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좀비딸> 1화 단평 : 흥미로운 조짐들

이윤창 원작 <좀비딸>, 1화에서 느껴지는 조짐들.

by 성상민

본래 <짬> <신과 함께>의 주호민처럼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검지넷' 등에서 활동한 이윤창은 본격적인 장편 웹툰이었던 <타임 인 조선>(2011 ~ 2013)을 통해 대중들에게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코미디를 베이스에 삼은 작가이지만, 스토리의 진행과 자연스럽게 진중하고 때로는 서스펜스로 느껴질 수 있을 지점들을 적절히 배합하며 하나의 완성된 스토리텔링으로서 코미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한국 대중 코미디 '영화'의 계속되는 한계처럼 갑작스럽게 신파적인 시퀀스를 만들어내기 보다는, 코미디를 자아내는 설정의 기반에 이미 조금씩 뒤틀릴 수 밖에 없는 여지들을 배치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코미디 이외의 감정을 자아낼 수 있는 솜씨는 이윤창의 장기라 할 수 있겠죠.

이윤창의 가장 최근 작품인 <좀비딸>은 이러한 작가 자신의 능력을 '좀비물'이라는, 한국에서는 본격적으로 정착된지 10년이 채 되지 않은 장르에 배합시켜서도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사람을 습격하는 좀비'라는 개념이 이미 정착된 상황에서, 보편적인 장르 클리셰를 작품의 전면에 가져온 작품은 이윤창의 작품 중에서도 상당히 심각하고 때로는 잔인한 분위기를 만들지만 그러면서도 일상과 코미디를 바라보는 태도를 놓치지 않으면서 한국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독특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김애용' 같은 한국 만화 역사에서 한동안 회자될 고양이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은 물론이고요.



그러던 중 <좀비딸>의 연재를 마친 지 얼마 안 된 지난 2020년 8월, EBS의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 프로젝트에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꽤나 놀랐습니다. 웹툰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것 자체가 놀라운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일본, 미국 같은 산업이 오랜 시간 형성되며 고도화된 국가들에 비하면 아직 미약하지만 2000년대부터 <뽀롱뽀롱 뽀로로>나 <꼬마버스 타요> 같은 아동용 작품, 또는 <또봇>이나 <바이클론즈> 등의 시리즈 같이 완구 판매가 핵심인 작품들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동시에 네이버웹툰 차원의 적극적인 애니메이션 사업 진출과 한국콘텐츠진흥원,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각 방송국들과 함께하는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프로젝트 등으로 인해 이제는 과거보다는 쉽게 웹툰 원작 애니메이션을 많이 만나볼 수 있게 되었죠. 조석 원작이자, 이번 <좀비딸>을 만든 두루픽스의 전작 <마음의 소리>나, 투니버스에서 근래 제작한 탐이부의 <웰컴 투 정글 스쿨>을 원작으로 한 <애니멀 스쿨>, 김용회 원작의 <도깨비 언덕에 왜 왔니?>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소니 자회사가 된) 미국 크런치롤의 주도로 제작된 SIU 원작의 <신의 탑>이나 박용제 원작의 <갓 오브 하이스쿨>도 있었죠.

단지 놀라우면서도 궁금했던 것은 <좀비딸>을 한국 방송사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소화할 수 있는 작품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좀비딸>은 어찌되었든 '사람을 습격하는 좀비'를 다루는 작품이고, 당연히 피가 꽤나 많이 튀거나 사람이 죽는 장면이 나오는 등 신체 훼손 등등까지 잔인한 수준까지 수위가 올라가지는 않아도 한국 TV 애니메이션에서는 잘 시도되지 않는 수위인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EBS가 이미 '교육방송'이라는 수식에 얽매이는 대신, 'EBS 스페이스 공감'이나 '까칠남녀'나 '배워서 남줄랩' 등 같이 직접적인 아동-청소년 대상 교육을 넘어, 한국 사회의 다양한 영역들을 다루는 프로그램으로 나아간지 오래이지만 애니메이션의 차원에서는 크게 도전적인 작품은 없었다는 점도 있었습니다. 애시당초 15세 이용가에 해당하는 작품도 이전 2000년대 초반에 일부 대사 순화를 거쳐 방영한 <심슨 가족>이나 <딜버트>, 또는 2010년대 초 방송한 아다치 미츠루 원작의 <크로스 게임> 밖에는 없었죠. 자체 제작으로 따지면 이번 작품이 아동용이 아닌 첫 작품이자, 첫 15세 수준의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렇게 제작된 <좀비딸> 1화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총 26부작 중에 고작 1화만 해당하는 분량이기에 이번 편만 가지고 많은 이야기를 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1화만으로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모습들이 많이 드러났습니다.

가장 먼저 짚을 수 있는 지점은 두루픽스가 <마음의 소리>나 <세미의 매직큐브> 등의 작품에서 드러냈던 '벡터 애니메이션'이 이래저래 자연스럽게 작품에 쓰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웹에서는 쓰이기 어렵게 되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개인과 업체들이 사랑했던 '어도비 플래시'는 대표적으로 많은 이들이 널리 알고 있는 벡터 애니메이션 툴이죠. 이제는 꼭 플래시 말고도 다양한 툴이 쓰이고 있지만,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보신 분이라면 다들 생각나는 것처럼 벡터 애니메이션은 이미지 상당수를 벡터 이미지로 처리하고 움직임 또한 벡터로 처리하며 일반적인 리미티드 셀 애내메이션 대비 상당히 높은 프레임율을 통해 부드러운 감각을 준다는 점이 있습니다. 물론 이는 미국에서 자주 사용되는 풀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감각입니다. 프레임별로 셀을 만드는 애니메이션의 움직이는 감각보다 더욱 물이 흐르는 것 같은 부드러움의 벡터 애니메이션은 상대적으로 낮은 제작비로 (풀)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많이 쓰인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작화와 붕 떠서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웹툰 대다수는 상대적으로 복잡하지 않은 선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 많고, 특히 이윤창의 작품은 간결한 그림체가 꾸준히 담겨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벡터 이미지 툴로 작업된 만화는 아니나, 벡터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이윤창의 작화는 이번 두루픽스의 애니메이션도 거의 그대로 옮겨지며 상당히 유려한 연출로 살아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 웹툰의 애니메이션화가 여러 시행착오 속에서 계속 시도 되는 가운데, 웹툰에 가해지는 몇몇 편견인 '상대적으로 밀도 낮고 단순한 작화'라는 이야기는 벡터 애니메이션의 작업이 많은 한국 애니메이션이 웹툰을 작업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을 고민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느껴지는 건 작품이 생각 외로 원작을 크게 각색하지 않고 1화에서는 원작 1화 ~ 8화 초반에 해당하는 부분을 거의 그대로 옮겼다는 점입니다. 물론 애니메이션이 원작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꼭 좋은 선택인 것은 아닙니다. 애니메이션이 아무리 특정 원작을 소재로 하더라도 원작은 원작, 재해석은 재해석입니다. 특히 고정된 매체의 만화 원작은 동적인 매체인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질 때 최대한 매체의 특성 변화로 인한 재해석이 가해질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 더해,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웹툰 <좀비딸>의 수위가 일반적인 만화들에 비해서 마냥 높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국 TV 애니메이션의 상황에서는 상당히 높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떤 식으로든 수위 조정이 가해지겠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는 없었죠.

하지만 최소한 1화로 한정하면 생각 외로 원작의 플롯이 거의 그대로 작품에 들어갔습니다. 대사도 일부 욕설 등을 제외하면 크게 수정없이 담겨졌고, 연출이나 스토리의 흐름도 비슷하게 들어갔어요. 심지어는 좀비의 습격 등으로 인해 피가 사방에 튀는 장면도 원작보다 약간 수가 줄었을 뿐 애니메이션에 들어갔습니다. 가장 크게 들어낸 장면이 있다면 원작 7화 후반부의 '좀비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계엄령 선포 이후의 상황'에 대한 장면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인데, 이 장면이 뒤에 어떻게 들어갈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언급을 하겠지만, 작품의 방향성이 조금 달라진 지점이 반영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과연 작품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요. 작품은 총 26부작으로 제작될 예정이고, 1부는 아무리 상대적으로 높은 임팩트가 담겨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1/26에 해당하는 분량만 본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1화에서 7화의 해당 장면을 들어낸 선택, 동시에 그러면서 좀비 소동이 지나가고 세상에서 유일한 좀비가 된 '수아'와 그의 아버지 '정환'을 중심으로 제시되는 분량이 늘어난 것에서는 이 작품이 원작에서 핵심적 지점이었던 '세상에 큰 혼란을 끼칠 수 있는 전염병 감염자와 그의 가족'이라는 이야기에 더 집중을 하겠다는 선택으로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공교롭게도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2022년은 본래는 단순히 장르적인 소재였던 '좀비'의 사용이, 2020년부터 현재까지 아직 끝나지 않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낳은 각종 사회적 갈등과 혼란이 여전히 넘실거리는 시기라는 점에서 작품에 드러나는 '좀비'의 모습은 결코 작품 내의 표현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원작이 의도적으로 좀비 소동 한 가운데가 아니라 소동이 일단락된 시점에서, 여전히 쉽게 사회로 복귀할 수 없는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와 가족, 다시 그들을 감싸는 사회를 담아냈던 것은 이윤창이 '좀비'라는 존재를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재해석하며 '질병'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재구축하려는 움직잉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한 <좀비딸>은 어떻게 원작과 연계되고, 또는 조금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게 될까요. 1화만으로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지만, 이래저래 근래 나왔던 웹툰 원작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가장 독특하고 흥미롭고, 신선한 징조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 징조가 앞으로 작품이 방영될 25주에도 잘 이어져, 계속 회자할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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