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상징하는 기억, 세월호 참사가 만들어낸 기억.
이승준 감독은 계속 꾸준하게 ‘소수자성’을 탐사하는 감독입니다. 황학동 재개발 지역의 철거 현장과 그곳에서 계속 텃밭을 가꾸는 노인의 이야기를 다룬 <페허, 숨을 쉬다>, 네팔의 힌두교 성지와 화장터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신의 아이들>. 본래 EBS 다큐프라임으로 방송되었고, 추후 극장판으로 다시 개봉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장애인 주제 다큐인 <달팽이의 별>을 비롯하여 복합 장애를 가진 아이와 아이를 기르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달에 부는 바람> 등의 작품을 연출했습니다.
이승준 감독이 만드는 다큐멘터리의 특징은 감성적인 접근과 인과가 중시된 이성적인 판단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전자의 속성이 작품에 대한 ‘흡입력’을 만든다면, 후자의 속성은 다큐를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스크린에 담기는 피사체와 거리를 두게 합니다. 매 작품마다 소위 ‘동정어린 시선’을 쉽게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지만, 이승준의 카메라는 계속 일정한 거리를 유지합니다. 나레이션이나 자막도 최대한으로 절제되어 있으며, 카메라 워킹이나 화면 편집도 정적입니다. 최대한 작품은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이 담은 영상의 상황을 처음에는 있는 그대로 인식하도록, 그리고 나서 지금 이 상황이 대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는 ‘단서’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흐릅니다. 이러한 연출은 평창 동계 올림픽에 참여한 선수들(특히 남북단일팀)을 그린 <크로싱 비욘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재의 기억>은 이러한 이승준 감독의 연출 방법론을 토대로 세월호 참사를 다시 기록하는 작품입니다. 기어코 시상식을 휩쓴 봉준호의 <기생충>을 비롯해,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죠. 아카데미 시상식에 한국 영화가 두 작품이 올라갔다는 이유로 소소하게 주목을 받았고, 여전히 한국에서 ‘세월호’는 쉽게 끝날 수 없는 사안이기에 지속적으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인터내셔널 배급사 ‘필드 오브 비전’이 무료로 공개한 국제판 축약판이 퍼지다가, 세월호 6주기인 2020년 4월 16일 MBC가 오후 5시 30분 감독판(풀 버전)을 방송했습니다.
<부재의 기억>에서 이승준 감독이나 제작진이 추가적으로 찍은 장면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생존자, 민간 잠수부에 대한 인터뷰, 유가족들의 ‘사이코 드라마’를 비롯한 활동 영상, 세월호가 침몰 3년여만에 인양된 뒤의 상황 등이 작품이 독자적으로 촬영한 장면입니다. 다수의 영상은 기존에 보도되었던 영상 자료나 특조위 수사 과정이나 취재 결과로 드러난 당시의 통화 녹취, 그리고 故 박종필 감독의 유작이자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프로젝트로 제작된 단편 <잠수사>와 인디다큐페스티발 관객상 수상,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한국경쟁 심사위원특별언급이 된 복진오 감독의 <로그북>의 영상입니다. 이미 촬영된 영상들에 이승준 감독을 비롯한 추가적인 촬영 영상을 편집하여 만든 것이 <부재의 기억>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편집’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후로 지금까지 무수한 영상이 쏟아졌습니다. 그 중에서는 정말로 공짜로 써먹는다고 해도 거부할 작품도 있지만, 사건의 핵심에 접근하고 사건 이후의 상황을 파악하기에 좋은 영상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영상들은 계속 파편화되어 널려있고,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습니다. 여러 차례 특별조사위원회, 사회적참사 조사위원회 등의 활동이 있지만 이에 대한 아카이빙은 그렇게 잘 되어 있지 못합니다. <부재의 기억>은 여러 갈래로 분산되어 있거나, 쉽게 직조되지 않았던 사건과 심리의 기록을 이어내어 4.16 당시와 그 이후의 행보를 차근차근 따라가는 작품입니다.
그러기에 이 작품에서 ‘편집’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4.16 당시 선내에서 탑승객들이 찍었던 영상, 해경이나 언론에서 촬영한 당시의 영상, 추후 조사와 취재를 통해 드러난 음성 녹취 자료, 유가족과 생존자의 인터뷰는 시간 단위로 재조직되어 당시 대체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를 낱낱이 드러냅니다. 김어준 등을 비롯한 몇몇 이들은 계속 ‘세월호 고의 침몰설’이나 ‘세월호 외력 전복설’ 등을 말하지만, 이 작품은 그러한 접근을 빼고 주어진 자료를 통하여 담담하게 사건 당시의 자료를 ‘재조립’하여 당시의 실상에 다가서게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재현’된 사건의 모습은 보도된 내용을 전달받는 이상으로 더 복잡한 마음을 들게 만듭니다. 세월호 선원들의 무책임한 대처, 해경의 머뭇거리는 구조와 너무나도 노후화되어 쓸 수 없는 장비, 너무나도 늦은데다가 그럴듯한 ‘이미자’만을 원하는 청와대와 정부 고위 관료. 평소에도 존재했을 이런 균열 요소는 하나로 모여 폭발하고, 거대한 비극을 낳았습니다.
작품의 전반부에서 4.16 당시의 타임라인을 직조한 <부재의 기억>은 이제 각자의 위치에서 세월호 사건이 어떠했는지를 묻기 시작합니다. 그 심리의 대상은 세월호로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유가족과 간신히 살아남은 생존자, 정부의 비협조 속에서 온갖 트라우마를 가지고 시신을 수습한 민간 잠수사기도 하지만, 부분적으로나마 세월호 문제를 철저히 “야당의 정치적인 공격”으로 여기며 철저한 배제와 폭력에 나선 당시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와 여당 인사들도 포함됩니다. 사건은 하나지만 사건을 바라보는 결들은 제각기 다르며,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도 결코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품은 유가족과 생존자, 잠수사, 심지어는 정부-여당 인사들까지 모두 바라보며 세월호 참사라는 안타까운 사건에는 ‘부재’를 바라보는 심리가 담겨 있음을 짚어내게 됩니다. 그것을 사건의 당사자로서 바라보든, 당사자는 아니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도우며 직면하든, 부재 자체를 계속 소거하며 없애려고 하든 세월호의 참사는 모두에게 특정한 기억을 남겼고, 이는 아무리 삭제하려 해도 그럴 수 없는 또 하나의 ‘기억’이 되었습니다.
이승준 감독은 그 ‘부재의 역설’을 토대로 세월호 참사가 쉽게 재단지을 수 없는, 2010년대 한국의 단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비극임을 말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모두가 조금씩 안이하게, 제대로 된 준비 없이 하나의 사건(event)을 대하는 자세는 차츰 누적되고 축적되며 돌이킬 수 없는 사고(accident)로 전이되고 말았습니다. 작품은 사건이 사고가 되는 과정을 시간대 순으로 배열하며 당시를 다시 바라보고, 다시 그렇게 관객들에게 전해지는 ‘당시의 사건’을 기준으로 각자의 심리를 바라보게 하며 다시금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바라보도록 만들었습니다. 결코 소리 높여 강변하지 않지만, 오히려 이렇다 할 자극적인 요소 없이 당시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어느 호러 영화보다도 소름끼치는 현실의 공포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이들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사건을 진정성있게 해결하는 대신 정부 자신의 문제도, 구조적인 문제도 회피하려 헀던 모습이 다시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어떤 집단적 무의식을 낳았는지- 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1시간이 안 되는 짧은 러닝타임에서, 이승준 감독은 세월호 사건으로 드러나고 다시 세월호 사건이 만든 한국의 어떤 상황과 심리를 짚어내며 그 이후의 질문을 묻고 있습니다.
추신 : 이 작품이 MBC에서 4월 16일 오후 5시 30분에 상영했죠. 대다수의 방송국이 인하우스로 제작된 작품을 제외하면 독립PD가 만든 작품들은 애초에 잘 상영도 안 하고, 그리 취급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 작품을 방송한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면서도 오후 5시 30분이 결코 본방으로 볼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대라는 것을 생각하면 미묘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MBC도 이미 올해 상반기에 작년에 이은 큰 적자폭이 예고된 상황에서, 변화가 필요하지만 쉽게 변하지 못하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인 듯하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