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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 Sep 09. 2020

도전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색채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10대의 난, 뚜렷한 목표도 하고 싶은 일도 딱히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감사하게도 부족함 없이 키워주셨고, 그런 부모님 밑에서 주어진대로 정해준대로 앞으로만 가면 됐다.

한 동네에서 오래 살았고, 초중고를 같은 동네에서 다녔으니 친구들도 사는 모습도 비슷비슷했다.

어쩌다 다른 지역의 친척집에 가거나 여름휴가를 간 것이 색다른 일이면 일이랄까.


옆과 뒤, 위와 아래도 돌아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20대가 되어서였다.

어찌어찌 대학을 들어가고 주변을 보니, 지역의 다양함은 차치하고서라도, 말투, 옷차림, 생김새, 사는 모습, 가정환경, 가치관, 학교 생활 등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니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것이 아직도 생각난다.

세상의 다양성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 새로움과 신선함에 나는, 설렜다.


그때였을까.

내 안에 잠자고 있는 또다른 나를 깨운 것이.

고개를 돌려 세상을 보니 신기하고 새로운 것 투성이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옷차림, 표정에서부터 즐기는 문화까지.


스무 살이 되면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물론 술도 배우게 되었고, 당구, 포켓볼, 보드게임 등 당시 대학생들이 즐기던 것들을 알게 되었으며,

동아리, 학과 소모임, 동기모임 등을 통해 사람과의 관계도 다시 배웠다.

축구경기장에서 붉은악마와 함께 응원도 해보고, 그들을 위한 하프타임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했다.

사진 동호회에도 가입했으며, 각종 소개팅이나 미팅에서 새로운 사람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것을 즐겼다.

편의점, 마트, 백화점, 설문조사, 한자급수시험 준비, 교복 판매, 초등학생 과외, 학원강사 등 셀 수 없이 많은 단장기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고 했다.

나는 생판 모르는 '남'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은근한 쾌감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갔고,

그런 내가 좋았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하루키의 소설제목)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여러가지 색깔로 빛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임신, 출산, 육아와 더불어 워킹맘으로 30대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어느새 나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되어있었다.

엄마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그 안에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사랑이 있었지만, 그것만이 온전히 '나'는 아니었다.

수많은 날 중 어느 하루, 거울 속엔 뱃살 늘어지고 목이 늘어난 똑같은 원피스를 입은 겉모습 뿐아니라 '지친다, 쉬고 싶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다'고 부르짖는 내가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아무것도 안하고싶은 사람이고싶지 않았다.

궁금한 것도 하고싶은 것도 즐거운 것도 웃음도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었다.

갑자기 거울 속 내가 너무 낯설어졌다.


여자가 엄마로 성장하는 동안 겪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임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인*, 페*스* 이런 SNS를 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 안의 자유로운 이들, 육아고수들을 봤다면 하마터면 더 오래 걸릴 뻔했다.)

육아는 현실이었고, 그곳엔 그 현실을 하루하루 살아내며 성장하고 있는 또다른 나 자신이 있었을 뿐이다.

색채가 없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색채를 입히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조금 달라졌을까.


좋아하는 동화책 '무지개 물고기'를 보면 무지개 물고기의 특별한 비늘이 나온다. 비늘 하나가 유난히 반짝거리는데, 그것은 무지개 물고기에게만 있는 특별한 비늘이다. 그 비늘이 없이는 무지개 물고기가 아니다.

엄마라는 이름의 색채는 아주 특별하고 고귀한, 한번 엄마가 된 이상 없어서는 절대 안 되는 무지개 물고기의 비늘과도 같은 색채가 있다.


이제 그 색채가 없는 나는 상상할 수 없으며, 가장 소중하고 아끼는 색채가 되었다.




업무와 관련해서 자료 개발에 대한 지원 신청서가 일주일 넘게 책상 위에 놓여져 있다.

내일까지 신청마감이다.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선뜻 지원서를 내지 못하고 종이만 만지작거린다.

근무시간 외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라 남편의 결재가 떨어진 상황인데도,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애들을 남편에게 맡겨두고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잘 할 수 있을까.

누가 되지는 않을까.

괜히 섣부른 판단으로 덤비는 것을 아닐까...


망설이다보니 지난날의 내가 떠올라서 이 글을 쓴다.

 

고민하는 것도 두려운 것도 많아진 지금의 나.

중년의 나는 어떤 색을 칠하게 될까. 


작은 도전 앞에 서서 망설이던 나는,

또다른 색을 찾기 위해 작은 용기를 내어 한발짝 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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