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현 <킹메이커> 단평 : 정치의 명암과 비릿함

<불한당>의 연출을 한국 정치에 세련되고 현실적으로 잇다

by 성상민

2012년 성인 로맨틱 코미디 <나의 PS 파트너>로 첫 장편 데뷔한 변성현은 두 번째 장편인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에서 그야말로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됩니다. 표면적인 흥행은 그다지 수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소위 그 옛날 ‘다모폐인’을 연상시키는 ‘불한당원’이라는 매니악한 팬을 낳을 정도로 팬덤을 만들게 된 거죠. 주연인 임시완-설경구의 브로맨스적인 관계에 탐닉하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마치 직전년도에 개봉한 김성수의 <아수라>처럼 예상되는 파멸로 향해 치닫는 폭주를 감각적으로 담아낸 것이 큰 요인이 되었죠.


<킹메이커>(2022)는 두 편의 영화를 통해 드러낸 변성현의 스타일을 좀 더 가다듬어 한국의 1970년대 정치 상황에 녹여낸 작품입니다. 당 이름 정도만 빼면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소위 ‘삼김’ 중 하나였던 김대중과 그의 선거 전략가였다는 엄창록의 이야기를 김대중이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된 1961년부터 김대중과 박정희가 대결한 1971년 대통령 선거, 그리고 에필로그로 1988년까지의 상을 다루는 것이죠.



<킹메이커>는 이선균이 분한 캐릭터 ‘서창대’의 모델인 엄창록이 그리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며 무척이나 음침한 선거 전략을 짰다는 속성을 중요한 요소로 짚어냅니다. (여러 비난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삼김정치’의 속성이었던 ‘보스적 속성’ 등 한계지점이 있으나) 김대중의 이미지가 두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투사의 이미지가 강하다면 그가 기용했다는 엄창록의 이미지는 김대중이 지니는 이미지와 상당히 다르죠. 심지어는 김대중이 머물렀던 정당이나 정치적 동지의 숱한 오명들도 덧붙어 있고요. 변성현은 이 상반된 상황에 주목해, 현실 정치가 지니는 권력의 욕망에 ‘빛과 그림자’라는 구도를 서사는 물론 이미지적으로 충실하게 활용합니다.


물론 이로 드러나는 한계는 있죠. 서창대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은 적이고 아군이고 할 것 없이 모두 현실에 찌든 모습을 드러내는 반면에 김대중을 모티브로 한 김운범(설경구)는 훨씬 덜 합니다. 매사에 자신에게 유리한 길 대신 원칙과 정도를 걷기 위해 노력한다는 모습이 상당히 강하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런 ‘선인’을 찬사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 것은 이 작품의 메인 포커스가 김운범이 아니라 서창대에 맞춰져 있는 것이 클 것입니다.


서창대는 철저히 선거 공학의 전형을 따르는 캐릭터죠. 세부적인 공약이나 비전을 말하는 대신 자신이 일하는 선거 캠프의 승리를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잠시 독재나 공권력의 부당함을 말하다가도, 결국 이는 이미 흩어진지 오래입니다. 김운범과 그의 캠프는 그런 서창대의 실력과 집념을 인정하면서도, 철저히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으로 무장되어 있는 그가 점점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고 결국 그 미묘한 위치가 서창대는 물론 극의 중요한 분기를 만들고 말죠.


서창대는 몇몇 순간을 제외하면 철저히 실내 또는 어두운 곳에서만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가 ‘모시는’ 김운범이 연단 위에 오를 때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도 그는 항상 장막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서창대는 자신이 어둠에 있어야만 빛이 난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어느 순간에 있어서는 스스로 빛이 되기를 갈망합니다. 이에 맞춰 작중의 조명이나 실내 공간도 서창대의 ‘그림자’를 따라 움직이고, 함께 명멸합니다.


한 인물을 철저하게 태양 같은 존재로 규정했지만, 작품을 이를 그대로 따라가기 보다는 태양 주위의 ‘그림자’에 포커싱을 하기에 대비는 더욱 다양한 스펙트럼을 이루게 됩니다. 동시에 서창대 뿐만 아니라 김운범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점차 ‘그림자’에 가까운 모습을 드러내기에 스펙트럼의 농도는 더욱 다채로워지죠. 김운범이 그러기에 실제 모티브가 된 인물보다 밝아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김운범이 서창대를 어떤 식으로든 만나는 순간, 그리고 클라이맥스의 독대 장면에서 마냥 태양 같아 보였던 이의 모습도 점차 그늘이 드리워지는 연출은 여러모로 이전 작품에서 복합적인 인물상을 그려냈던 모습대로, 현실 정치의 욕망이 어떻게 서려가고 작동하는지를 보이는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작품은 의도적으로 실제 1972년 선거에서의 등장한 공약이나 정책 구상도 일부를 빼면 크게 강조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당대 독재와 민주로 쉽게 분류되어 보일 것 같은 구도가 의외로 복잡미묘하며, 그 안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어떤 상을 지니며 행보하는지를 포착하는 것에 있으니까요. 물론 이러한 강렬한 구도는 실제로도 격정적이었던 김대중의 정치 행보가 다시 덧대어지며 ‘행동하는 양심’의 중요함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앞서 말했듯이 결국 어두운 장막은 모두에게서 벗어나지 않고 그러기에 ‘사이다’ 같은 일말의 통쾌함도 남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피카레스크적인 감각이 진해지고, 다시 <더 킹>이나 <특별시민> 등의 작품이 범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추잡한 모습을 애써 포장하고 감추지 않기에, 역설적으로 더욱 깊이 있게 정치를 말하는 몇 안 되는 한국 영화가 됩니다.


동시에 이를 더욱 극대화시키기 위해 조명과 촬영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것도 중요한 지점입니다. 빛과 그림자의 명암 대비, 상하위계로 구성된 정치의 세계를 작품은 각 시퀀스의 이미지를 통해 드러내고 있죠. 카메라는 한국 주류 영화의 전형적인 촬영 구도처럼 사람을 지속적으로 스크린에 꽉차게 담아내는 대신 그가 있는 풍경, 그가 있는 명암을 계속 의도적으로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가 있는 위치와 행동, 움직임이 어떻게 휩쓸리는지가 더욱 강렬해집니다.


물론 <불한당>의 강렬함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약할 수도 있고, 좀 더 강하게 수를 두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한국에서 시도했던 정치 영화들 중에선 가장 좋은 결과물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이에 또 다른 설득력을 주고자 여러 사정상 당명을 제외한 모든 실존 인물을 가명으로 처리하면서도, 당대에 존재했던 폰트나 매체, 또는 ‘만담’ 같은 대중-문화적 요소를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 것도 세심한 포인트죠.


통쾌하고 강력한 한 방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맥빠져할 수 있겠지만, 도리어 그 비릿함을 쉽게 감추거나 포장하지 않았기에 결말부의 ‘역사적 사실’이 더 묵직해지고, 다시 한국 역사에서 ‘정치’, 그리고 ‘정치’를 이유로 벌어진 행동의 맥락이 더 선명해지게 됩니다. 이래저래 <불한당>을 만든 감독다운 ‘정치영화’라 부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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