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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 May 05. 2020

엄마도 가끔은 엄마가 필요해

저녁에 먹은 음식이 탈이 났는지, 속이 더부룩해 자다깨다 하다가 결국 구토를 했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보니 어지러움과 심한 몸살로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다행이 일요일이라 남편이 아이들을 보고 나는 물에 젖은 솜처럼 이불 속에 파묻혀 있었다. 앉아있기도 힘들어 누워서 잠만 자다 안되겠다 싶어 열을 재보니 39도.

아이들을 데리고 휴일 진료 병원을 다녀왔다. 남편이 사다준 죽 몇 숟가락 겨우 입에 넣고 누워있는데,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모이 있어 외출했다고 해서 별말없이 전화를 끊었는데, 다음날 아침,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집에 오셨다.


남편 직장을 따라 지방의 작은 도시로 이사온 지 1년. 그 전에는 그래도 1시간 이내의 거리, 대중교통이 닿는 곳에 살아서 급할 때마다 친정엄마 찬스를 잘 썼는데, 멀어지니 쉽지 않았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아침 8시에 도착했으니 적어도 5시 정도에는 집을 나섰을 것이다. 너무 반가웠지만 반갑다는 말대신 힘들게 왜 이렇게 일찍 왔느냐는 말이 먼저 밖으로 나왔다.

아빠가, 애 목소리가 너무 안좋은데 아픈것 같으니 당장 가보라고 하셨다는데, 시간이 늦었으니 아침에 사위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오려고 그시간에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얼굴이 많이 상했다며 나를 꼭 안아주셨다.

나는 덕분에 매일 하던 밥도, 매일 하던 설거지도, 매일 하던 청소도, 매일 하던 육아도 전부 엄마에게 미뤄두고 푹 쉴 수 있었다.

엄마는 삼일을 채우고 내가 온전히 괜찮아진걸 확인한 후에 서울로 올라가셨다. 아직 다 나은거 아니니 당분간 먹을거 조심하라는 당부와 함께.

헤어지며 고맙다고 말하는 나에게,

자식이 아픈데 어느 부모가 안달려오겠냐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엄마와 많이 닮았지만 더 많이 달랐다. 특히 가치관이 많이 달라 나는 엄마가 너무 답답했다.

엄마는 남들에게 안좋은 소리 듣는 걸 싫어해서 불편하거나 기분이 상해도 말하지 못하고 그저 참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했다.

내가 답답해서 잔소리를 하면 '표현하려 해도 습관이 안되서 잘 안된다'며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말라'고 했다.

또 자식에 대한 의존도와 기대치가 높아서 나는 엄마가 항상 부담스러웠다. 엄마는 자식을 위해 많은걸 희생하며 살아왔는데,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엄마는 내 귀걸이가 바뀌면 바로 알아챘다. 몸무게가 1키로 늘면 1키로쯤 는 것 같다고, 2키로 빠지면 2키로쯤 빠진 것 같다고, 왠만한 점쟁이는 저리가라 할만큼 자식 박사였다. 자신의 삶은 없이 오로지 자식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살아온 엄마에게 나는 모진 말을 쏟아부은 적도 있었더랬다.


사람이 제각기 다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엄마가 다 다를텐데, 나는 항상 나의 기준에서 엄마의 삶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방지고 오만한 자식이었다. 나는 내 자녀에게 얼마나 만족스러운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까. 자식을 낳고 보니 비로소 엄마의 삶이 희미하게 보였다.




나는 엄마가 필요했다.

그리고 자식에게 맹목적인 엄마는 열일 제치고 나에게 왔다.

나는 그게 고마웠고, 그런 엄마가 내 곁에 언제든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감사했다.

아이가 아플때 가슴이 철렁하고 같이 아프고 대신 아파줄 수 없어서 애타는 마음. 나도 그래봐서 잘 안다.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엄마는 엄마고, 나는 자식이니까.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내게 한달음에 달려왔을지 너무나 알겠어서, 그게 새삼 가슴 터질듯 고마워서,


나는

엄마가 가고난 뒤

갑자기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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