족쇄가 되어 날 따라 다닐 수도 있다. 그래도 모 작가처럼 표절만 하지 않는다면 아무렇게나 지껄이면 된다. 그게 글쓰기의 매력이다. 그리고 내 머릿속의 상념을 정리하는 창조적인 과정이야 말로 말초적인 자극보다 더 강렬한 경험을 준다. 일전에 <안부인사>에서 잠깐 언급했었는데, 비가 오는 날에 말초신경이 최고조를 달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정도 나를 제어할 수 있다. 꽤 괜찮은 취미가 아닌가?


  난  거의 매일 음악을 듣고, 거의 매일 달리고, 거의 매일 읽고, 거의 매일 긁적인다. 이런 것들이 전문적이지 않지만 충분히 나를 나 답게 만들어주고 즐겁해 준다. 그래서 난 이런 것들을 내 취미생활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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