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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Dec 09. 2015

앵무새 죽이기

우리 역시 얼마나 수많은 앵무새를 죽였을까?



  "하퍼 리"가 신간 <파수꾼>를 55년 만에 출간하였다. 덕분에 절판되었던 그녀의 처녀작  <앵무새 죽이기>가 함께 다시 출간되었고, 난 그 덕에 늦었지만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왜 이제 읽었을까라는 아쉬움과 지금이라도 읽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가지며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앵무새 죽이기>를 처음 접하고 책장을 넘기며 줄곧 궁금했던 것은 바로 앵무새의 정체였다. 줄거리야 검색포탈에 가면 무수히 많으니 넘어가고 난 "앵무새"에 대해 말하고 싶다. 과연 무엇일까? 아니면 누구일까? "하퍼 리"는 책에서 단 두 번 앵무새에 대해 직접 언급을 했다.


어느 날 아빠가 젬 오빠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난 네가 뒷마당에 나가 깡통이나 쏘았으면 좋겠구나. 하지만 새들도 쏘게 되겠지. 맞힐 수만 있다면 쏘고 싶은  만큼어치 새를 모두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라."

  어떤 것을 하면 죄가 된다고 아빠가 말씀하시는 걸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디 아줌마에게 여쭤봤습니다.

  "너희 아빠 말씀이 옳아." 아줌마가 말씀하셨습니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준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뭘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P. 174


  그리고 책의 말미에 주인공인 스카웃을 통해서 "앵무새"란 우리 주변에서 우리에게 도움만 주는 사회적 약자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 말이다. 스카웃은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독자와 함께 앵무새의 존재를 찾아가며 성장해간다.


  '나에게 앵무새는 누구일까?'


  나에게 도움을 주며 나에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는 사람 그리고 나의 사랑과 배려가 필요한 약자는 누구일까? 서민에 속하는 내가 약자일 텐데 나보다 더 약자가 어디 있을까 싶지만, 누구나 약자 위에 군림하는 강자가 될 때가 있다. 바로 "돈", "민원"이라는 아주 돼먹지 못한 도구를 이용하면 가능하다.

  최근 들어 "갑"이란 이유만으로 "을"에게 자신에게 부여되지 않은 힘을 마치 무소불위의  권력인 냥 부리는 사람들 이야기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뉴스를 보며 그들에게 돌을 던졌지만, 사실 그들 또한 그 자리에 있기  전까지는 우리와 같이 갑질의 행태에 대해 돌을 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그 위치에 서게 되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이나 "민원"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그들의 앵무새에게 가차 없이 엽총을 쏘아댄 것이다. 우린 들 그들과 별반 다를까? 난 다르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 위치에 서있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남에게 관대하며 나에게 더욱 엄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식당에서 서빙하는 직원에게 이물질이 나왔다고 안면 몰수하고 삿대질을 하지 않았었는지, 인터넷에서 주문한 물건이 늦게 배송된다고 말도 안 되는 항의를 한 적은 없는지,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규정에 맞지 않는 반품을 요구한 적은 없는지, 택시기사를 종부리는 듯한 적은 없는지, 내 민원만 생각하여 공무원을 집사처럼 이용하려 한적은 없는지, 수많은 과거의 행적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 아니 나의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 글에 등장하는 게이츠 선생님 언급 안 할 수가 없다.


  "게이츠 선생님은 좋은 분이시지, 안 그래?"

  "물론이지. 그 선생님 반에 있을 때 좋았어."

  "히틀러를 엄청 싫어하시던데......"

  "그게 뭐 잘못이야?"

  "그게 말이지. 오늘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그렇게 대하는 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 말씀하셨거든. 오빠, 누구라도 박해를 하는 건 옳지 않잖아? 내 말은, 심지어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 나쁜 생각을 갖는 것조차 말이야. 안 그래?"

  "스카웃, 물론 옳지 않고말고. 그런데 왜 그렇게 안달을 해?"

  "그게 말이야, 그날 밤 게이츠 선생님이 법정에서 나오고 계셨거든 - 우리보다 앞서서 계단을 내려가셨기 때문에 오빠는 선생님을 볼 수가 없었지 - 선생님이 스테파니 아줌마랑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 누군가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가 됐다, 점점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게 군다, 이러다가는 우리하고 결혼할 생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었거든. 오빠, 히틀러를 그토록 끔찍하게 미워하면서도 돌아서서는 어떻게 바로 자기 나라 사람에게 비열하게 대할 수 있냔 말이야."

P.455


  히틀러의 전체주의를 질타하던 게이츠 선생님은 흑인이었던 톰 로빈슨에게는 히틀러와 같은 행동을 했었다. 그게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백화점에서 갑질 하는 사람을 손가락질했지만, 정작 나는 나의 권리가 조금이라도 침해받을까 봐 앵무새에게 엽총을 마구 쏘지는 않았을까? 나 역시 얼마나 수많은 앵무새를 죽였을까? 부끄러워졌고, 가슴이 쿵쿵거렸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의 인종차별 문제는 그곳에 국한되지 않고 지금에도 적용할 수 있으며, 읽는 이로 하여금 삶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느꼈다. 그렇기에 <앵무새 죽이기>는 시간이 더 흘러 고전에 반열에 오르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다.


  몇 해 전,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소설가 김훈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는 <근사록>를 빌려 유의미한 독서란 책을 읽기 전과 후가 달라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다면 구태여 시간을 들여서 책을 읽을 필요가 없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우리들 대다수가 그렇지 않을까? 좋은 강연을, 설교를 듣고 누군가에 권하지만 정작 우리의 삶은 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말뚝을 박고 꼼짝도 하지 않는 거 말이다. 이제 나도 그 말뚝을 뽑아야 할 때인 것 같다. 다른 이에게 관대하며 나에게 더욱 엄격해지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래야 책을 읽은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얼핏 듣기로 <파수꾼>에서 애티커스 변호사의 실상이 밝혀진다는데, 환상이 깨어질까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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