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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 Apr 23. 2020

잃어버린 엄마의 언어를 찾습니다

나에게 남아있는 단어의 세계는 점점 쪼그라들고 있었다.

엄마, 맘마, 응가, 쉬, 까까, 까꿍...

기억도 나지 않는 유아기 언어들, 명확하게 말하자면 원초적인 단어 위주의 언어 생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아이의 언어를 함께 해주는 것은 엄마로서 해야할 당연하고 중요한 일이다. 아이의 인격 형성에 눈 마주치고 말걸어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하지만 그 시기 엄마에게는 그것이 숭고한 일이라는 것을 느낄 만한 여유가 없다.


아이들은 다 알아 듣는다는 믿음에 의존한 채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에 그런 단어들를 나열하면서 행복했지만, 동시에 외로웠다.

퇴근한 남편의 뒤통수에 오늘 우리 아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이를 테면 얼마나 멀리까지 기어다녔는지, 오늘의 옹알이는 어떤 장족의 발전이 있었는지, 응가 색깔은 어땠는지 읊는 것이 말이 통하는 성인과의 유일한 대화였다. 이마저도 남편의 귀가가 늦으면 제공되지 않는 복지이다.


물론 가끔 친구와 전화통화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영혼의 소울메이트같은 친구가 그 시기 나와 같이 육아의 전선에서 공감해줄 수 있다는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그렇다 하더라도 그 대화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아이의 상황에 달렸기 때문에 쉽지 않다.



무조건적인 사랑, 모성애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야 자연스럽게 깊어지는 것임을 모른 채, 모성이라는 감정조차 나는 충분하지 않은 것같고, 엄마라는 단어는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서툴고 어색한 이 당황스러운 상황을 혼자 끌어안고 끙끙거리게 된다.

임신의 기쁨, 출산의 고통에 대해서는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마디씩 보태는 주제이지만, 출산 직후 '엄마'라는 타이틀을 안고 맞닥드리게 되는 퉁퉁 부은 내 몸뚱아리와 만지면 으스러질 것 같아 겁이 나는 작은 아이에 대해, 엄마로서 겪게 될 무수한 일들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나는 그렇게 사람의 똥에 집착하게 될 줄은, 트름 소리를 그렇게 반가워하게 될 줄은, 사람의 온도 변화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게 될 줄 정말 몰랐다.


자신의 일을 가지고 워킹 우먼으로 살다가 갑자기 맞닥드린 이런 시간에 크나큰 공허함이 밀려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대부분의 엄마가 그렇듯, 그러한 감정조차 죄책감으로 밀려와 자신을 더욱 침잠시키게 된다.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적금처럼 죄책감을 적립하다 만기일이 도래하면 그 꾸러미를 또다시 자신에게 투척하며 더 깊은 감정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그것의 병명이 '우울증'임을 당시에는 인정하기 힘들다.

그건 '우울증'이라는 단어조차 엄마에게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를 더없이 격렬하게 겪었다.

난생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해주는 모유마사지를 할 때 여자로서 내 자존감은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변해가는 내 자신이 어떤 모습을 보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그 때 나는 언어와 함께 빛깔까지도 함께 잃어갔다.




아이를 1년 키우고 복직을 했다.

평소 사용하던 언어 뿐아니라 컴퓨터 단축키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때가 되어서야 알았다. 내가 얼마나 많은 언어를 잃어버리고 살았는지.

언어를 다루는 일을 하는 나로서는 또다시 힘겨운 시간을 맞이했다.

그래서 다시 공부를 하고 책을 잃기 시작했다.

나를 찾는 데 제일 먼저 한 일은 내 언어를 되찾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혹독하게 겪었음에도 나는 둘째를 가졌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이미 나는 엄마로서 경력직이고, 당연직이며,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또, 나를 잃지 않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엄마로 다시 태어난다."는 아름다운 문장이 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것은 지금 긴 터널을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터널에서 빠져나오면 그제서야 보인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빛은 얼마나 밝은지를, 터널 속이 어둠은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그리고 그걸 지나온 '나' 역시 나에게 축적된 '나'이며,

나의 언어와 나의 세계는 그렇게 확장되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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