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이지만 강렬하고, 다시 이 시대의 정서와 이어지는 감각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슈에이샤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한 고토게 코요하루의 만화 <귀멸의 칼날>을 원작으로 한 TV 애니메이션의 극장판입니다. 처음 연재할 때는 큰 인기를 끌지 못하던 작품은 게임 원작 애니메이션 시리즈 <Fate>의 성공으로 주목받은 제작사 ufotable가 담당한 애니메이션의 성공으로 원작도 인기가 거듭하여 오르는 시너지를 얻었습니다.
인기 있는 상당수의 일본 애니메이션이 그렇듯 이 작품도 극장판이 기획, 제작되었죠. 허나 2020년은 계속 코로나-19가 일본을 비롯한 전세계를 강타했고, 극장판의 개봉 역시 영향을 받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작년 10월에 개봉한 극장판은 그야말로 일본에서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개봉 후 12주 연속으로 박스오피스 1위에, 한동안 깨지지 않았던 일본 박스오피스 흥행 기록 1위인 미야자키 하야오 연출, 스튜디오 지브리 제작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까지 제쳤습니다.
대만에서도 압도적인 흥행 기록을 보인 작품이 한국에서도 몇 번의 연기를 거쳐 지난 1월 개봉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한국의 경우,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인한 극장 흥행의 전반적인 붕괴로 흥행이 타국 만큼 되는 상황은 아니지만 최근 70만 관객을 넘기며 애니메이션 흥행 순위에 이름을 올렸죠. 최소한 흥행의 측면에서는,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한국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작품적인 측면에서는 어떨까요?
일단 작품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습니다. 극장판에서 흔히 볼법한 이전까지 줄거리에 대한 설명도 없고, 당연히 캐릭터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나 배경 설정에 대한 언급도 그리 없습니다. 영화는 매우 당연하다는 듯이 원작이나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으로 관객을 상정하고 있어요. 원작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별 언질없이 등장하고 언급되는 캐릭터와 요소가 무척 낯설 수도 있고, 심지어는 연출의 일부에서는 원작이나 애니메이션의 요소인 ‘심각한 상황에서 갑자기 나오는 코미디 연출’이 등장해서 톤이 따로 노는 듯한 느낌도 들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러한 불친절한 측면은 어떤 점에서는 작품이 지니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관습적 요소’하고도 이어지며, 누군가에게는 ‘뻔하다’거나 ‘진부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죠. 그러나 작품을 이러한 요소들을 ‘강렬한 연출’로서 정면 돌파하고 있습니다.
TV 애니메이션이 원작의 연출을 역동적으로 재해석하고, 박력을 낳으면서 큰 인기를 얻은 것처럼 이번 극장판도 이러한 연출의 기조를 그대로 이어나갑니다. 액션 장면들은 작정하고 등장인물의 빠른 움직임과 원색의 이펙트가 반복적으로 구성되어 강렬한 감각을 낳고 소실점을 지속적으로 움직이며 원근법의 과장을 활용하는 연출은 그야말로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중추 중 하나로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에 걸맞는 사운드 효과도 몰입감을 크게 더하고요. (돌비 애트모스관에서 봤는데, 작정하고 3D 사운드 효과를 몰아칩니다.)
허나 스토리텔링에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이 생길 수 밖엔 없습니다. 애시당초 이 작품은 원작을 아는 이들만이 아는 맥락을 근저에 깔고 전개되며, 설상가상으로 극장판의 근간이 된 원작 파트는 원작을 아는 사람은 물론 모르는 사람에게도 상당히 ‘우울할 수도 있는’ 지점입니다.
이는 원작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비극적인 순간을 오히려 장렬한 최후로 뒤집으면서 감동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적의 강력함이나 처절한 전투, 예정되었던 결말 자체는 바뀌지 않으나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과거’에 대한 맥락과 요소를 삽입하면서 감동을 불러일으키려 하는 것이죠.
물론 이러한 연출의 흐름이 어떤 이에게는 ‘옥쇄’를 연상시키는 지점이 있고,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 파트를 보면서 상당히 ‘전형적인 전개’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이 들면서도, 이번 <귀멸의 칼날 극장판>은 의도적으로 등장인물이 맞이하는 최후의 순간을 다루며 감정의 고조를 무척이나 극적으로 마주하고, 역동감을 강화시킨 연출과 만나며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듯한 느낌을 강화시킵니다.
비슷한 부류의 작품을 아는 이들에게는 매우 뻔할 수도 있고, 관행적 연출의 반복에, 일본 대중문화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그라듬에 대한 미학’에 대한 반감이 신경 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이 또한 냉정히 생각해보면 ‘희생’에 대한 상징화나 추앙하는 시도는 다른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상황에서, 일본만의 문제로 한정짓기 보다는 주류 대중의 정서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더 낫겠지요.)
그러나 뻔하고 직선적인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연출이 낳는 박력이 무척이나 강력하다는 지점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이 작품이 코로나-19라는 전세계적 위기의 상황에서, 위기의 순간에서 희생을 감수해야하는, 또는 결국 희생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이러한 모습에 ‘일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작품에 대한 감정은 평소와 다를 수 밖에 없겠죠. 진부하지만, 그 진부함이 어떤 맥락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그리고 어떻게 구현하냐에 따라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 지를 증명하는 작품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의 ‘뻔함’을 그저 무시하기 보다는, 왜 이 국면에서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는지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의미로는 클리셰가 그저 타파해야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배치하고’ ‘이어내냐’의 함의를 고민케 하는 작품이기도 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