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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Oct 31. 2015

신데렐라 엄마

그것도 싫지만 난 신데렐라 아빠부터 안 되고 싶다.

<일기와 수필사이>


  얼마 전 아이가 뜬금없이 날 보며 예상하지 못한 말을 하였다.

  "아빠, 노력하고 있어?"

  "뭘?"

  "엄마 만드는 거 말이야."

  순간 당황스러웠다. 노력은 해 봤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아서 포기를 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나의 나태함을 알고 말하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근데, 그게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특히, 누군가를 만나는 건 굉장히 어려워."

  "그게 왜 어려워? 아빠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만나자고 해. 그리고 결혼해. 그러면 엄마가 생기는 거야."

  웃을  수밖에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마음에 든다고 인생을 걸어보려고 가까이 가면 상대는 아마 수작을 건다고 생각하고 철벽방어를 할 텐데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의 진심은 왜곡될 수밖에 없고 난 분명 최악의 남자로 소문이 날 게 뻔하다. 그러니 내가 어찌할 방도는 없다. 운명의 여신이 도와주거나 아님 상대가 먼저 다가와준다면 모를까, 결코 내가 먼저 다가가서는 안 된다. 정말 미치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난 아이의 순진무구함에 한바탕 웃고 말았다.


 그렇게 아이의 귀여운 조언을 듣고, 얼마 뒤 아이가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 신데렐라 엄마는 절대 안돼."

  "응. 알아. 그래서 오래 걸리는 거야."

  사실은 시작도 못해봤지만 그렇게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런데 며칠 전 한 선배와 저녁을 먹게 되었다. 여자인 선배도 혼자 지낸지 10년 가까이 되었다. 처음에는 재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지만 아이의 정서적 독립을 지켜보며 서글퍼져 요즘은 심각하게 고민을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가 선뜻 재혼을 하지 못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키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야."

  "왜 그렇죠? 사랑한다면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여자는 아이를 가지게 되면 달라져. 자네는 남자라 몰라."

  대한민국의 사회문화가 그런 건지 아님 여성의 생물학적 특징 때문인지 몰라도 다른 사람의 아이를 키운다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고 말하고 싶어 보였다. 어느 정도야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배는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본인은 못한다고 말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 <동행>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그 사람, 김대중은 노모와 어린 두 아들을 거느린 가난한 남자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셋방에는 앓아누운 여동생도 있었다. 또한 그는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정치 재수생이었다.


 내가 그와 결혼하겠다고 하자 당연히 주위에서 반대가 극심했다. 가족은 물론 친지, YWCA, 여성계 선후배들이 극구 만류했다. 논물로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거듭된 낙선으로 재산을 모두 날리고 아이들 엄마를 먼저 보내고 누이마저 제대로 치료를 못해준 채 떠나보낸 것이었다. 이 두 여성은 지금까지도 그이 가슴속 깊은 곳에 시린 존재로 살아 있다. 


  나는 홍일이 , 홍업이 두 형제의 어머니가 되면서 차용애 씨-부산 피란지에서 이희호 여사는 차용애 씨를 만났었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첫눈에 반할 만큼 매력 있는 여성이구나하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비록 사진이지만 이희호 여사보다는 인물이 훨씬 나아 보였다. 질투만 날법했지만 이희호 여사는 첫째 부인-에게 기도했다. '당신이 사랑한 사람들을 내가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어떤 사람들은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야심을 이희호 여사가 잘 파악했다고 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의 능력을 잘 파악했다고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두 사람의 사랑을 그리고 더군다나 두 명의 아들을 차용애 씨를 대신해서 사랑해 준 숭고한 희생을 폄하할 수 없다. 그녀는 상당히 어려운 결심을 했었던 것이었고, 두 자녀를 많이 아끼고 사랑하며 키웠다.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혼을 하지 않았더러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은커녕 국회의원조차 거듭 낙방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녀는 영부인이 아니라 여성인권운동가로서 수많은 일을 하였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꿈을 접고 남자의 꿈을 위해 그와 인생을 함께 했던 것이다. 난 그런 그녀의 희생을 꽤 존경한다. 

 

  우리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면 이희호 여사 같은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전 세계에 수 많은 계모 설화가 존재하는 것은 그만큼 다른 사람의 아이를 키운다는 게-아무리 같이 양육에 동참하더라도 내 핏줄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게- 상당히 힘들다는 것을 예전부터 증명해 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좋은 사람은 반드시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문제는 내가 만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보다 내 주변에 있냐는 것이다. 

  만약 그런 좋은 사람이 있다면, 수작이 아닌 인생을 한번 걸어봐야 아이한테 다음엔 할 말이 있을 텐데 걱정이 된다. 


  그런데 신데렐라 엄마라... 그것도 싫지만 난 신데렐라 아빠부터 안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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