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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 Sep 07. 2020

비오는 밤에는 무엇을 하시나요?

올해처럼 비가 많이 오는 여름이 있었을까.

오늘도 비가 후두두두 내리기 시작했다.

올여름들어 제일 많이 들린 소리는 빗소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가 내린다.


비가 오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단연코! 막걸리다.

술을 잘 하지는 못하는데, 술맛은 좀 안다.

나이가 깊어가며 술맛도 깊어감을 안다.

맑으면서 쨍한 소주, 청량하면서 구수한 맥주, 향긋하면서 쌉쌀한 와인보다

눅진하고 걸쭉한 젖빛의 막걸리가 나에겐 원픽이다.

특히 이렇게 가을비가 미끄러져내리는 날이면,

평소 좋아하는 이적이나 유희열의 노래 말고, 이문세의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막걸리를 따라주어야 제맛이다.

안주는 파전이면 좋겠지만, 안주 is 뭔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면서 너무 많은 글을 읽어야 했고, 너무 많은 글을 써야 했다.

머리는 쉴새없이 돌아야 했고 몸은 언제나 재게 움직여야 했다.

일상의 피로에 긴 비와 코로나까지 더해져 시들어가고 있으면서

쉼표를 언제 찍어야 할지도 모른채 그냥 일상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나는 그저 긴 장맛비를 온몸으로 감내한 택배상자 같았다.


그런데 오늘의 빗소리는 더이상 지루하게, 음습하게 들리지 않는다.

요며칠 아침창으로 스며드는 공기가, 식사 후 커피와 섞인 바람 냄새가, 퇴근길에 보이는 하늘의 색이 달라진 때문일 것이다.

오늘 오랜만에 커피를 마시며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시나요...'를 다 읽어서 그럴 것이다.

그 와중에 아이들과 "책사랑 선생님과 신기한 미술놀이"를 무려 3가지나 재미나게 해서 그럴 것이다.

많이 얘기하고 많이 눈 마주치고 많이 웃어서 그럴 것이다.

거기에 막걸리 특유의 향긋한 과일향과 쌉쌀하고 달콤한 그 맛을 상상하다니! 그래서 그럴 것이다.

갑자기 24시간이 30시간쯤 된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야할 시간인데, 내일 아침 늘 그렇듯이 아이들을 깨우고 밥을 먹이고 씻고 출근을 해야 하는데,

월요일을 앞둔 직장인의 마음이 이래도 되나 싶다.


파란 바람이 감성을 톡 건드려놓고선

가을비를 타고 가을이 오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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