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와 코미디는 볼만 하지만, 텅 비어버린 나머지 요소들
무려 1940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장수 애니메이션 시리즈, 해나-바베라(Hanna-Barbera) 프로덕션에서 시작해 현재는 프로덕션을 인수한 워너 브러더스에서 계속 제작-방송 중인 <톰과 제리>가 실사 합성 애니메이션이 되어 극장을 통해 개봉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실사 합성 애니메이션'이 지금 갑자기 나온 건 아닙니다. 정말 대선조격인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1902)을 비롯해 월트 디즈니의 <메리 포핀스>(1964), [<남부의 노래>(1946)가 좀 더 일찍 제작되긴 했지만, 인종 차별 스테레오 타입 문제로 현지에서도 공개가 제한된지 오래죠.] 로버트 저메키스가 연출한 것은 물론 디즈니와 워너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대통합을 이루고 '실사 합성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전기를 만든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1988), 이후 랄프 빅시의 <쿨 월드>(1992)나 마이클 조던과 루니 툰즈가 만난 <스페이스 잼>(1996) 등... 엄청 나왔습니다.
실사 합성 애니메이션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것이 <메리 포핀스>의 월트 디즈니였던 것에 비해, 1990년대 중반 이후로는 워너가 적극적으로 되었죠. 문제는 작품의 질입니다. 앞서 언급한 <스페이스 잼>이 흥행은 성공했지만 평은 미묘했고, 이후 <루니 툰 백 인 액션>(2003)는 비평은 물론 흥행까지 모두 망했으니.
워너 자체는 그렇게 <루니 툰 백 인 액션> 이후로 한동안 골몰하던 실사 합성 애니메이션을 중단하지만, 그 공백기 동안 이런 작품이 아예 없던 것도 아닙니다. 당장 1999년에 시작된 <스튜어트 리틀> 시리즈가 있었고, <앨빈과 슈퍼밴드>, <개구쟁이 스머프>, <명탐정 피카츄>, <수퍼 소닉>(소닉 더 헤지혹)… 이래저래 유명한 원작이 있는 작품이고 어느 정도 현실 세계와 붙여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만화-게임-애니메이션들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더 '실사 합성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젠 워너도 가만히 있지 않게 되었네요. 역사와 전통의 슬랩스틱 코미디, <톰과 제리> 시리즈를 소환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는 구판이 훨씬 많이 돌고 있지만, 여전히 카툰네트워크나 부메랑 채널을 통해서 새 시리즈를 만들고 있기도 하죠. 심지어는 이번 실사 영화판은 '코미디'답게 클로이 모레츠나 그나마 켄 정 정도를 빼면 유명 배우도 거의 안 부르다보니 꽤나 싸게 만들었습니다. 타국 기준으로는 제작비가 높은 편이지만, 미국 기준으로는 중급 정도 제작비인 7900만 달러에 작품을 제작했으니까요.
게다가 감독도 <택시 더 맥시멈>이나 <판타스틱 4> 시리즈를 비롯해 꽤나 활동한 기간은 길지만, 이래저래 커리어가 잘 풀린 적이 없던 팀 스토리를 기용했다는 점에서 이미 이 작품의 위치는 정해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동시에 본래 팀 스토리가 <우리 동네 이발소에 무슨 일이 생겼나> 같은 흑인 대상 코미디 영화를 주로 연출했던 감독인 것도 중요한 요소가 되었겠죠.)
그렇다면 꽤나 저예산에 다시 등장한 <톰과 제리>는 어떨까요. 일단 워너가 한동안 실사 합성 애니메이션에 손을 뗀 계기인 <루니 툰 백 인 액션>은 물론 근래 계속 등장하고 있는 3D 기반의 실사 합성 애니메이션과도 꽤나 질감이 다릅니다. 캐릭터 자체들은 3D인데 셀 셰이딩(카툰 렌더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2D 질감이 나도록 엄청 매만졌거든요.
그러다 보니 옛날 <톰과 제리>가 익숙한 관객들이 봐도 큰 위화감이 없고, 최근 등장한 3D 실사 합성 애니메이션이 익숙한 관객들이 봐도 꽤나 독특한 느낌을 주기엔 좋습니다. 어느 정도는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에서 풍기던 이질적인데 흥미로운 2D-3D가 조합되는 기묘한 감각을 3D 기술의 진보와 함께 적절히 재해석한 느낌이랄까요. 동시에 최근 TV 애니메이션에서는 심의 문제로 꽤나 자제되고 있는 슬랩스틱 코미디의 강도도 '극장판'이다 보니 좀 더 수위를 올린 감도 없지 않고요. (물론 미국, 한국을 비롯해 최대한 '전체 관람가'에 맞추다보니, 영화 속에서도 스스로 셀프 디스를 하긴 합니다만.)
헌데 문제는 결국 애니메이션을 맞추는 '실사' 파트의 상황입니다. 물론 애시당초 이런 부류 작품의 실사 파트에 크게 기대할 수 없는 것도 없죠. 원작부터가 짧은 러닝타임에, 빠른 리듬으로 전개되는 작품인데 이걸 100분으로 늘린다면 어떤 수를 쓰든 간에 실사 파트는 슬랩스틱 애니메이션을 위한 판을 까는 '도구'가 될 운명이니까요.
하지만 이를 고려해도 좀 이번 <톰과 제리>의 스토리 파트는 좀 많이 덜그럭 거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1940년대 초창기판에서 문제가 되었던 '인종 차별' 문제를 인식했던 탓인지, 주연인 클로이 모레츠 정도를 제외하면 상당수의 배우들이 마이클 페냐와 같은 히스패닉, 켄 정을 비롯한 아시아인(정확히는 '인도계 미국인')이나 흑인들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실사 파트 스토리를 보고 있다보면 갑자기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보는 느낌이 나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런 작품에 계속 톰이 제리에게 당하기만 하면 너무 좀 그러니까 (사실 최근 TV 애니메이션 부터가 어찌되었든 톰과 제리가 서로 싸우다가도 또 '친하게 되는'걸 강조하고 있어서도 클 겁니다.) 클로이 모레츠 캐릭터를 '경력만 요구하는 세상에서, 별 경력이 없긴 하지만 어떻게든 경력을 만들어 출세하기 바라는- 시골에서 상경한 20대 여성'으로 설정하고, 톰과 제리도 어떻게든 뉴욕에서 살아보려고 좌충우돌하는 캐릭터로 그리고, 심지어는 작중에서 어느 정도 악역으로 설정되는 마이클 페냐가 맡은 캐릭터도 딱 비슷한 느낌입니다.
클로이 모레츠부터 시작해 인물들 상당수가 사실은 '거짓말'을 한 캐릭터고 나머지 캐릭터들 다 어떻게든 자기 살아보자고 남 뒷통수를 (정말로 물리적으로 치든, 심리적으로 치든) 후려갈기지만, 사실은 다들 이런 저런 사정이 있고 좋은 캐릭터였다는 식인 거죠. 그렇게 '좋게좋게' 끝내는 거야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고는 하지만, 좀 정도가 심해요.
근래 TV판보다 수위가 올라간 슬랩스틱의 강도 만큼이나 여기에 나오는 중점적인 사건들도 그리 낮지는 않은 사건들의 연속인데 (스포일러가 안 될 정도로 풀자면 취업 문제에, 결혼을 앞두고 여친 생각은 안하고 지 입장만 엄청 생각하는 남친, 기타 등등...) 이런 사건들이 슬랩스틱을 만나고 코미디 영화의 암묵적인 법칙처럼 하하호호 웃으면서 끝낼 수 있는 게 클리셰라는 측면에서는 이해가 가면서도, 뭔가 갭이 상당히 심하다보니 많이 붕뜨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럴거면 그냥 스토리를 더더욱 형해화하거나, 좀 더 아귀가 맞게 짜맞춰 보면 어땠을까 싶지만 뭐 도리가 있나요.
애시당초 저예산으로 제작하고, 흑인-아시아인-히스패닉 배우들을 잔뜩 불러와도 사실상의 '토큰 블랙'이나 '토큰 아시아'로 전락하는 이상을 넘지 못하는 각본이 주어진 상황에서 제작자는 처음부터 한바탕 웃고 즐기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할 말도 그다지 많지는 않습니다.
이러저래 이전보다 진보한, 꽤나 매끈하게 전개되는 2D-3D 합성 CG로 전개되는 톰과 제리의 슬랩스틱이 이 영화의 핵심이고, 그 이외의 것은 애시당초 이미 버려지기로 작정된 것이니까요. 그냥 웃다 즐기고 나오십시오. 정말 그 이상이나 그 이하의 말을 할 것이 없습니다.
추신. <톰과 제리> 원작의 OST가 꽤나 듣기 좋은 것처럼, 이 작품도 본편은 정말 킬링타임용인데 OST는 나쁘지 않습니다. 무려 T-Pain에 재즈 피아니스트 에릭 리드에, 플로 라이다에… 재즈와 R&B 스타일의 노래가 계속 끊이지 않고 나와요. 영화는 블루레이는커녕 딱히 VOD로 또 보고 싶지는 않은데, OST는 들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