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아이삭 정, <미나리> 단평 : 경계와 낯섬에서

'한국계 미국인' 이민자가 놓인 경계를 바라보는, 또 다른 경계의 시선

by 성상민

헐리우드 영화를 많이 보신 분이라면 어느 정도 아시겠지만, 꽤나 자주 접할 수 있는 장르가 ‘이민자’에 대한 영화입니다. 미국 자체가 애시당초 일종의 이민으로 형성된 국가이고, 수많은 국가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흘러들었으니까요. 한동안은 <에덴의 동쪽>처럼 (유럽 내에서 이래저래 소외받던) 아일랜드계 이민자를 다룬 작품이 많이 나왔던 것처럼, 20세기 초엽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된 아시아계 이민자들에 대한 작품도 1990년대 이후로 서서히 나오고 있습니다. 넓게 보자면 이안의 <결혼피로연>도 이에 속하는 작품이고, 한국에서는 이제서야 개봉한 룰루 왕의 <페어웰>도 이에 속하는 작품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리 아이삭 정의 <미나리>도 이러한 경향에 속하는 작품입니다. 감독 본인이 가족을 따라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계 미국인이며, 영화 속 배경처럼 정말 아칸소 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죠. 물론 <미나리> 전에 ‘미국계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가 완전히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당장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알려진 캐나다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도 이에 속하는 작품이고, <배틀 오브 비보이>를 비롯해 비보이에 대한 작품을 주로 연출한 벤슨 리의 <서울캠프 1985>도 이에 해당합니다.

이들 작품에 비해서 <미나리>가 지니는 가장 큰 특징이라면 ‘이민의 한 과정’에 깊이 있게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같은 곳과 달리 아칸소는 여전히 한국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 아니고, 도회지와도 거리가 먼 곳입니다. 한국 사람이라고는 양계장에서 병아리 감별을 하다 만나는 한국인 한 명을 제외하면, 이곳에 이주 온 한국계 가족 말고는 같은 고향 사람들도 찾을 수 없어요.

설상가상으로 은연 중에 드러나는 가족의 모습도 덜그럭 거립니다. 제이콥(스티브 연)은 10년간 병아리 감별을 하다보며 이젠 이 일이 무척이나 능숙하지만, 이래저래 뭔가 순탄치 않아 보입니다. 한국계 사람들에게 뭔가 당한 것도 많아 보이고요. 제이콥은 이래저래 드넓은 아칸소의 푸른 들판에서 자신만의 대농장을 만들고 싶어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이콥의 꿈일 뿐입니다. 아내 모니카(한예리)는 집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무턱대고 이사를 결정한 제이콥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고, 그저 교회와 조만간 새로운 집에 찾아올 엄마 순자(윤여정)이 위안이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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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제이콥과 모니카의 두 자녀인 앤(노엘 케이트 조)와 데이빗(앨런 김)에게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 나이가 어려도 앤과 데이빗도 부모님이 싸우는 일이 잦다는 걸 잘 알고요. 부모님들 보다는 미국인들이 많은 교회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이 능숙하지만, 선천적 심장병을 앓는 데이빗은 자신이 보는 모든 것이 호기심거리인 동시에 두려움의 연속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여기저기 다니지만, 한국식 문화에 익숙한 아버지는 이래저래 데이빗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계속 벌이면서 왠지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와도 마냥 가까워지긴 어렵고요. 누나인 앤과도 뭔가 서먹서먹한 가운데, 한국에서 찾아온 할머니 순자와는 더더욱 맞지가 않습니다.

마치 1990년대까지도 종종 볼 수 있었던, 한국에서의 관습에 익숙한 순자의 여러 행동과 말들은 데이빗에게는 여러모로 상극의 연속입니다. 여러모로 가족들 사이에서도 갈등과 거리두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제이콥은 배추나 고추 같은 한국에서 선호하는 농산물을 지어 농사로 큰 대박을 꿈꾸지만 이미 제이콥과 모니카의 가족은 여기저기서 균열을 드러낸지 오래지요.

어떤 의미로 <미나리>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한국계 미국인 가정의 '이민사'이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민자 가족의 백일몽이자 동상이몽, 그리고 다시 같은 가족 내에서도 여러 경계에 놓여 있는 이민자 가족의 양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들을 세심하게 짚어내는 것이 <미나리>가 지니는 큰 장점입니다.

스티븐 연이 맡은 제이콥의 캐릭터는 어딘가 한국어가 어색하고, 오히려 때로는 영어가 익숙한 이민자 1.5세대를 연상하게 합니다. 반면 한예리가 맡은 모니카의 캐릭터는 남편만큼 영어가 익숙하지 않고 새로운 터전인 아칸소에 와서도 한인 교회를 찾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현지 교회를 찾지만 결국 그곳에서도 붕뜨는 모습 등을 통해서 여전히 쉽게 동화되지 않은 이민자 1세대의 모습을 보이죠.

이 둘의 자녀인 앤과 데이빗은 부모에 비해서는 미국의 문화가 익숙하지만 한국의 문화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앤과 달리 데이빗에게는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순간에는 자신의 '전형적인 동양인 외모'에 조금은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순자가 보이는 '전형적인 동양인 노년'의 행동도 결코 데이빗에게는 도저히 익숙하지가 않아요. 여러모로 동양인 가정에서 자라도, 결코 자신이 나고 자란 동양의 문화를 쉽게 정체화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계의 순간에 등장한 '순자'의 존재가 하나의 통로를 만듭니다. 물론 '순자'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갑자기 한국계과 미국인 사이에 놓인 경계를 없애는건 아니에요. 계속 강조하지만, 순자의 모습은 여러모로 미국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그러나 자신의 행동에 전혀 거리낌이 없는 '전형적인 아시안계 부모'의 모습이니까요. 그러나 오히려 어떤 의미로는 자신의 정체성인 '한국'과 다시 자신들이 삶을 영위하고 살아야만 하는 '미국' 사이에서 계속 헤메는 제이콥-모니카보다는, 더욱 직접적으로 앤, 특히 데이빗에게 다가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모습은 그저 내셔널리즘의 발로도 아닙니다. 혈연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지만 서먹했던 타인들이, 어떤 식으로 서로를 인식하고 다시 함께 삶을 영위하는 가에 가까운 면모니까요.

이러한 '거리'와 '경계'의 서사에 주연 배우들의 연기와 빛을 섬세하게 활용한 연출이 합쳐지며 더욱 큰 힘을 발휘합니다. 특히 한예리와 윤여정의 연기를 깊게 들여다 보지 않을 수가 없어요. 한예리의 연기는 이미 어떤 한계와 갈등에 직면해 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결정할 수 없는 '교착점'에 서있는 사람의 모습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어요. 감정을 표현하는 순간은 제이콥을 맡은 스티븐 연보다 드물지만, 그러한 '감정을 억누르는 순간'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다가 끝내 두 번의 클라이맥스를 통해 터트리며 '이민자'가 놓인 한계의 순간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어요.

동시에 한예리 만큼이나 더욱 강렬한 면모를 드러내는 배우는 순자 역을 맡은 윤여정이죠. 윤여정의 연기는 무척이나 전형적인 '한국인 할머니'이지만, 그 전형성을 끝까지 밀어 붙이면서 하나의 리얼리즘을 만들고 있습니다. 도리어 어떤 순간에는 '전형성'을 클리셰의 단계로서 표면적으로 재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모습들이 좀처럼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하지만 그곳에서 오랜만에 만나거나 아예 처음 만나는 혈족을 대하게 되는 복잡한 정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 또한 '어떤 익숙함'이겠지만, 익숙한 것을 '익숙한'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익숙함이 낯섬과 만날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를 윤여정의 연기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연기가 <미나리>의 하나의 축을 이룬다면, 조명과 원근을 적재적소에 활용한 작품의 촬영과 연출이 관객으로 하여금 <미나리>의 상황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또 하나의 축이 됩니다. 가족의 새로운 터전이 된 아칸소의 너른 들판은 무척이나 넓고 광활하지만, 밤이 되는 순간 불빛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가족의 불안한 위치를 여러모로 드러내죠.

오히려 투박하지만, 또는 햇빛 속에 가려 빛이 잘 스며들지 않는 - 작중에 등장하는 미나리꽝이나 병아리 감별장 같은 '빛이 교차하는' 공간들이 주인공 가족을 위한 공간이자, 이들이 놓인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은연 중에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적극적으로 광각의 촬영과, 이를 촬영하는 상태에서 점차 풍경의 일부에 놓인 가족들을 다시 씬의 중심점으로 놓으며 가까이 접근하는 미쟝센의 모습은 가족 개개인이 놓인 이중적인 모습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선택이 됩니다.

이렇게 여러모로 리 아이삭 정은 그저 자신의 정체성이나 옛 과거를 단순히 심정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계 이민자'가 자의에 상관없이 놓일 수 밖에 없는 어떠한 형국을 어떻게 '이민자'가 아닌 관객들에게도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지를 깊이 있게 고민하며 <미나리>를 연출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미나리>를 그저 '한국인이 만든 쾌거'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실 애초에 한국인도 아니죠. 쉽게 한국은 민족적 핏줄을 곧 내셔널리즘의 요소로 활용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인식이 엄연히 존재하는 '경계'를 '납작'하게 만드니.) 이민자 가정이 놓인 여러 위치들을, 그리고 한국이 이들을 바라봤던 시선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야하지 않을까요.

특히 한국 영화에서 '자국민의 이민'을 바라보는 것은 '곤궁함' 또는 '치열한 성공기', 또는 단순한 코미디성 소재를 쉽게 넘어서기 어려웠고 (그나마 이러한 다단한 위치를 조금이라도 드러내는 작품은 아무리 잘 쳐도 배창호의 <깊고 푸른 밤>, 그리고 김태용의 <만추> 리메이크 정도이죠.) 1990년대 이후로 한국이 다시 자국에 '이민을 오는 사람'들을 받게 될 때, 이들을 그저 '이방인'이나 '다문화'를 통해 한국 문화에 빠르게 동화되기를 원하는 가운데- <미나리>는 (조금 경우는 다르지만) 자신의 경계적이고, 때로는 혼란의 한가운데 놓여 있던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낸 융 헤넨(전정식)의 <피부색깔=꿀색>과 오히려 맥락을 같이 하고 있으니까요.

<미나리>가 영어가 아닌 대사가 많다는 이유로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것을 언짢게 생각한다면, 다시 한국에서 <미나리>를 그저 자국의 쾌거로 여기는 시선을 넘어 여러 층위로 형성되어 있는 정체성의 '그라데이션'과 '레이어'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추신. 리 아이삭 정은 한국에서는 <미나리>를 통해서 주목을 받게 되었지만, 사실 그의 데뷔작인 2007년 작품인 <문유랑가보>(Munyurangabo)를 함께 들여다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르완다를 배경으로, '르완다 학살'로 대표되는 후치족과 투치족 사이 갈등의 여파를 다시 개개인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들여다보는 작품이었죠. 여러모로 어린 시절 자신이 겪었던 어떤 경계의 경험을, 어떻게 더욱 넓게 이어나갈 수 있는지를 이때부터 이미 드러냈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통찰의 순간이 있었기에 <미나리> 역시 가능하지 않았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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