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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Nov 07. 2015

장래희망 下

서른다섯에도 장래희망은 없지만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한다.

 <일기와 수필사이>


  대학 입학 후 내가 기대했던 대학문화와 크게 달라 상당히 실망을 했다. 그저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해방감에 줄곧 술만 마셨던 것같다. 그리고 대학의 강의는 하나 유익한 게 없었다. 들을만한 게 없었는 건지 아님 내 지적 수준이 낮았는지 모르겠지만, 4년간의 대학 생활에서 건진 건 교사자격증과 아이 엄마가 전부였다. 물론 그게 가장 중요한 거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대학의 교육과정은 고루했지만 대학 생활은 무척 행복했다. 왜냐면 앞으로 어떻게 살면 될지를 어렴풋이 그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었다. 사랑이 밥 먹여주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누군가의 말처럼 사랑하면 밥이 맛있어진다. 그러니 난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한 그 무엇이 정해진 것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되고 보니 처음엔 그 무엇도 쉽진 않았다. 바쁘다 보니 처음 몇 년간은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잊게 되었다. 시골의 6학급에  발령받은 나는 매일 산더미 같은 일을 가방과 USB에 담아 집에 와서 일을 해야 했다. 3년간의 고된 시골학교-의 낭만은 영화 <선생 김봉두>에서나 가능하다. 얼마 전 대구 시교육감이 교육의 수도(대구) 선포식을 하던데, 여기가 수도인지 변방인지는 몰라도 교사의 무덤은 대구가 확실하다. 매년 등장만 하고 사라지지 않는 교육정책들로 학교는 더 이상 참된 교육의 실천의 장이 아니라 화장품 연구소의 실험실이 되어간다. 적용해보고 아니면 다른 거를 적용하니 학교와 학생이 온전할 리 있겠는가? 더군다나 일이 많기로 소문한 소규모 학교-의 교직 생활은 나를 아주 바쁘게 만들었다. "야, 그게 뭐가 힘들어? 더 힘든 일도 하는데 말야."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상대적인 차이야 있겠지만 나는 무지 힘들고 바빴다. 그렇게 바쁜 학교 생활은 나를 나름 잡무에 능한 교사로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다음 학교로 전근 간 난 경험이 주는 숙력된 기술 덕분에 잡무처리를 빨리 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숨고르기 가능해지니 잊고 있던 게 생각이 났다. 바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니 행복했다. 이 두 가지를 실천하기 위해 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그래서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다음은 내 직업 속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바로 교장 승진을 위한 삶이냐, 아니면 평교사로 살 것이냐의 선택이었다. 그 길목에서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교장이 되면 정말 좋겠지만, 교장이 되기 위해 살진 않아야겠다."


  이걸 쉽게 풀어서 말하면 교장 승진을 거의 포기했다는 말이다. 나와 같은 사람을 교포자-교장 승진을 포기한 자-라고 부른다. 이 용어는 내 습작에 등장하는 정기 선배에게 들었던 말인데, 그 역시 교포자이다. 선배와 나는 교장이 되기 싫은 게 아니라 교장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진 말자고 자주 이야기했었다. 그렇게 우린 교포자가 되었다. 다음달에 만나기로 했는데, 이 글을 한번 보여줘야겠다.

 그런데 학생만 열심히 가르치면 교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믿는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직장 생활을 전혀 안 해봤거나 아님 아주 순진한 사람일 것이다. 같은 교직이지만 중등은 우리와 사뭇 다르니 제외한다. 초등의 교장은 왕이다. 왕 중의 왕라고 표현하고 싶다. 교장을 왕으로 만든 건 교장 승진을 바라는 교사들인데 이 숫자가 꽤 많다. 시교육청에서는 수많은 승진가산점을 만들어서 마치 가산점만 채우면 누구나 교장이 될 수 있다는 착각을 만들어준다. 그러니 신규교사부터 경력직까지 수많은 교사들이 서로 교장을 하겠다고 하니 얼마나 그 경쟁이 치열하겠는가? 승진을 위해선 엄청난 피와 땀이 흘려야 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피와 땀은 아이들을 위한 게 아니다. 학생들을 잘 가르쳐 우리 사회의 민주시민으로 만드는 것은 교사의 본분이니 그건 당연한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본분을 제외한 것을 의미한다. 바로 땀은 수많은 가산점 수집이고 피는 정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시교육감이 이걸 알면서도 더 많은 승진가산점을 만들어내니 이는 대구를 교육의 수도로 만들기 위한 방책인가? 아니면 교사들를 교장이라는 떡밥을 이용해서 천편일률적인 교육정책을 펴겠는다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지금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과 모든 것이 다 비슷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다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니 대충 넘어가자.

  이렇듯 경쟁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교장의 권좌는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나와 선배는 그 권좌를 탐하지 않고 교장이 되기 위한 삶을 포기했다.

  그런데 교장으로 가는 삶을 포기했다고 교사로서 무능력하거나 학교 일에 비협조적이지는 않다. 난 학교 일을 열심히 하고,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지난 금요일, 내 수업 이외에 4학년 과학 보결 수업을 들어갔다. 아이들과 수증기가 물이 되는 응결과정에 대해서 한바탕 웃으며 공부하고 왔다. 애들도 즐겁게 공부했으니 믿어주기를 바란다.


  왕좌의 영광은 사라졌지만 어디 그 자리만 빛이 날까?

  교장이 되기 위한 삶을 포기하고 평교사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은 "무엇이 되는 것보다 어떻게 사는 것이 나에겐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교장이 되는 삶이 질적으로 떨어지며,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교장이 되기 위해 흘려야 하는 피와 땀이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다는 거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그 자리가 나에겐 빛나는 자리다.




  그리고 교장이라는 "무엇에" 초점이 맞추어지면 나의 삶의 방향도 내 뜻과는 달리 변질될 거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살지를 결정하게 되면 어떻게에 초점이 맞추어질 거다. 그렇게 살다 보면 행복한 "무엇이" 되어있을 테니 말이다. 아주 희박하지만 혹시 모르지 않는가? 내가 교장이 될지 말이다. 내가 교장이 된다면 아주 기가 막힌 시나리오가 꽤 많은데, 아주 재미있는 학교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행복한 교육공동체말이다. 아마 시교육청은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난 서른다섯에도 장래희망은 없지만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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