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성을 희생하는 대신, 연출과 사고의 폭은 더욱 깊어졌다
<지옥 - 두 개의 삶>을 비롯해 꾸준히 연상호의 작품을 봤던 관객이라면 <부산행>은 어딘가 미적지근하고 많이 자제한 듯한 느낌이 들었을 겁니다. 애초에 원래 연상호가 기획했던 것은 <서울역>이기도 하고, 감독 자신으로써도 처음 손대는 블록버스터 였으니 조심스러웠던 것도 없진 않았겠죠. 이래저래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부산행>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높은 흥행 성적을 거뒀고, 그런 상황에서 <서울역>이 <부산행>의 프리퀄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드디어 관객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부산행>을 기대하시고 보면 큰 코 다치기 좋은 작품입니다. <부산행>에서 꾹꾹 숨겨 놓았던 연상호의 폭력적 미학이 가감 없이 발휘되는 애니메이션이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폭력 수위로만 따지면 전작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처럼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나와도 할 말이 없는 수준입니다.) 좀비물이라는 장르적인 특성도 엷어졌습니다. 그러나 작품적인 성취에서는 <부산행>은 물론 그간 만들었던 작품들에서 매우 발전한 모습을 보입니다.
특히 눈으로 바로 보이는 기술적인 발전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물론 여전히 저예산의 한계는 극명하고, 일부 3D 오브젝트의 텍스처는 (특히 초반 오프닝 시퀀스) 픽셀이 그대로 보이는 등 아쉬운 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돼지의 왕> 이후로 본격적으로 3D를 접합한 연상호의 애니메이션 작업들 중에서는 가장 자연스럽고 유려한 움직임이 돋보입니다. 총제작비 8억이라는 예산으로 꽤나 부드러운 동작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게 대단할 정도에요. (물론 NEW의 투자를 빼면 사실상 단독 제작이었던 전작과 달리 이번 작품에는 파인컷, 그리고 명필름의 투자가 추가되었다는 것을 고려해야 겠습니다만.) 연출적인 면에서도 학교, 시골 마을 등으로 한정된 전작과 달리 서울역과 서울 시내로 넓어진 공간에 맞춰 역동적인 변화가 느껴집니다. 물론 연상호가 그간 인상적으로 보여줬던 폐쇄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심리 역시 능숙하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역시나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은 영화 속에 드러나는 서사적인 장치들입니다. <부산행>이 분명 한국에서 사실상 최초로 좀비물이 무엇인지를 이해한 작품이긴 했지만, 총체적으로 따져보면 한국판 <월드워 Z>라고 봐도 과언은 아니었죠. 중간중간에 연상호 특유의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긴 해도, 뭔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물론 공유-김수안 사이의 부녀 관계에 묻혔던 것이 아쉬웠죠. <서울역>은 <부산행에 비하면 전체적인 작품의 구성에서 좀비라는 장르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감독은 좀비물의 장르적 특성을 파악하고 있고, 더욱 능수능란하게 한국 사회를 꼬집습니다.
많은 장치들이 흥미롭지만 한국에서 유난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집'이라는 개념을 활용한 전개가 독특합니다. 서울역의 노숙자들을 통해 좀비가 퍼져나간다는 설정은 물론 주인공 일행이 좀비의 습격으로부터 이리저리 몸을 피하고, 결국 어떠한 파국에 이르는 순간에 도달하기 까지 '집'은 모두에게 중요한 공간이 됩니다. 이 '집' 같은 소재를 발판 삼아 여성 혐오와 같이 약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격차와 차별, 그리고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그저 납작하게 깔아 뭉개려는 어떤 반응들 역시 좀비물이라는 장르 안에서 효과적으로 구현합니다. 특히 연상호는 (<부산행>을 포함해) 그간 만들었던 작품들에 드러나는 여성 캐릭터의 표현 문제로 많은 비판을 들어왔었는데 전작들과 비슷하게 갈 듯 하면서 결국 마지막 순간에 뒤트는 연출이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분명 모두가 좋아하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부산행>이 많은 희생과 타협을 통해 대중적인 블록버스터로 관객들에게 다가갔다면, <서울역>은 딱히 대중적인 접근을 위해 노력하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부산행>의 전개가 어딘가 시원치 않았던 관객들, 특히 연상호의 전작들에 열렬한 호응을 보내왔다 <부산행>에서 많은 아쉬움을 느꼈던 관객들이라면 주목할 만한 작품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