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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 May 08. 2020

할머니, 사실은 할머니를 미워했어요.

할머니!

이제와서 고백하지만,

할머니를 미워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어쩌면 할머니도 알고 계셨을지 모르겠네요.


할머니한테는 그래도 내가 첫손주인데,

왜 나를 예뻐하지 않으실까,

왜 나를 안아주지 않으실까,

늘 궁금했어요.

늘 서운했어요.


딸이라서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장손인 늦둥이 남동생에게도 그리 따뜻하신 분은 아니었으니까요.


언제나 붓글씨를 쓰고, 노래를 배우고, 보약을 챙겨드시고,

주말마다 찾아오는 작은집 식구들의 효도를 받으실 때

우리 엄마는 그 많은 식구의 뒷수발을 들며 주방에서 늙어갔거든요.


"됐다! 너는 모른다!"

"섭섭하다!"

차가운 말투, 냉담한 표정에 엄마는 알면서도 늘 상처받았고,

엄마의 자식인 저는 엄마의 상처가 더 아프고 시렸으니까요.


그때는 몰랐어요.

일제시대에 태어나 3.1운동과 독립, 전쟁을 겪으며

피난길에 아이를 낳고 그 중 한 명을 일찍 떠나보내고

어렵고 척박한 시절에 자식 다섯을 건실하게 키워내고

남편을 여의고 30년을 살았던,

자존심 강하고 삶에 대한 의지도 강했던 할머니.

하지만 늘 외로웠던 할머니의 뒷모습이 이제야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어쩐지 감기가 낫질 않아 병원에 입원하고

한 달 만에 그렇게 갑자기 떠나실줄 우리는 아무도 몰랐죠.

할머니는 항상 몸에 좋은것 찾아드시며 당신을 살뜰히 챙기셨으니,

훨씬 더 오랫동안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어요.

그럴줄 알았죠.


혼자서도 한번 살아보겠다며 독립하셨을 때

왜 전화 한 통 해드리지 못했을까.

그토록 긴 세월 같이 지내며

왜 따뜻하게 한번 안아드리지 못했을까.

왜 사랑한다고 말해드리지 않았을까.


죽음의 순간에 인간에게 남는 건 후회라고 했던가요.

할머니를 잃고 나서야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고 매정했는지..

이제와서 깨달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네요.


할머니도 그러셨을까요.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우리 엄마 손을 꼭 잡으셨더랬죠.

할머니 모르게 신앙생활을 하며

사업으로 늘 바쁜 남편에 아이 셋을 키우며 깐깐한 시어머니의 수발을 드느라 힘겨웠던 삶을 지탱했던

우리 엄마의 창백한 손을 잡은건

저와 같은 마음이었을까요.


병원에 입원하시고 중환자실로 옮기신 날부터

거의 매일을 울었어요.

할머니를 볼 자신이 없었어요.

늘 크고 단단한 바위 같았던 할머니가 수액과 호흡기에 의지한 채 그렇게 시들어가는 걸 차마 볼 수가 없었어요.

우리 할머니가 아닐 것만 같았어요.


그리도 우리 할머니,

군대 간 손자들까지 모두 손잡아보고 가셨죠.

역시 우리 할머니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할머니다워서 웃음이 나기도 해요.


.

.


할머니!

하늘이 유난히 파랗네요.


거긴 어때요?

편안히 지내고 계신가요?


언젠가 먼 훗날 그곳에서 만나면

그땐,

한번 꼭 안아드릴게요.

할머니도 저 좀 안아주세요.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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