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페미>에 이은 강유가람의 명징한 기록, 또는 탐사.
※ 2020 독립영화 쇼케이스에서 관람한 버젼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강유가람의 작업은 매 작품마다 미시적인 시선과 거시적인 시선을 교차한다. 그의 첫 데뷔작이었던 <모래>는 2010년대에 나왔던 무수한 부동산을 소재로 한 영상 작품 중에서 무척이나 명징하게 한국의 부동산이 평범한 가족 구성원에게 있어, 그리고 그 '부동산 대박'의 꿈을 꾸는 가족이 모인 한국 사회 전반의 공간에 있어 추악하고도, 씁쓸한 면모를 지닌 다단한 지점을 그려냈다. 영화는 쉽게 자신의 가족 밖 이외를 그리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게 자신의 가족이 지금 왜 그렇게 살고 있는지를 계속 천착하며 다시 가족의 시선에 어느 정도 일반화된 시선이 담겨 있음을 끄집어 내었다.
이러한 경향은 이후 작품에서도 지속된다. 현재까지는 강유가람의 유일한 극영화인 단편 <진주 머리방>은 6분에 불과한 러닝타임에 곧 사라지거나 큰 폭으로 바뀔 오래된 미용실의 ‘공간’과 이를 걱정하는 ‘주인’, 그리고 이 공간을 오래동안 방문했을 ‘손님’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이 공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주인과 손님은 직접적으로 발화로 꺼내지 않아도 어떻게 표면적으로는 셔레이드로, 비가시적으로는 정동하는 마음의 흐름을 무척이나 인상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성공했다. 이후 두 번째 장편 작업 <이태원>은 이태원이 ‘기지촌’이라 불릴 시절부터 존재하던 ‘올드커머’ 여성과 다시 이태원이라는 이국적이며 이질적인 공간에서 대안적인 공간을 꾸리는 ‘뉴커머’를 교차하며 이태원이라는 공간적인 특성을 짚고자 했다. <이태원>의 행보는 순조롭지는 않았고, 구성에서 ‘뉴커머’는 ‘올드커머’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도구적 장치로 끝난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이를 감안해도 <이태원>에서 이태원의 여성들을 다루는 모습은 아카이브인 동시에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하나의 역사지만, 결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이태원의 구성원과 공간의 속성을 꿰뚫어 보는 시선이었다.
이후 강유가람은 (본래 2016-2017 촛불 집회를 다룬 다큐 단편 옴니버스 <광장>에 수록되어 있다, 40분 버전으로 확장한) <시국페미>를 통해 <우리는 매일매일>로 이어지는 하나의 단초를 만들었다. 촛불 집회는 그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종종 ‘최순실과 결탁한 박근혜를 몰아내기’ 위한 자리로 수식되었다. 그러나 현장의 모습들을 면밀히 들여다본 이라면, 촛불 집회에서 터져 나왔던 이야기는 단순히 ‘박근혜 하야’로만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동시에 ‘박근혜’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온갖 여성 혐오적인 발언이 현장에서 출몰했던 것도, 2008년의 촛불 집회처럼 ‘여성 참가자를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나왔던 온갖 ‘수작’이 나왔던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한편으로 2016년의 촛불 집회는 2015년 하반기, 그리고 2016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불이 붙던 ‘페미니즘’에 대한 새로운 물결 (또는 ‘영-영페미니스트’의 등장)과 맞물려 전개되던 시기였다. 다수의 촛불 집회 기록이 ‘박근혜’에 초점이 맞춰질 때, 강유가람은 과감하게 불꽃페미액션 등의 단체를 비롯한 ‘시국페미’의 움직임에 카메라를 돌렸다. 그것은 누가 보기에는 ‘부수적’인 이야기일 수도, 또는 ‘개량적’인 시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강유가람은 카메라를 통해서 그 때 현장에서 나왔던 이야기에서 어찌보면 가장 중요하고 역사적인 순간은 페미니스트들이 목소리를 내며, 차별과 혐오의 추방을 외치던 모습이라며 가치를 부여했다.
숨가쁘게 움직였던 시기에서 <시국페미>를 통하여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고 모색하던 감독은, 어떤 의미로는 이 작품의 하나의 ‘쌍’이 되는 작품으로써 <우리는 매일매일>을 만들었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매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강유가람 감독과 교류하거나 알고 지냈던 지인들이자, 동시에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대학이나 각각의 공간과 영역에서 페미니즘을 요구하고 외쳤던 ‘영페미니스트’들이다. 작품은 키라, 써니, 짜투리, 어라, 흐른까지 총 5명의 페미니스트이자 활동가였던 이들이 한창 활발하게 움직일 시절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작품이 처음 공개된 2019년을 기준으로) 2010년대 말, 이들은 지금은 어떤 활동을 하며 다시 지금은 어떤 꿈과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조명한다. 작품의 구성은 5명의 활동가가 활동한 기록과 그들과의 인터뷰를 그린다는 점에서 <시국페미>와 비슷한 측면을 지니지만, 이제는 ‘파편화된 짧은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이들의 궤적을 반추한다는 점에서는 <이태원>이 연상된다.
아니, 어떤 점에서는 <이태원>이 시도하고자 하였으나 조금은 머뭇거렸던 과거의 궤적과 현재의 궤적과의 ‘겹쳐보기’, 그리고 겹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교차점’과 ‘특이점’을 마주보려는 작업이 <우리는 매일매일>에서 비로소 완성되었다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이 소환해내는 과거의 기록은 계속 논문이나 연구서의 차원에서는 언급이 되어도, 영상물의 차원에서는 계속 접근이 미약했던 ‘1990년대 말 – 2000년대 초중반’의 ‘영-페미니스트’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바꾸려 하였는지를 명확히 비춰낸다. 그리고 그 다시 재현된/옮겨진 영상 기록과 증언은 한국 사회,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어떠한 역사와 맞서야 했는지를 명징하게 비춰낸다. 특히 이화여대 학생회가 기록했던 ‘고려대 학생들이 이화여대 대동제에 들어와 자꾸 난입, 난동을 저질렀고 끝내 1996년에는 이화여대 학생 한 명의 팔을 부러뜨린’ 사건의(https://femiwiki.com/w/%EA%B3%A0%EB%8C%80%EC%83%9D_%EC%9D%B4%EB%8C%80_%EC%B6%95%EC%A0%9C_%EB%82%9C%EC%9E%85_%EB%82%9C%EB%8F%99_%EC%82%AC%EA%B1%B4) 기록을 소환하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강유가람 감독이 <우리는 매일매일>을 어떠한 작품으로 자리매김 하려 했는지를 너무나도 명징하게 드러낸다. 누가 보기에는 작품 한 편의 시도에 불과할지라도, 감독은 이 작품 한 편 만으로도 현대사 만큼이나 격동적이었던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흐름을 최대한 전하려 시도한 것이다.
이렇게 최대한으로 모아낸 그 당시의 기록과 활동은, 2019년 현재 5인의 삶과 겹쳐진다. 이들 중 누군가는 명시적으로는 수의사나 소싸움 반대 운동, 음악 활동처럼 페미니즘과 연관이 없는 영역에서 활동을 하고, 다시 누군가는 은평구의 여성주의협동조합 병원인 ‘살림의원’이나 한국성폭력상담소와 같이 꾸준하게 여성주의/페미니즘과 관련된 활동을 지속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에 서있던 간에, 얼마나 목소리를 멀리 전할 수 있느냐에 상관없이 이들은 자신이 지금보다 조금은 젊었을 때 해오던 활동을 쉽게 잊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그 활동과 연계된 말과 행동을 하면서 일상의 실천을 이어나가고 있다.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이 기록들은 <시국페미>의 장면들과 겹쳐지며,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교차하며 지금의 상황을 구축해 내었는지를 종합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누가 보기에는 사소해보이고, 누가 보기에는 지금 당장 급하지 않은 (모 씨의 말을 빌리자면,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를 줍고 있다”는 말마냥 http://m.ildaro.com/a.html?uid=297)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외부의 평가와 상관없이 이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때로는 개인이, 때로는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문제적 상황을 바꿔나가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아마 이 다큐가 제목에서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진은영의 시집 <우리는 매일매일>이 다루는 매일 사소하게 느끼지만 지나치는,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매일의 감각’처럼, 다큐 <우리는 매일매일> 역시 그 때 당장, 지금 누군가가 보기에는 작더라도 그 말과 행동의 실천이 쌓이고 쌓이면 결코 가볍지 읺다는 것을 말한다. 계속 누적되어 쌓여 하나의 ‘지층’을 어떻게 이뤘는지를 무척이나 또렷하게, 가까이 들여다보는 동시에 그 가까이 본 지층이 모여 하나의 너른 반석을 이루고 있음을 작품은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