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꽃 Apr 22. 2020

글을 쓰는 이유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런데 난,

겨우내 움츠리던 몸이 어느새 따스해진 햇살을 받으며 뼛속 깊이 초록의 기운을 느낄 때, 문득 움튼 연둣빛 새싹을 발견하며 봄을 맞이한다.

갓난아기의 솜털같은 새싹의 연둣빛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기도 하다. 너무 강렬하지도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색과 꿈을 펼치기 시작하는 그런 색.

색깔이라는 말의 어감이 지나쳐서 '깔'을 빼고 '색'만 말하고 싶어지는 그런 색.

색이 짙어지고 꽃이 피면서 온 세상이 '나 이제 정말 봄이거든!' 하고 외치는 완연한 봄이 될 때까지 새싹은 봄을 시샘한다는 꽃샘추위도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온도와 냄새가 바뀌어가는 바람이 불고 그 리듬에 맞춰 살랑거리는 새싹을 보면 나도모르게 마음이 울렁울렁하다.


사춘기 이후 언젠가부터 매년 봄이 되면 같은 증상이 반복됐다. 그럴 땐 나도 나를 어쩌지 못했다.

나는 봄이 올때마다 폭발하는 설렘을 주체하지 못하고 집없는 사람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내며 실컷 누렸다. 밖에 나갈 수 없을 때는 몸 구석구석 햇살에 몸을 맡기고 창밖에 흔들리는 나무와 꽃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때때로 꺄르르 넘어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입혀진 더 입체적이고 풍요로운 봄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씩 그 설렘이 심연의 무언가를 툭 건드리는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럴 땐 오랜 시간 온갖 공상과 생각에 잠기며 상상 속에서 글을 써내려가고 지운다.

일상에서 때때로 찾아오는 울렁거림의 순간 나는 대부분 그렇게 지냈다.


극도의 감정을 오가면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살아있음'을 느꼈다.



처음 작가의 꿈을 가진 것이 무엇 때문인지는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책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어쩌면 어린시절 자연스럽게 가졌던 꿈이었을지 모른다. 정말로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시절이었으니까.

어쨋든 막연히 가졌던 꿈은 나를 글쓰는 학생으로 키웠고, 각종 글쓰기 활동에 참여하며 자주 내 생각을 꺼냈다. 자주 써야 글쓰기 실력이 느는 것이라고 했지만, 반대로 나는 점점 형편없는 글을 써내려갔다. 했던 이야기가 반복되고 흥미없고 뻔한 이야기로 변질되어 나조차도 읽기 힘든 글이 되고 말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 내겐 글쓰기 소질의 여부와 상관없이, 생각하고 정리하고 곱씹으며 쌓아두는 욕망이 없이는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없음을. 그때 나는 내면을 가득 채우기 전까지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내가 쓴 글은 각종 과제, 논문, 공문서 등이었다. 살면서 많은 일이 있었고,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그 사이 다시 독서를 시작했으며, 작가와 책에 대한 취향도 생기니 재미가 붙었다. 그러는 동안 나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들이 쌓여갔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몇 년 전부터 내 안에 가득 쌓인 평범하거나 특별한 것들이 가득 차올라, 내 위를 울렁거리게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걸 깨달았을 때는 4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 무언가를 쓰고싶어졌다.


그때부터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시 열어 보면 부끄러움에 지워버리는 글도 많았다. 이렇게 공개적인 공간에 글을 올리기까지는 2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아직 내 글에 자신이 없다. 지금이 적절한 때인지 계속 스스로에게 묻는다. 못다 이룬 작가의 꿈은 글을 쓰면 쓸수록 멀어져가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이 짧은 봄이 지나가기 전 지금 시작해야 할 것만 같은 절실함과 두근거림으로 한 발짝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광고 카피가 뇌리에 박힌 그 날부터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무모할 수도 용감할 수도 있는 이 도전의 끝이 무엇일지 모르지만,

결과를 알고 보는 스포츠같은 인생은 재미없으니까,

일단,

시작해보려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대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