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주근깨 공주> 단평 : 변주/중첩되는 '네트'

호소다 마모루의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 반복되지만 단순하진 않다

by 성상민

•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인기 프랜차이즈의 극장판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로부터 주목받았던 작품이 있죠. 프랜차이즈가 지닌 ‘디지털’이라는 표식에 당시 서서히 많은 이들에게 인식되었던 네트워크를 이미지로 구현하며,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디지몬 어드벤처 : 우리들의 워게임>은 호소다 마모루의 능력을 본격적으로 드러냈고, 몇 년 뒤 (원작이 있지만, 원작에서 많이 탈각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은 소규모 개봉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SF적인 감각을 강약을 조절하는 연출과 그에 상응하는 서사를 결합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참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참신했던 신예 애니메이션 연출가는 차츰 신작을 발표하며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자신의 특성을 굳혀나갔습니다. <썸머워즈>, <늑대아이>, <괴물의 아이>, 그리고 가장 직전 작품인 <미래의 미라이>를 거치면서 호소다 마모루는 자신이 관심을 가진 지점을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냅니다. 인터넷이든 아니든 연결되는 감각에 깊게 관심을 기울이며, 아동-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다시 주인공과 주인공이 위치한 ‘아동-청소년’의 존재를 때로는 쉽게 평가하는 어른, 그러나 다시 소수의 이를 이해하는 어른이 연결되고 다시 교차되며 아직 설익은 상태였던 감정은 조금 성숙해지고, 교착되었던 전반과 프롤로그의 흐름도 수렴을 맞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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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한계가 <늑대아이> - <괴물의 아이>를 거치고 다시 <미래의 미라이>에 다다르며 과잉되었다는 이미지를 주기도 했습니다. 연출이나 서사의 흐름은 계속 무수한 연결을 원하고 있지만, 사소설에 가까운 등장인물의 수와 전개의 저변은 더더욱 그런 이미지를 주기에 충분했죠. 흥행이야 계속 성공했지만, 조금씩 매너리즘에 봉착하는 상황에서 호소다 마모루의 신작 <용과 주근깨 공주>는 가깝게는 <썸머워즈>, 멀게는 <디지몬 어드벤처 : 우리들의 워게임>에 가까운 첫 인상을 주었습니다. 인터넷의 가상공간에서 발생하는 이야기에, 익명의 존재들이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며 해당 공간에 발생했던 사건과 해프닝이 해결된다는 이야기는 호소다 마모루가 거의 10년 마다 했던 이야기고, 동시에 이젠 ‘게임판타지물’ 같은 장르소설이나 웹소설에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습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용과 주근깨 공주>는 완벽하게 새로운 작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적극적으로 자신이 해왔던 바를 변주하고, 그 변주에 근래의 흐름이나 자신이 모티브로 삼는 작품을 더욱 합쳐내어 꼴라쥬를 시도합니다. 주인공 ‘스즈’(나카무라 카호)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그간 호소다 마모루의 작품에 자주 나오는 인물상이죠.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좋아하는 노래도 부르지 못하게 되는 건 물론, 가족이나 친구와도 이야기를 못하는 소녀와 ‘일단’ 겉으로 보기엔 이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 (그러나 결국은 어떤 식으로든 이해의 경로가 이어져 있음이 드러나는 어른들), 주인공이 다가가고 싶어하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주인공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등장인물, 다시 주인공의 조금은 매니악하고 자기 멋대로지만 결국은 도움이 되는 조연 친구, 정체를 알 수 없지만 결국 자신과 밀접한 연결선이 있는 의문의 존재. 모두 이전에도 있던 소재이죠.


작품이 바탕으로 가져오는 이야기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작중 현실의 등장인물이 작중 가상의 디지털 세계에서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은 소위 ‘메타버스’를 운운하기엔 이미 호소다 마모루가 즐겨 쓰던 이야기지만, 이래저래 구체적으로 바탕이 되었을 이야기들이 감지됩니다. 이전 호소다 마모루의 ‘가상세계’ 묘사가 피상적인 측면이 있었다면, 이번 작품은 매우 직접적으로 ‘웬만해서는 실제 정체를 모르지만, 가상의 구현된 이미지와 그 이미지로 부르는 노래로 세계적으로 대성한다’는 중요 설정은 키즈나 아이 같인 ‘버츄얼 유튜버’나, 원래는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만드는 야마하 엔진의 가상 악기 ‘보컬로이드’의 아마추어 프로듀서였다가 이젠 싱어송라이터가 된 ‘요네즈 켄시’(a.k.a 하치), 아니면 2020년을 <시끄러워>(うっせぇわ)로 강타한 Ado 같은 ‘우타이테’(정식으로 데뷔를 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신상이나 모습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타인이 만든 노래나 자작곡을 부르는 인터넷 활동인을 지칭하는 일본 표현) 같은 존재를 구체화시킨 것이죠. 인터넷 인물의 실제 존재를 가십처럼 찾아 해메는 모습이나, 유튜브-인스타그램-트위터-LINE을 종횡무진하는 묘사까지 말입니다. 더군다나 주인공 ‘스즈’가 만드는 가상세계 U의 닉네임 ‘벨’, 그리고 그 ‘벨’이 우연하게 향하는 ‘용’(사토 타케루)이라 불리는 괴물의 존재와 성, 그리고 ‘벨’과 ‘용’의 무도는 너무나도 명백한 <미녀와 야수> 디즈니판에서 레퍼런스를 가져온 것이니까요.


이렇게 소재나 기호화 자체는 이미 호소다 마모루 본인이 계속 줄기차게 썼던 점의 반복이지만, 호소다 마모루는 여기서 이 ‘변주’ 자체를 자신이 만드는 작품의 감각으로 가져오기 시작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주인공 ‘스즈’는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신 뒤에 마음의 문을 닫은 존재입니다. 완전한 히키코모리로서 집안에 틀어 박힌 것은 아니지만, 기술에 능숙한 친구 ‘히로’(이쿠타 리라)를 제외하면 학교 친구들은 물론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아버지(야쿠쇼 코지)와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소꿉친구 ‘시노부’(나리타 료)에게도 이야기를 꺼려합니다. 이전에는 엄마와 함께 즐겨 부르고, 때로는 같이 작곡하기도 하던 노래도 부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어요. 마음을 굳게 닫은 날이 늘어날수록 부정적인 감정만 늘어나고, 그런 상황에서 히로가 알려준 세계 수억대 인구가 사용한다는 가상 공간 ‘U’는 스즈에게 있어 몇 안 되는 탈출구가 됩니다. ‘스즈’는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성, 주근깨라는 얼굴의 특징만을 닮은 ‘벨’이라는 존재가 되어 엄머가 죽은 이후 오랜 시간 부르지 못했던 노래를 비로소 부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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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호소다 마모루는 지속적으로 동적인 비유를 시도하고 있어요. 현실 세계에서 ‘스즈’는 자신을 둘러싸는 감각을 무척이나 싫어합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아버지와 둘이 사는 것조차도 자신을 짓누르는 마당에,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은 시끌벅적하게 클럽 활동을 즐기고, 같은 반 친구들끼리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주고 받는 모습은 ‘스즈’를 한 가운데의 중심점으로 둘러 에워싸는 듯한 감각을 주고, 심리적으로 압박을 하는 기제가 되고 맙니다. 그 감각은 지속적으로 전반부와 중반부를 가로지르며 원의 감각으로 계속 호출되고, 그로 인해 ‘스즈’는 자신이 어딘가의 한 가운데에 있다는 감각에 계속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욱 가중되죠. 하지만 역설적으로 스즈가 집을 가기 위해 수없이 지나치는 강에 계속 원형의 파문이 퍼지듯, ‘스즈’가 아무리 자신을 구석에 스스로 우겨넣으려고 해도 자신의 말, 자신의 감정, 움직임은 모두 자신을 중심으로 원으로 끝없이 퍼져나갑니다. 마치 ‘U’안에서 ‘벨’의 노래를 듣기 위해 원의 형태로 모이고, 원의 형태로 코멘트가 이어지고, 원의 파형으로 퍼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역설적으로 자신이 그렇게도 피하고 싶어했던 원의 모습을 스즈는 ‘벨’의 디지털 가죽을 쓴 ‘U’ 안에서는 큰 감정의 요동을 겪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즈’가 피하고자 하는 방향이 ‘벨’이 쫓고자 하는 방향과 이어지면서 원의 파문은 더욱 중첩하고, 파장의 크기는 더욱 짙어지게 됩니다. 단숨에 ‘U’ 안에서 인기를 얻게된 ‘벨’은 수도 없이 많은 세계의 사람들 앞에서 가상의 단독 라이브를 하게 될 정도로 성장하지만, 그 라이브 무대를 어그러뜨린 ‘용’의 존재는 스즈가 어떻게든 존재를 찾고 싶은 대상이 됩니다. 정작 ‘스즈’는 자신이 ‘벨’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하며 무수한 애를 쓰고, ‘벨’을 쉽게 유명 인사로 한정 지으며 특정하려는 움직임에 쓴웃음을 보내지만 역설적으로 ‘벨’ 역시 유명하지만 자신에게 다가서기를 극도로 꺼려하고 홀로 있기를 바라는 ‘용’을 찾아 헤매고, (결국 우연한 계기로 연결 관계가 드러나지만) 조금은 부질 없는 ‘용’을 특정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스즈’는 중심점을 피하지만, 역설적으로 중심에 선 ‘벨’은 ‘스즈’가 피하고자 하는 중심과 존재를 찾기 위해 움직이며 원형의 파형은 계속 묘한 교집함을 형성하게 됩니다.


호소다 마모루는 이 과정에서 오리지널리티를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대신, 자신이 자신을 뒤쫓고, 다시 자신이 자신에게 도망쳐 숨는 기묘한 술래잡기를 압도적인 이미지의 구현으로 납득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시로 마사무네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애플시드> 시리즈나 캡콤 사의 좀비 호러 게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등 원작 기반의 3D 애니메이션을 주로 맡았던 ‘디지털 프론티어’와 (아마 동인이나 게임 쪽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알) 2D 이미지를 레이어로 쪼개 유사한 3D 애니메이션의 감각을 주는 ‘Live2D’가 맡은 애니메이션은 2D의 작중 현실과 3D의 작중 가상을 매우 유려하게 이어내고 있습니다. 이전 호소다 마모루의 연출도 인물과 사물, 그리고 배경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쌓아 올리는 것에 특화되었지만, 이번 작품은 그 움직임이 경계를 오가면서도 유려하게 이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더더욱 기묘한 부드러운 감각을 주고 있어요. King Gnu(킹 누)를 비롯해 일본 음악씬에서 실험적인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츠네타 다이키의 또 다른 프로젝트 ‘millennium parade’가 담당한 음악은 현실과 가상, 다시 이를 바라볼 관객이 있는 현실과 작중의 세계를 지속적으로 넘나드는 작품에 기묘한 현실의 감각을 부여합니다. 선율은 단순하지만, 단선율은 게속 변주되어 어느 순간 작중의 관객은 물론 현실의 관객에게도 착 달라붙죠. 완전한 뮤지컬은 아니지만, 마치 뮤지컬과도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뮤지컬을 연기하는 순간 관객이 무대 위의 존재를 작중 배역의 존재라 ‘인식해야 하면서도’, 다시 실제 ‘배우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과 같은 기묘한 감각을 호소다 마모루는 애니메이션의 감각으로 유려하게 표현해 냅니다.


분명 아쉬운 점이 없지 않습니다. 후반에 들어 그렇게 ‘스즈’이자 ‘벨’이 찾아 헤맸던 ‘용’의 존재가 밝혀질 때, 결국 ‘스즈’의 존재도 밝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은 기정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스즈’의 주변 존재를 의도적으로 희미하게 그렸던 상황에서 갑자기 후반부에서 급격하게 해상도가 늘어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시니컬한 사람에게는, 결국 호소다 마모루의 이전 작품에서 반복되는 (이번 작품에서는 소위 ‘어떤 일을 해도 시니컬한 부정의 존재’를 좀 더 많이 내놓긴 합니다만)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밝히고, 그에 감정이 움직이며 함께 협력하는 움직임이 여전히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과 주근깨 공주>는 계속 어딘가 삐걱대는 모습이 선했던 호소다 마모루의 근래 작품에 비하면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옷을, 2020년대의 틀에 맞게 잘 입은 느낌입니다. 일찌감치 ‘네트워크’에 천착했던 애니메이션 연출가 답게, 10여년 만에 다시 네트워크라는 존재를 다시 자신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며, 가상의 네트워크가 어떻게 현실과 만나 새로운 연결 통로를 찾을 수 있는 지를 모색하는 감각은 쉽게 잊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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